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김영삼 대표 막판 힘겨루기 임박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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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후보 결정 “총선 후?? ??총선 전??대립 …탈당 가능성도

 ‘치킨 게임??이란 것이 있다.  두 사람이 반대편에서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온다.  그대로 부딪치면 둘 다 죽든지,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때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치킨(겁장이)이 된다.  누구의 담력이 센가를 시험하는 위험한 게임이다.  대통령후보 결정을 둘러싼 민자당 내 갈등의 양상은 치킨 게임을 연상시키는 면이 없지 않다.

  불과 3개월 전 김대표의 ‘자유경선 수용불사??발언을 계기로 청화대측과 김대표측간에 형성된 난기류는 지금은 확실히 해소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노대통령과 김대표는 지난달 미국 방문중에 보여주었듯이 서로를 치켜세우는 등 더할 나위없이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두 사람간의 관계 회복은 김대표의 태도변화에 기인한다.  김대표는 지난 7월말 소위 ??제주도 발언??이후 그전과는 판이한 행보를 보여왔다.  노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로 스스로의 위상을 설정하고 여권 2인자로서의 위치를 굳히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그는 노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자중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김대표 ‘머리 깎인 삼손꼴??우려
 두 사람간의 이런 좋은 관계가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이에 대해 많은 정치관측통들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지금의 우호관계가 멀지 않아 긴장관계로 돌아설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민자당의 각 계파가 ‘연내 정치일정 논의 중지??약속을 한 상태이지만 김대표는 12월 중순 정기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노대통령과 배수진을 친 담판을 벌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대표측의 요구는 말할 것도 없이 ??예측가능한 정치??를 명분으로 한 ??총선 전 후보 가시화??다.  김대표의 선제공격이 필연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의 입장에서 총선을 먼저 치른다면 정치적으로 곤궁한 위치로 떨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민주계는 김대표가 총선 전에 어떤 형태로든 후보의 입지를 확보해놓지 않으면 선거 후에는 ??머리깎인 삼손??꼴이 되어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노대통령과의 관계가 아무리 호전됐다손 치더라도 그 신뢰가 대권을 보장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김대표에게 유리한 당내 역학구도와 정치판도가 선거 후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김대표측은 민정?공화계의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또 노대통령의 ??최대한 시간끌기??작전에 맞서 눈에 보이는 조처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 대결은 노대통령과 김대표 두 사람간의 한 판 힘겨루기로 압축된다.  박태준 최고위원이 거느리는 공화계가 노대통령의 통제하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정치 고단자들은 모든 지모와 힘을 동원, 이 사안에 집중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또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김대표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자신의 후보 가시화가 총선 전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 ‘당을 깨고 나가는 것??이다.  신민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그 무기의 파괴력은 더욱 커졌다.  야당이 통합되기 전에 김종필 최고위원이 노대통령을 만난 후 ??어떤 경우에도 국민은 민자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등의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여권 핵심부는 김대표의 탈당이라는 최악의 경우까지도 각오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야당 통합으로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출신의 여당 의원들이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때에 당까지 깨지면 여권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야당 통합은 김대표의 입지를 강화시켰고, 김대표는 여권의 후보 경쟁에서 이런 여건을 십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아졌다.  김대표가 당을 뛰쳐나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면 그의 조기 후보 가시화 요구를 정면으로 다루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조기 후보 가시화는 바로 노대통령의 통치기반 약화와 직결된다. 

‘김대표=후보??아니면 ??당 깨진다??
 대통령후보가 가시화되는 순간부터 통치권의 누수 현상이 급격한 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양분돼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총선 후에 후보를 결정한다는 노대통령의 입장은 단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대통령은 차기 정권을 넘겨주는 연장선상에서 후보 가시화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결국 노대통령에게 이 사안은 대권의 향방, 통치권의 행사범위에 관한 문제다.  노대통령이 김대표를 후보로 생각하고 있든, 후보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든 간에 두 사람은 후보가시화의 문제를 놓고 대립할 것이 틀림없다.

  여권의 대통령후보 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대령령의 의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의 마음이 김대표에게 기울었다면 후보 가시화는 통치권의 누수를 얼마나 막을 수 있는냐의 문제에 국한될 수 있다.  두 사람간의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기는 비교적 수월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의중에서 김대표가 배제돼 있다면 문제는 아주 심각해진다.  서로가 향후 정치 전망과 역학 구도에 대한 판단의 편차, 혹은 착각에 기인하지 않는 한 타협점은 있을 수 없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노대통령의 김대표를 유력한 후보들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김대표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총선에서 민자당이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면 김대표 외에 다른 사람이 선택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민주당의 진출이 두드러져 정권의 재창출이 위협바을 경우에는 김대표를 내세워 야권의 후보로 굳어질 것으로 보이는 김대중 대표와 대결시키리라는 분석이다.  여하튼 노대통령은 총선을 치른 후에 후보 선택권을 행사하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김영삼 대표가 총선 결과에 따른 후보 선택의 유동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반드시 자신이 여당의 대통령후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것도 총선 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만약 총선 전에 후보 가시화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YS를 대통령후보에서 배제함을 뜻한다.  총선 후에는 노대통령이 설령 YS의 손을 들어준다 해도 그가 후보로 선출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총선 전에 노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당무회의나 의원총회를 소집, ??김대표=후보??의 공식을 확실하게 쐐기 박는 언질을 주든지, 여당 총재직을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은 깨진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김대표의 탈당은 스스로를 대권에서 멀리 밀쳐내버리는 자살행위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방향을 정하면 ‘깨지더라도 밀어붙이는??그의 정치 스타일로 미루어볼 때 적절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일을 저지를??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정치관측통들은 말한다.

  한 민주계 인사는 문제해결에 있어서 순리를 강조하는 노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감안하면 정국의 불안정을 자초하는 무리한 수를 쓸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본다.  소위 대권주자들 중 노대통령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는 사람은 김대표밖에 없고, 김대표가 후보로 결정되지 않을 경우 우선 나라가 시끄러워진다는 주장이다.

일 틀어질 경우 전면전 예상
 여권에서는 최고통치자를 향한 절저한 순응이야말로 권력 유지와 확대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3당합당 후 김대표의 행태는 확실히 여권의 생리와

통념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89년 봄 박철언 당시 정무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이루어진 청화대 담판과 지난해 가을 내각제 각서 유출과 관련한 마산행 파동 등이 없었다면 김대표가 지금의 입지를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는 최고통치자의 뜻을 거슬러 버팀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확보한 독특한 공식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과의 임박한 대결은 김대표의 정치행태의 연장이다.

  한 민주계 의원은 12월중 김대표가 노대통령에게 자신의 후보 지명을 정면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2인자의 자리를 충실하게 지켜 할 만큼 했으니 당당하게 달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이 틀어질 경우 김대표에 의해 분란이 촉발되는 전면전 양상이 되리라고 그는 예상했다.  김대표가 시동을 걸지 않는 한 민주계는 민정?공화계에서 어떤 시비나 도발을 해 오더라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후계구도 문제가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지도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대통령이 김대표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여 양보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김대표가 가만히 있는데 노대통령이 그의 요구를 먼저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김대표의 선제 공격에 의해 촉발될 두 지도자간의 힘겨루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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