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온 기분’ 파는 관광농장
  • 고명선 기자 ()
  • 승인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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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기쁨 맛보는 농장형, 경관 빼어난 산촌계곡형 등 전국에 1백40여개소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로 가는 길목. 뱀을 잡으러 다니는 소년들이 막대기를 들고 지나간다. 검게 그을린 얼굴 위로 간간이 비가 뿌리지만 낯을 찡그리기는커녕 오히려 시원다다는 표정들이다. 이들을 지나친 지 5분도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한 내설악 한계령 입구 한계리 관광농업지구. 너와집을 본뜬 건물이 옹기종기 다섯채 모여 있다. 조그만 원두막이 있고, 앞뜰에는 풋고추 수박 상치가 심어져 있고, 뒷마당에는 토종닭 여남은 마리가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뛰놀고 있다. 주인 金錫鳳씨(46 · 한계3리 관광농업대표)는 강원도 토박이로 86년초 원두막집을 이용해 이 지역‘관광농업단지’를 개척한 장본인이다.

  “그당시 우리나라 경제 발전 속도가 ‘톱’이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지요. 그때부터 이제는 농촌이 도회지로부터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농촌은 도회지에 봉사만 해오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농사꾼이 무슨 장사냐고 미친 사람 취급도 당했지만 매년 집을 한 채씩 늘려갈 정도가 되자 다른 주민들도 이 ‘사업’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너와집 형태의 집이 다섯 동이나 되는데 증축할 때마다 시설도 고급화되어 간단한 주방까지 갖춘 최신식 콘도형태의 건물도 한 채 있다. 5~6명용은 1일 1만원, 미니콘도는 3만원, 10명 이상 단체손님은 1인 3천원씩 받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여관보다 값이 헐하지는 않지만 성수기에도 절대 바가지요금을 부르지 않는다. 농장에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가꾼 참외 포도 등 과일을 직접 따거나 관찰하면서 자녀들은 자연학습의 기회를, 어른들은 인근 관광명소를 둘러봄으로써 농촌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사업’이 ‘농업’보다는 ‘관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도시사람들은 향수어린 농촌분위기를 맛보기를 꿈꾸면서도 실제로는 농촌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또 내집자식만 귀한 줄 알지 힘들여 농사한 정성을 모르더군요.”

  자연학습용으로 마당에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다래 가래 등 생소한 과일나무를 심어놓았지만 도시어린이들은 먹으려고는 하지 않고 열매를 따서 던지면서 장난을 하는데 이를 나무라는 어른은 거의 없다고 김씨는 속상해 한다.

 

농촌휴양 시범마을도 문 열어

  관광농업은 지역여건과 사업내용에 따라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다. 과수원, 농장 등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파는 농산물 판매형(원두막 판매장 또는 간이식당 형태로 운영), 생산현장에서 농민들이 가꾸어 놓은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고 맛보고 사는 농산물 채취형, 그리고 농장, 과수원에 각종 레저와 스포츠시설을 갖추어 이를 유료로 제공하는 장소제공형(어린이 학습농장, 청소년 학습장), 과수원과 논밭등을 일정한 규모로 나누어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한 임대형(주말농장, 임대농장, 가족농장 등의 형태로 운영). 그러나 관광농업단지는 대개 뚜렷한 구별이 없고 대부분 위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농산물 판매와 채취를 위주로 하는 농장형태, 레저시설을 위주로 하는 유원지형태, 자연경관을 위주로 하는 산촌계곡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관광농업지구는 84년에 처음 지정된 이래 올해까지 전국에 1백40개소로 늘어났는데 농가의 자금투자능력과 경험이 부족하여 관광객들에게 만족을 주기에는 미흡하다. 또한 위락시설을 갖춘 곳은 날로 번창하는 반면, 임대형 등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곳은 실패한 곳이 많다. 지난해에 발표된 이종원씨의 <관광농업개발의 기본방향 설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내방객의 희망활동내용은 시골풍경 감상이 56.7%로 가장 많고 낚시 · 가재잡이가 38.5%, 농작물재배와 유기시설 이용은 제일 수치가 낮았다. 즉 이용객들은 ‘관광농업’에서 일반 휴양지와는 다른 농촌냄새를 맛보고 싶어하면서도 피땀 흘려 곡식을 가꾸는 농촌생활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러한 이용객들에 편승하여 어떤 농가는 잘 알려진 토속음식만으로 손님을 끌어 들이기도 하고, 농가가 아니면서 영리 차원의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관광농원은 농촌의 모습을 전달하기보다는 ‘상업화’로 치닫는 감도 없지 않다.

  농업협동중앙회 朴永來대리(농촌개발부 농외소득과)는 “순수 농촌지역은 관광객을 금기로 여겨 현재 안타깝게도 농촌의 정취를 진솔하게 맛볼 만한 곳이 드물다”면서 대안으로 올해 ‘농촌휴양시범마을’을 지정하여 7,8월 두달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국 9개도마다 참여농가 10호를 지정하여 농촌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난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손님을 받기 시작한 백담사 부근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이곳에 ‘한옥민박촌’이라는 간판을 내건 鄭宗榮씨(59 ·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는 농촌주택개량사업이 한창이던 지난 83년 때마침 우체국 집배원에서 정년퇴직하게 되면서 받은 퇴직금에다 융자를 받고, 또 소 두 마리 판 돈을 보태어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정씨는 지금도 논밭 3천평을 부치고 있으나 기력이 전만 같지 못해 ‘애들 학비나 보태려고’ 휴양시범마을의 민박사업을 자청했다고 설명한다. 1일 1만원, 내부시설은 도시 못지않게 깔끔하다. 26평에 방 5개. 주방과 대청마루가 있어 여느 양옥집과 다를 바가 없다. 수수깡을 얽고, 짚을 섞어 바른 외겹 흙벽이어서인지 꽤 넓어 보인다. 민박촌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규모인데 각 방마다 취사도구를 가져와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주인의 인심이 좋은 것이 상업적인 민박과는 다른 점이다. “앞마당에서 파나 상치, 더덕을 캐다주면 무척 좋아하대유.” 몸에 배인 나누어 먹는 인심이 환대를 받는 사실을 정씨는 즐거워 한다.

 

“닭 몇 마리 팔았다고 세금 내라니요”

  文祥姬씨(강원도 인제군 원서면 농협부녀부장)는 “친척집을 방문하듯이 부담이 없는 것이 장점”이라면서 이왕이면 농촌소득을 올려준다는 기분으로 농가를 이용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계리 김석봉씨는 지금 새로운 고민에 싸여 있다.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에 인근 농사꾼들이 너도 나도 ‘부업’으로 뛰어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을 하라고 독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철장사인데 제일 장사가 잘되는 날 와서 영업상태를 보고 ‘곱하기 3백65’해서 세금을 때리면 망할 수 밖에 없다고 울쌍이다. “검은 고무신 신은 농사꾼이 닭 몇 마리 팔았다고 해서 세금을 내라니요.”

  농촌이 ‘내고향 쉼터’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모처럼 활성화되기 시작한 관광농업을 도 · 농간의 상호이해의 장으로 만들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필요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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