매무새 또 고친 DJ 이번엔 ‘산토끼’몰이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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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과 친해지기’ 등 2단계 변화 주력



 미국의 196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리처드 닉슨과 존 F·케네디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먼저 맞닥뜨렸다. 닉슨은 이 토론을 위해 3일 동안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다. 닉슨이 예상질문에 따라 능란한 답변을 익히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던 그 시간, 케네디는 여유있게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답변의 충실도에서 닉슨은 케네디를 앞질렀다. 이를 라디오 방송으로만 들은 사람은 닉슨의 승리를 점칠 정도였다. 그러나 닉슨은 토론시간이 흐를수록 땀을 흘리며 초조한 기색을 나타냈고, 케네디는 검게 탄 건강한 얼굴로 비록 성실하지는 않지만 시원시원하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당시 케네디 선거운동본부는 닉슨의 이런 모습을 빗대 “tricky Ricky (잔재주를 피우는 리처드)”라는 말을 퍼뜨렸다. 대통령선거는 여기서 끝장이 났다.

 그로부터 8년 후 닉슨은 정계복귀를 위해 다시 나섰다. 그때 닉슨측 참모들의 선거운동 근간이 바로 ‘뉴 닉슨 플랜’이었다. 닉슨 선거 운동원들은 8년 전 닉슨의 모습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느낄 수도 있었음을 인정하고 지금의 닉슨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유권자를 향해 “닉슨은 원래 그렇지 않은데 억울하다.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뉴 닉슨’ 전략은 주효했고 닉슨은 그해 대통령이 되었다.

 민주당의 유종근 홍보위원장은 金大中 대표에게 ‘뉴 DJ 플랜’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준 사람이다. 그는 “닉슨 진영은 유권자들이 가진 과거 생각에 대해 정치적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현재의 새로운 닉슨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 그것이 바로 ‘뉴 닉슨’의 키포인트였다”고 말한다. 그는 “김대표가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이미지가 조작된 점이 많지만 억울하다고 따져봐야 소용없다”고 강조한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간단하게 말해 뉴 DJ는 유권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겠구나, 민주당이 집권정당이 되어도 별 탈이 없겠구나 하고 안심시키는 것”이 요체라는 설명이다.

 물론 ‘뉴 DJ’의 첫 단계는 대통령후보로서 김대표가 가진 거부감을 지우는 데서 출발했다. 양복 상의에 ’포켓 칩‘을 꽂는 등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는 외형변화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다.

측근서 15가지 약점 보완 주문

배기선 비서실 차장 등 뉴 DJ 기획담당자들은 김대표의 장점과 약점을 철저히 파악해 이를 실제 행동에 연결되도록 김대표에게 주문했다. 이들이 꼽은 김대표의 보완점은 15가지 정도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말을 빠르게 하지 말 것 △강변하려고 하지 말 것 △말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할 것 △얼굴 표정을 부드럽게 할 것 △사투리를 쓰지 말 것 △너무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얘기를 전개하려고 하지 말 것 △말의 서두나 중간에 “말하자면”이란 표현을 반복하지 말 것 △사람 대할 때 좀 더 따뜻하게 할 것 △귓속말 보고를 듣지 말 것  △전문가 집단이나 사회 원로급 인사들과의 교류를 늘릴 것 등 다양하다.

