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얼음장’에 묻힐 뻔한 삶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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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변의 겨울》

이태호 지음
신경원 증언 다섯수레 펴냄

 국토의 최북단 만포의 어느 쓸쓸한 야산에 묻힌 김규식 박사, 약물중독설과 자살설이 떠돌았던 조소앙 선생의 최후, 몇끼의 비상식량만으로 적유령산맥에 버려졌던 정인보 선생 등 분단 이후 확인할 길이 없었던 납북 요인들의 북한에서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한 다큐멘터리《압록강변의 겨울》이 도서출판 다섯수레에서 나왔다.

 해방 이후 북한의 여러 핵심 부서직을 역임하다가 지난 80년대 중반 망명해온 신경원씨의 기로과 증언을 바탕으로 이태호씨(평화신문 편집위원)가 집필한 이 책은 ‘해석으로서의 역사보다는 사실로서의 역사’이기를 원한다. 이 실록은 6·25 때 납북된 요인들이 북한정권 아래서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그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했는가를 보여주는데, 이들의 ‘여생’은 거개가 북한당국과 민족통일의 방법론을 놓고 갈등하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권력의 내부논리, 권력장악 과정, 인민의 생활 등이 드러난다.

 “납북인사들은 한결같이 고귀한 생애를 마감했다”는 증언자 신씨는 지난 51년부터 68년까지 북한의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부국장으로 있으면서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최동오 오하영 윤기섭씨 등 임정요인들의 납북과정과 북한에서의 고뇌에 찬 삶을 목격할 수 있었다. 신시는 그들의 비극적 생애를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의 제단에 바쳐진 애국애족의 삶이었다”고 강조하면서 “그분들에 대한 정당하고 바른 평가에 도움을 주고 싶은 심정에서 이를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일성의 납북인사들에 대한 회유와 공작 또는 예우, 온건파와 강경파로 대립한 납북인사들의 내부 갈등, 공산체제의 한복판에서 과감하게 주창된 납북인사들의 집결체가 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등 납북인사 및 북한 실력자들 1백14명이 엮어내는 이 ‘현대사 실록’은 저자의 표현대로 “분단의 얼음장 속에 영원히 묻혀버릴 뻔한 역사의 진실”의 귀중한 일부이다. 통일의 연대라고 불리는 이때 이 실록은 “분단의 어둠을 밝혀온 촛불”로서 자리잡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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