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상용차 ‘재시동'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10.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준비 끝났다"… 기존 업체 '승용차시장' 진출 우려

 지난해 ‘삼성중공업의 상용차 진출' 프로젝트 추진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 사업이 삼성중공업으로 이관되고 나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 중공업 기획실에 넌지시 물어보았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극비사항이라 알려 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룹의 고위층이 청와대에 다녀오면서 승인을 얻어내기 위한 사전준비 작업계획이 마련됐다는 풍설과 함께 공식화(기술도입신고서 제출)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그룹 내에 떠돌고 있어 확인할 요량으로 탐문하려던 그이지만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삼성그룹의 자동차시장 진출에 ‘재시동??이 걸리고 있다. 지난해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와신상담해오던 삼성중공업은 ??그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준비를 한 것??으로 재계에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 8월께부터는 崔寬植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를 하는 등 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최회장이 움직인 것은 가스공사에서 발주하는 LNG선 3?4기 때문??이라면서 상용차 진출과 관련해 경영진이 관계요로에 로비를 하고 다녔다는 소문을 일축했다. 하지만 ??준비끝의 상황??이라는 사실은 부분적으로 시인하고 ??시기선택만 남았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연내 시도의 가능성도 배체하지 않았다.

 준비가 완벽히 되고 있다는 점은 우선 사람충원에서 단정으로 나타난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공개·비공개적으로 2백여명의 관련 인원을 스카우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목을 받는 이가 정주하씨와 강명한씨이다. 두 사람 모두 현대자동차의 핵심 기술요원으로 재직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현재는 삼성중공업 부사장으로 있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두 사람을 무리하게 스카우트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들이 현대자동차를 그만둔 후에 삼성으로 영입됐다고 경위를 밝혔다. 그러나 ??현대에서만도 50여명의 인원을 뽑아 간 것은 사실??이라면서 쌍용 등 상용차 업체들로부터도 인원을 빼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50명 정도를 새로 뽑았다??고 스카우트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현대자동차에서만 50여명 스카우트
 워낙 극비리에 추진된 사업이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올해의 사업 추진 내용은 작년과 거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작년에 상공부에 제출했다 반려된 기술도입신고서를 보면 기술제휴선은 일본 닛산자동차의 자회사인 닛산디젤공업이다. 기술도입 대가로는 선도금(IDP)으로 4천 2백만엔(약 2억원), 로열티로는 순매출액의 2.5%를 주는 것으로 계약돼 있다. 생산차종은 콘크리트믹서트럭 덤프트럭 등 특장차 및 대형트럭 등 일반상용차로 연산 5천대 계획이다. 총 투자액은 기계장비와 부품개발 및 연구개발 비용 등으로 7백20억원이 잡혀있다.

 지난해 7월 삼성중공업이 상공부에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하고 40일 후인 8월 16일 “내년 10월 이후에 보자??는 단서가 붙어 반려되기까지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당시 상공장관이었던 朴弼秀씨가 ??신고서에 별 하자가 없으면 승인을 해줄 수밖에 없다??고 밝혀 진출이 기정사실화된 듯하다가 갑자기 실태조사반이 구성된 점이나 장관이 해외출장 후 번복한 일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결국 3년여의 노사분규로 약화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주고, 91년 하반기께는 주문 적체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근거를 들어 신고서가 반려됐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억측이 구구했다. 이때 제법 그럴듯하게 나돈 얘기는 업계의 반발이 워낙 거센 데다가 청와대 경제팀이 ‘발목??을 잡았다는 설이다.