 이제 뉴 DJ는 2단계에 접어들었다. 공식 행사 또는 사람과의 교제 때에나 필요했던 초기 이미지변화 작업에 대해 최근 김대표는 거의 유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개월 동안의 변화노력에 이미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그가 더 이상 초보 단계의 뉴 DJ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정치 상황이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뉴 DJ의 2단계는 아직 그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는 부분, 즉 △사상적 용공성 시비 △그에 대한 영남권의 지역정서 △한때 그에 대한 대표적 비토집단이었던 군부와의 관계 정상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김대표는 주말마다 영남지역에서 행사를 만들고 있다. 그의 영남지역 주말 나들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나들이가 그에 대한 영남 쪽의 반감을 줄이려는 목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비서실의 한 측근은 “김대표가 영남에 가는 것은 그것이 득표에 상당히 유리할 것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의 영남행이 김영삼씨가 부산에 내려가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식시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 측근은 또 “앞으로 김대표의 중요 선거공약이나 정책 제시는 거의 영남에 내려가서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대표는 10일 김해와 11일 진주에서 △세수 면에서 그다지 크지 않은(6백억원 정도) 농지세와 수세의 전면 폐지 △악성을 제외한 농가부채 대폭 감면 △추곡수매가 14%이상 상향조정과 전량수매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최근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민자당 朴熺太 대변인은 “김대표는 국방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성 시비는 대통령선거 행보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10일 김해에서 김대표는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강한 반발을 표시해 전략이 수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날 그는 “기밀 서류를 간첩에 제공했다는 이근희씨는 20여명에 달하는 국회 사무보조원 중 한명에 불과하며 그를 채용할 때 관계기관에 신원조회를 했으나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채용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예산개요 서류는 2급 비밀문서인데 그가 2급 문서 처리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국방위원회 입법조사관의 잘못이지 우리에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지난 총선 때 노대통령은 이번에 간첩 혐의로 구속된 張琪杓 민중당 간부를 청와대에까지 불러 밥을 먹였다. 민주당 잡으라고 거액의 돈까지 줬다는 얘기가 있다. 정부는 이번에 간첩 혐의로 구속된 金?中씨의 통일 문제연구소에 여러분의 세금으로 재작년과 작년에 각각 2천5백만원, 올해 5천만원의 보조금을 주었다. 간첩에게 연구비를 준 것이다. 진짜 이런 식이라면 지난 3년반 동안 집권한 대통령과 김영삼 총재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만만한 야당만 잡으려고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사상 시비에 대한 김대표 전략은 지역에 따라 차별화하고 있다. 그의 한 핵심 참모는 “경남이라는 지역 특성상 사상 시비에 대해 강하게 나올 필요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남권이냐 비영남권이냐에 따라 김대표 발언 수위가 조절되는 셈이다. 이는 물론 중부권에서도 사상 시비에 강하게 반발하다가는 자칫 평지풍파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전략이다.

 뉴 DJ의 2단계는 근본적으로 김대표가 말하는 ‘대화합의 정치’에 핵심이 담겨 있다. 그는 “우리가 집권하면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구성해 1년 안에 지역감정을 일소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는 “특정지역의 정권이란 말을 듣지 않도록 나와 같은 출신지역 인사의 등용이나 예산 배정에 더 엄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광주문제 등 걸림돌 많아

 김대표가 말하는 대화합은 그 배경을 ‘집토끼와 산토끼’론에 비유할 수 있다. 이제까지 그를 지지했다고 여겨지는 호남권과 노동자·도시빈민 등 소외계층은 이를테면 집토끼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에 대해 비판적인 영남·강원·충북권과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 세력, 군부 및 관료 집단 등은 산토끼인 셈이다. 김대표는 그에게 고정표가 될 수 있는 25% 내외의 집토끼만으로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따라서 그의 대통령선거 전략의 마지막은 과연 어떻게 해야 산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에 온통 집중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김대표의 대화합론에는 몇가지 중대한 함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토끼 산토끼 두 마리를 동시에 잡으려 하다가 집토끼 마저 놓쳐버리는 것이 아니냐 하는 당내 일부의 우려가 그 첫번째다. 이같은 반응은 당내 소장파 의원들 중심의 민주정치개혁모임 쪽에서 주로 제기된다. 김대표가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 집단에 너무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그의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 반발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그가 “집권하면 2년 동안 노동쟁의를 하지 말도록 부탁해 노사화합의 안정기반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은 노동자의 불이익을 보살피기보다 고용주 중심의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노동자 계층에 오해를 부를 수도 있는 이런 발언에 대해 당내 참모들은 “김대표의 진심을 이해하면 그런 오해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와 '오해‘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 때 노동자 계층은 김대표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두 번째 함정은 ‘광주 시민’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호남 유권자들이 김대표에게 언제까지 맹목적 지지자로 남아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민주당 핵심참모들은 호남 유권자들이 뉴 DJ로서 김대표에게 어느 정도 실망하겠지만 막상 투표 당일에는 그를 찍을 수밖에 없다고 장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비서실 관계자들은 “‘비판적 지지’란 전제가 붙기는 하겠지만 그 역시 결과는 뉴 DJ에 대한 지지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부분은 사실 김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상황 인식이자 모든 정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김대표는 호남 유권자가 자신을 결코 배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 시민은 그의 가장 확고한 지지층이면서도 가장 부담스러운 대상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최근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더이상의 진상 규명이나 책임 추궁을 하지 않을 것이란 그의 ‘광주선언’설이 나왔을 때 광주에서 나타난 폭발적인 불쾌감은 이런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파장은 결국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명돼 일단 진정됐지만 불씨는 아직 남아 있는 상태다.

