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學俊대통령 사회담당보좌역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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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북교류 정부가 주도”

‘아시아 세력균형 속에서의 남북한통일’ - 대통령 사회담당봐좌역 金學?박사의 학위논문 제목이다. 그를 굳이 <시사저널> 인터뷰석에 앉히는 이유는 그의 논문 제목이 지니는 時?性 때문만은 아니다. 요즈음 텔레비젼을 켤 때마다 툭하면 등장하는 그의 진면목을 심층취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끝내는 북한대표들의 불참으로 귀결된 범민족대회 제2차 예비회담을 정부측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장소문제로 유찰된 남북한 민간단체의 ‘최초의 교류’에 대해 정부는 책임을 느끼는가 아닌가를 듣기 위해서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에서 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거기서 다시 대통령 사회담당보좌역으로 전신한 김박사는 盧대통령의 ‘사실상의 입’역할을 맡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이 따로 있고 최근 남북대화에 관한 한 통일원장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굳이 인터뷰하는 까닭은 이번 남북교류에 관한 노대통령의 진의를 듣기 위해서이다.

 

● 한여름 국민들에게 기대와 의혹을 동시에 안겨준 盧泰愚대통령의 ‘7·20 남북대교류’ 선언의 배경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올해는 해방 45년이 되는 해 아닙니까.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이미 88년의 7·7선언, 89년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제의 등 남북교류와 통일문제에 관한 전진적 태도를 일관되게 취해왔는 데도 사실상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부 안에서는 해방 45년을 맞는 올해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이 제안을 한 것입니다.

 ● 상당히 진전된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그 선언일자가 하필이면 야권통합을 천명하는 3자회동 날짜와 때를 같이 함으로써 ‘정국회석용’ 물타기라는 의혹의 눈길도 있지 않았습니까?

 아이구. 그건 전혀 사실과 다른 오해입니다. 유심히 지켜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6월29일 노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신간>에 자유왕래 실현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었고, 그 예비조처로 7월14일 임시국회에서 ‘남북교류와 협력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어요. 법률이 통과된 7월14일과 왕래가 실현될 8월15일 사이에 발표할 시간대는 한정된 것 아니겠어요? 또 독일은 이미 7월1일 경제·사회적 통합을 선언한 데 이어서 오는 12월2일 총선을 실시하는 판 아닙니까. 하필이면 야권 3자회동날이냐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중요한 야당집회가 없는 날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 것 일일이 고려하다 보면 정부로선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어요.

 ●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해온 재야단체 전민련의 주최의 범민족대회를 당국이 선뜻 인정한 데 대해서도 여러 갈래의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정책이란 것은 변화에 대한 대응이고 관리라고 봅니다. 변화에 둔감한 정부, 변화에 둔감한 정치란 있을 수 없고 그런 정부는 살아남을 수도 없어요. 최근 소련의 변화, 동유럽의 변화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치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변모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입장인 만큼 당국의 정책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범민족대회 승인도 그런 맥락입니다.

 ● 하지만 당국이 이 대회를 ‘인정’하는 선을 넘어 회담장소 변경 등으로 지나치게 끼어들어 오히려 2차 예비회담을 무산시켰다는 것이 전민련측의 주장입니다. 당국이 회담성사를 진정으로 원했는가를 놓고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우선 이번 일이 북쪽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일 아닙니까. 아직까지 남북관계는 국제법상 엄연히 휴전상태, 즉 준전시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제관례 도는 외교관례상 상대측에서 넘어오는 사람에 대한 신변과 편의 그리고 무사귀환의 세가지 보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져야 할 의무입니다. 이 의무는 결코 어느 한 재야단체가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북한쪽에서도 우리 국무총리에게 그 세가지 의무를 대한민국 정부가 져야 한다고 서신을 보냈었습니다. 그런 외교관례와 북한의 요청에 근거해서 남북한이 8개항에 합의 했음에도 북측이 그 합의사항을 깨뜨린 것이지요.

