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弓도 구슬땀 극기의 과녁
  • 강용석 기자 ()
  • 승인 199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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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선수들 태릉서 마무리 훈련

양궁· 복싱· 핸드볼이 ‘금밭’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꼭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기대하는 종목을 꼽자면 어느 종목일까.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태권도’라고 대답하겠지만, 북경대회에서는 태권도가 빠졌기 때문에 남녀 핸드볼· 여자 하키· 복싱· 남녀 양궁· 축구 등으로 압축하여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면 여자 양궁을 ‘0순위’에 올려놓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여자 양궁에는 입신의 경지에 있는 金水寧 선수(19· 고려대 1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녕은 스포츠선수로서는 더 이상 노릴만한 목표가 없다.  서울올림픽 2관왕, 여자 오픈라운드 전 부문 세계기록 보유자.  더욱이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기네스북에까지 이름이 올랐다.  우리가 김수녕을 믿는 것은 이같은 과거의 성취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 양궁계를 천하통일한 지금도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 연전연승하고 있기에 그렇다. 164cm, 57kg, 운동선수로서는 그리 큰 체격이 아니다.  거리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평범한 인상이다.  ‘신기록 제조기’라는 애칭을 통해 연상하게 되는 매몰차고 냉철한 인상은 전혀 없다.

  태릉선수촌의 하루는 새벽6시 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벼운 구보와 체조로 몸을 풀고 7시부터 아침식사, 김선수는 밥맛이 없더라도 반드시 밥그릇을 다 비워야 한다.  자기에게 기대를 거는 4천만이 있기 때문이다.  또 지구 어느 곳에선가 자신을 겨냥하고 훈련을 거듭하는 궁사가 있기 때문에 체력관리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

  아침식사 후 9시30분까지는 휴식시간.  이 시간을 이용해 음악감상과 독서를 하지만 제대로 귀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오직 활과 화살만이 자리 잡고 있다.

  정오까지는 아침 훈련이 계속된다.  1년 전까지는 아침 훈련의 일환으로 명상시간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김수녕에게 활이 없는 생활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활시위를 당기는 일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후배가 자신보다 잘 쏘면 괜히 신경질이 나고 숙소에서 후배에게 잔소리도 하게 된다.  물론 얼마 안 있어 다독거려주지만.

  그녀는 동료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자신의 신기록 행진이 그들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선수의 훈련방식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쏘고 또 쏘고 하는 교과서적인 동작의 반복이다.

  자기 나름대로의 弓道철학이 있다면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않으며 화살을 빨리 당긴다는 것.  국민학교 3학년 시절 활을 처음 잡았을 때, 아버지가 “힘이 약하니 활을 오래 잡지 말고 빨리 쏘라”는 충고가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소녀 김수녕에게는 선수촌생활이 따분할 때도 있다.  어머니가 가끔 선수촌을 찾아오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사귄 여자 친구가 전화를 걸어줄 뿐, 특별한 변화가 없다.

  남자 친구는 없다.  자신이 ‘유명인사’이고 1백10만원이라는 거금의 연금을 매달 받기 때문에 남자들의 접근이 힘들 거라고 동료들이 놀리면 활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원망은 활 때문에 가정형편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미래의 꿈은 체육학 교수

  3시부터 2시간 동안 오후 훈련이 계속된다.  쏜 화살이 계속 10점 과녁으로 파고들어도 김수녕은 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작년 4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열린 대표2차선발전에서 탈락했던 쓰라림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여서 은퇴까지 생각했었다.  선수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때였다.

  그러나 김선수는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3개월 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연속으로 갱신하며 우승했다.  그녀는 “그 대회에서 우승했을때는 저 자신이 대견스러웠다”고 말한다.

  김수녕의 별명는 ‘독사’.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오뚝이 같은 힘을 발휘한다.  김정호 코치는 김수녕의 천부적인 운동감각과 정신적인 성숙을 장점으로 평가한다.

  오후 연습 후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기까지 김수녕은 책을 뒤적이지만 마땅한 양궁서적이 없어 속상하기만 하다.  양궁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체육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인 김수녕.  그러나 그녀는 “결혼할 남성이 양궁을 싫어한다면 활을 영원히 던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동료의 좋은 기록을 시샘하면서도 일요일이면 반드시 성당에 나가 동료의 건강을 기원하는 김수녕.  그녀가 북경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계속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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