 ‘80년 광주’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란 두가지 대명제 중에서 김대표는 적어도 책임 추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책임 추궁은 대화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명예회복의 첩경으로서 광주 망월동 참배를 생각하고 있는 全斗煥 진영의 뜻이 김대표에게 전달될 경우 그는 곤혹스러운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새 DJ도 좋지만 어떻게 전두환과 손잡을 수 있느냐”하는 광주 시민의 분노와 5공 회귀정서를 가지고 있는 대구·경북권에서의 지지 유도 사이에서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는 11일 진주에서 정치보복 문제와 관련 “내가 전 전대통령을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았으면 그가 아들을 내게 보내 인사까지 했겠느냐”면서 “나는 전씨의 투옥에도 반대하고 그의 백담사 하산과, 이미 나라에 헌납했던 연희동 집 복귀에도 찬성해 盧泰愚 대통령이 내게 은인이라고까지 말했다”고 강조했다.

 세번째는 뉴 DJ로 인해 민주당의 고유색깔이 변화되고 정책의 일관성마저 흐뜨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그가 힘껏 목청을 돋우어 “민주당은 정국 안정의 받침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도 정국 운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사실 노대통령의 9·18 선언 조치 이전과 비교해 너무 갑작스런 변화라는 측면이 있다. 물론 노대통령과 朴泰俊 의원의 민자당 탈당으로 정치권 기류가 급변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평소 ‘U턴’을 하면 했지 진행 방향을 직각으로 꺾는 ‘V턴’은 하지 않던 그의 행동방식을 고려하면 논리의 일관성이 결여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버스 투어’  유세 등 이색전략 모색

 특히 그가 한때 자치단체장선거문제에 대해 양보하는 입장을 보였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연내 실시 방침을 재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이나, 안기부장 유임에 대해서도 비교적 완화된 태도를 보였던 점 등은 당 정책의 일관성과 관련해 시비거리가 될 수 있다.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라는 김대표의 강조처럼 최근 정국 흐름과 뉴 DJ는 서로 맞물리면서 민주당을 유리하게 몰고가고 있다. 김대표는 10월 말부터 전용버스로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버스 투어를 할 작정이다. 버스 투어를 통한 유세는 우리나라 선거사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방법이다. 당내 청년특위(위원장 노무현 전의원)에서는 10월 23일 잠실체육관에서 약 3만명 가량의 청년당원을 동원, 대통령선거 전진대회 겸 대규모 문화행사를 갖는다. 한 당직자는 “김대표가 클린턴처럼 TV에 나와 색소폰을 불 수는 없지만 창은 부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청년층에 대한 김대표 접근방법을 전한다. 이 역시 뉴 DJ다. 최근 민주당 당직자들은 “이제는 뉴 DJ에서 뉴 민주당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뉴 DJ의 3단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위해 김대표와 민주당이 경계해야 할 것은 닉슨 대통령이 “tricky Ricky”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tricky DJ"라는 평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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