 ● 하지만 회담 주관자가 민간단체인 만큼 당국이 좀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요. 전민련측은 판문점에서 북측대표와 얼굴 한번 대면하지 못한 채 남북 연락관에 의한 간접접촉만 이뤄진 데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간 차원의 회담을 승인했다고 해서 정부는 완전히 옆에 밀려서고 이래 재야단체가 북측과 협상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수는 없다는 점이에요. 어떤 형태의 교류건 회담이건 모든 남북교류는 정부 주도라는 점을 확고히 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동서독의 민간교류도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재야측은 흔히 민중이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민중주체통일론’을 주장하는데, 대한민국 헌법은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부여하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남북한 평화공존 관계에 이를 때까지는 안보 문제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 남북통일이 6천만 민족의 과제인 이상 통일문제가 반드시 정부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는 인식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재야인사들이 통일열기를 고조시키고 정서를 불러일으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점은 인정합니다. 또 역대정권이 남북교류·통일문제를 정권안보의 차원에서 이용해온 측면도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 정부는 6·29 이후 탄생된 민간정부이며 일관되게 통일지향적인 태도를 취해왔어요. 국민들의 통일열기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적극적으로 통일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 점을 믿고 재야는 통일문제에 관한 한 정부의 주도권을 완전히 인정해야만 합니다. 또 재야는 ‘양쪽 체제의 동시인정이나 유엔가입은 분단고정화 논리’라는 식의 교조적인 통일논리를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유엔에 동시가입했던 동서독이 분단이 고착되긴커녕 마침내 통일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 이번 2차 예비회담 과정으로 유추해볼 때 범민족대회의 성사도 상당히 비관적인 것 아닙니까?

 통일원장관께서 천명했듯이 어디까지나 정부 주도하에 이뤄지는 교류임을 인식한다면 성사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범민족대회라면 어디까지나 각계각층의 사회단체가 망라되어야지, 일부 재야단체만이 참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참여를 원하는 모든 단체의 참가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범민족대회 성사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 서독처럼 동독을 개방의 場으로 끌어내고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남한 내부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평화통일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우리 남한 자체가 건강한 민주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엔 계층간·지역간·세대간 무제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고 또 그것을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민주화는 6·29 이후에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세대 이상의 독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면 상당히 평화롭고 빠른 속도이고, 앞으로 그 속도는 더 빨라지리라 생각합니다.

 ● 대통령의 이미지 관리에 김보좌관역의 아이디어가 많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6월29일 생방송으로 방영된 <국민과의 대화>도 김보좌관의 발상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깥에서는 청와대 비서실의 정책결정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기면 누구 아이디어다 하는 이야기가 나도는 듯합니다. 청와대의 정책결정 과정은 절대로 어느 한사람의 머리속에서 이뤄지진 않아요. 일주일에 다섯 번 비서실장 주제로 열리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자기 분야가 아닌 부분에 관해서도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체의 의견수렴 결정을 거쳐야 합니다. 물론 6·29선언 3주년을 기해 국민들에게 그 진척상황이나 민주개혁의 방향 등을 알리는 게 필요하고 그 방법은 종래의 상투적인 기자회견보다 신선한 방식이 종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졌던 건 사실입니다.

 ● 형식만 신선했을 뿐 내각제 등 핵심을 찌르는 질문은 없었습니다.

 청와대측은 출연자 선정이나 질문범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모든 걸 KBS와 MBC에 맡겼습니다. 사실 그런 질문은 기탄없이 듣고 싶었던 것인데 의외로 제기되지 않아 저희들도 내심 놀랐지요. 그 시간을 통해 정치문제를 놓고 언론매체들이 보이는 관심과 국민들의 관심 사이에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일반국민들은 내각제 같은 정치문제보다는 경제, 민생치안 확립, 물가문제 등 피부로 와닿는 문제에 훨씬 관심이 많았어요.

