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대신 ‘선언’오가는 남북 새 관계
  • 표완수 국제부장 ()
  • 승인 199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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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 열 가능성 ‘정상궤도 이탈’ 지적도

 9월초 개최키로 예정돼 있는 남북 고위급(총리) 회담을 앞두고 남북한간에 새로운 제의·선언들이 교차되고 있다.  최근 연이어 발표되고 있는 이같은 제의들은 양측의 선전전략적 성격의 일면을 보이기도 하나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도 있어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 소지가 엿보인다.

  정부는 7월 23일 통일원·법무·국방장관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盧泰愚대통령의 ‘7·20 민족대교류’ 제의와 관련하여 북한측 전제조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 洪性澈 통일원장관은 “정부는 8월15일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범민족대회’에 우리측의 참가를 허용할 것이며 대회 참가자들이 조국통일 촉진 대행진을 위해 백두산을 출발, 판문점을 거쳐 한라산까지 가는 것을 환영하며 아울러 우리측 인사들이 한라산을 출발, 판문점을 거쳐 백두산까지 가는 것도 허용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李種南법무장관과 李相薰국방장관은 △남북한의 국가보안법·사회안전법 등의 개폐문제와 관련한 남북 법무장관회담의 개최 및 이를 위한 예비접촉 등을 제의하고 이와 관련한 구체적 추진방안등을 밝혔다.

  3부 장관이 발표한 정부의 대북제의는 북한이 노대통령의 ‘민족대교류 제의’와 관련해 내세운 전제조건에 대해 정부가 ‘전향적 대응’이라는 원칙 아래 대북 연계정책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콘크리트장벽’을 조사하자는 북한측 제의에 대해 정부는 “형평의 원칙에 따라 우리도 북한지역에서 조사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이를 수용하면서도 북한의 사회안전법 등의 개폐와 연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연계 대응을 보며 남북관계 및 이를 진척시키기 위한 양측의 노력이 어느 단계에 와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최근 남북관계 진전에 활력소가 될 수도 있는 새로운 방안이 활발하게 제시된 것은 사실이나 이같은 제의는 당초 예정돼 있던 총리회담이라는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채 양측의 일방적 선언 형식으로 튀어나오고 있어 국민의 기대와 달리 결실을 맺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염려하는 소리도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간에 진행되는 ‘일방적 선언 경주’의 발단은 7월5일 평양에서 발표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성명이었다.  7월3일 남북고위급회담 제7차예비회담에서 ‘8월중 남북총리회담 개최’에 합의한 지 이틀만에 북한은 ‘조평통’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북남 접촉과 내왕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판문점 북한측 지역을 8월15일부터 개방할 것을 선언하고 “남측도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 내용이었다.

  총리회담을 목전에 두고 나온 북한측의 이같은 일방적 선언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한편으로는 당황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수용하고 나아가 ‘남북한 자유왕래’라는 보다 폭넓은 교류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것의 구체적 표현이 노대통령의 7월20일자 ‘남북간 민족대교류를 위한 특별발표’였다.

  노대통령은 이 발표에서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을 ‘민족대교류의 기간’으로 선포하고 이 기간동안 △판문점을 개방, 북한동포들을 제한없이 받아들이고 △남한 국민들로 하여금 제한없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며 △이같은 민족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추석·설날·한식 등 민족명절에 교류를 정례화 하고 △북한측이 사정상 상호교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북한동포에 대한 남한사회의 전면개방을 일방적으로 실천한다는 등의 내용을 밝혔다.  국내 일부 재야 관측통들은 ‘특별발표’의 시점에 주목, 그것이 국내정치적 목적을 띤 선전적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기도 했다.  7월20일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평민당·민주당·통추회의 등 3자의 야권통합을 위한 첫 모임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학자들 중에는 ‘특별발표’를 “북측의 악의에 대한 선의의 선전전략”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북한은 7월5일 판문점 개방을 일방적으로 선언했으나 그것은 북한이 8월15일을 전후해 그곳에서 개최키로 한 ‘범민족대회’에 남쪽의 참가자들을 유도키 위한 조치일 뿐 진정한 개방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발표’는 이같은 선전성 여부와 관계없이 남북관계의 진전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특별발표’의 취지와 정신을 구체화시켜나가는 데 있어 국가보안법 개폐와 文益煥목사·林秀卿양 등 일부 시국관련 구속자들의 석방문제가 도외시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은 7월20일 노대통령의 5일간의 남북자유왕래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즉 “판문점 범민족대회를 파탄시키고 민자당의 횡포로 빚어진 국회사태에 쏠리고 있는 남조선 인민들의 이목을 딴데로 돌리기 위한 기만적 선전광고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콘크리트장벽 해체, 문익환목사·임수경양 등의 석방, 전민련과 전대협의 ‘범민족대회’ 참가 보장 등을 요구했던 것이다.  23일의 3부장관 합동회견은 이같은 북한측 주장을 정면으로 받아 북한을 한걸음 더 앞으로 밀고나간 셈이다.  이같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움직임은 주변 강대국의 한반도 정책이 변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소련은 최근 북한에 대한 원전지원을 동결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대화 및 주한미군 보유 핵무기 철거를 전제조건으로 자체 핵시설에 대한 현장조사를 미국측에 제의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한·소간에는 최근 국제직통전화 개설 및 정기 직항로 개설이 합의된 바 있다.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올 가을 당파를 초월해 구성한 대표단의 북한방문을 추진중이며 북한의 대남·대일 책임자인 全琴哲 조평통 서기국장은 내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릴 예정인 ‘조선학 국제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및 동유럽권의 대변혁에 따른 세계적 질서재편의 와중에서 대북한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절실한 요즘이다.  정부의 대북 연계정책의 실질적 효과는 과연 어떠한 것이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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