 업계가 과만하다 싶을 정도로 삼성의 진입을 저지하려는 이유는 삼성이 결국 승용차시장에까지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보는 데 있다. 일단 어느 부문이든 자동차산업에의 참여가 기정사실화되면 차종을 확대하는 데 따르는 제약은 참여 그 자체에 대한 제약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상용차에 국한된 진출이라고 못박고 있다. 또 상용차 진출은 사업다각화의 일환이며 기존의 시설에다 이를 보완하는 정도의 시설투자만 더하면 가능한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콘크리트펌프차 등 특장차를 만들고 있고 중장비 부품개발을 기반으로 특장차도 호환성 있게 추진하면 되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삼성과 기존업계와의 싸움 제 2라운드가 예고되면서 자동차시장은 ‘엔진가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첫 시동은 지난달 5일 현대 등 자동차 5사 사장단이 李鳳瑞 상공장관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걸렸다. 5사 사장단은 삼성중공업의 상용차 진출 명분이었던 적체문제가 완전 해소됐다고 주장하면서 신규 참여 제한을 건의했다. 그동안 기존 자동차업계가 총 1천8백 25억원을 투자해 대형상용차 연간 생산능력을 지난해 2만9천대에서 올해는 4만 8천대로 늘려 적체는커녕 재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자동차회사는 ‘신규업체 참여가 자동차산업에 미칠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삼성의 진출을 반대하는 이유를 분석해 상공부에 보냈다. 이보고서에는 대형상용차네 한정된 신규참여, 종합자동차업체로의 참여, 기존업체의 부분 인수를 통한 참여 등 3개 부문에 대한 영향을 각각 분석해 놓았다. 종합자동차업체로의 진출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상용차 한정사업이나 인수를 통한 경우에도 과잉?중복투자를 유발하고 기술개발의 지연, 생산비 절감의 저해 국산화 및 부품산업 발전에 악영향을 가져온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하고 있다.

 삼성은 올해가 자신들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자인하고 있다. 지난해 내세웠던 적체해소 등의 명분이 사라진 데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재벌이 사업을 늘린다는 점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벌에게 “세계적 명품을 만들라??고 주문하며 업종전문화 유도의 의지를 발휘하고 있다. 또 석유화학과 자동차는 대표적 중복투자 업종으로 꼽히고 있는 데다가 올해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 시설재 수입이므로 이를 억제하기 위해 상공부는 자동차 등의 업계에 시설투자를 내년으로 미뤄달라는 비공식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측은 “상용차 부문에 특화함으로써 낙후된 기술을 향상시키고 협력업체를 육성하는 데 힘쓰는 등 국내 부품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노력하여 건설중장비 빛 상용차를 유망한 수출산업으로 육성시킬 계획??이라는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도입신고서는 제출하지 않아
 삼성의 자동차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는 숙원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朴正熙 대통령이 李秉喆 회장에게 아시아자동차 인수를 권한 적이 있는데 이때 비서진이 “사업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들어 인수를 말리자 이회장은 기아자동차에 넘겨버렸다. 이때 자동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이회장은 두고두고 아쉬워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삼성의 자동차시장 진출은 아직 공식화되지는 않고 있다. 정부에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이다.

 현재 상공부의 분위기는 종잡을 수 없다. 워낙 미묘한 사안이라 가부를 분명히 밝힐 입장이 못된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공업발전법에 의한 산업합리화 조치가 해제돼 이미 자유화된 업종의 진출을 막을 수 없다는 논리가 있는가 하면, 설비투자의 합리화와 업종전문화 등의 정책을 들어 제한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金裕採 기계공업국장은 “기술도입신고서가 들어오면 검토하겠다??고 언급을 회피했다.

 삼성이 상용차를 만드느냐, 좌절하는냐는 삼성중공업이라는 한 회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산업조직 정책방향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신규진입을 권장할 것이냐, 억제할 것이냐의 기준이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신규진입하려는 업종이 얼마나 경쟁이 심한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어떤 회사가 들어와서 초래할 경쟁촉진으로 경쟁력이 강화되는 경우와 아니면 과당경쟁→영세화→경쟁력약화로 가는 경우 두가지 중 어느쪽이 클 것이냐를 저울질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이 업종은 규모의 경제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가, 내수와 수출전망은 어떤가, 신규진입이 업종 전체의 기술개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등 다각적인 검토도 따라야 할 것이다. 삼성의 자동차시장 진출 여부는 산업구조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될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