 ● 사회담당보좌역으로 최근의 파행정국을 둘러싼 사회여론과 정국수습책에 대해선 대통령께 어떤 보고를 했습니까?

 평소에 언론에 비친 여론과 가계각층 사회인사들의 의견 등 주로 비판적인 여론을 수렴해 대통령께 전하려고 애씁니다. 예를 들어 <한겨례신문> 만평 같은 것도 다 보여드리지요. 이번 파행정국 이후로는 두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회에서의 강행통과와 폭력에 대해 국민여론이 비판적인 반면 국회해산과 조기총선엔 회의적이라는 큰 두 줄기 흐름을 전해드렸습니다.

 ● 그런 보고에 근거하자면 대통령은 국회해산이나 조기총선은 피하되 야권을 장내로 끌어들일 대타협책을 제시하게 될 것 같은데…

 여러 갈래로 비슷한 보고가 행해졌기 때문에 조만간 국민과 야당을 납득시킬 수 있는 수준의 대타협책이 나오리라고 봅니다. 제가 단언하긴 어렵습니다만, 여야 사이에 정당추천제를 포함한 지자제 실시문제와 국가보안법·안기부법의 개정 보완이 진지하게 거론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지금 남북통일과 나아가서는 21세기에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선두주자가 될 수도 있는 국제정치적인 호조건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내부갈등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야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사고, 발상의 전환으로 국내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가진다면 사실 타협못할 일이 없지요.

 ● 얼마전 서울대의 한 원로 정치학교수가 회갑을 맞았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지켜온 유일한 학자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관계·정계로 진출한 정치학자들에 대한 세간의 따가운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그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던 후학으로서 강단을 계속 지키신 점을 마음 깊이 존경하고, 또 그런 전통이 계속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정치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실천의 학문’이므로 정치학자가 현실세계에 나와서 일하는 건 극히 자연스런 일이지요. 또 학자의 소명은 연구 교육 봉사 세가지인 만큼 현실세계에의 참여도 포함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민주적인 정부에서 봉사한다는 전제가 수반되어야 하겠지요.

 ● 12대 국회를 계기로 현실에 몸을 실었는데, 그렇다면 5공화국 정부를 민주적인 정부라고 판단하신 것입니까?

 그 점에 대해선 그 동안 저를 아껴주고 기대했던 모든 분들게 아직까지도 면목없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6·29선언을 계기로 태어난 6공화국은 민선정부인 만큼 지금의 체제와 정부에 대해선 거리낌없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 노대통령이 민주적 사고와 지향성을 지닌 분이라서 이 정부를 돕는 일을 학자로서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 서울대 교수시절 펴낸 <러시아혁명사>가 한때 운동권 학생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영향을 끼쳤는데, 그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책과 저는 운명적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 같아요. 73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그곳 친구가 귀국선물로 영화 한편을 보여주었는데 그게 바로 러시아혁명 이야기인 <알렉산드라와 니콜라스> 였어요. 워낙 감동적인 영화여서 영화의 원작을 구해 국내에서 틈틈이 읽고 있었는데, 서울대에 발령을 받고나니 전공도 아닌 ‘소련정치론’이란 강좌를 딱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자연 러시아혁명에 대한 자료를 읽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 책을 쓴 것인데, 한편에선 유신체제에 대한 절망적인 감정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큰 반향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10·26직후에 출판되는 바람에 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많이들 봤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5·17 직후 붙잡혀들어가 고생도 좀 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성숙했다고나 할까요. 그때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시절부터 주권다원론자인 정치학자 라스키에 심취한 채 그를 닭고 싶어 일찌감치 정치학과를 선택한 조숙한 학생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사회를 권력이 다원화된 사회로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회의 급속한 다원화에 비해 권력의 다원화는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그는 대답했다.

“평화통일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남한 자체가 건강한 민주국가가 돼야 합니다. 우리 사회엔 계층간·지역간·세대간 문제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고 또 그것을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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