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교향곡’ 윤이상 음악축제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9.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8~17일 서울ㆍ부산ㆍ광주에서 열려…윤이상씨 귀국 못해 ‘주인 없는 잔치’ 아쉬움

윤이상 음악 축제가 열리는 예술의 전당 음악당의 오케스트라 피트 안쪽에는 빈 의자 하나가 마련되어 있다. 이 음악제의 주인공 尹伊桑씨(77)가 무대 인사를 하기 전에 앉아 기다리도록 주최측이 준비해 둔 것이다. 그러나 윤이상씨는 이번에 그 의자에 앉아 음악제를 지켜볼 수 없게 되었다.

  음악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할 예정이었던 윤씨가 지난 9월2일 오후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해 베를린 시내 클라도어 시립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그의 귀국 문제는 전면 보류되었다.

  귀국을 앞두고 한국 정부와 벌였던 1주일간의 줄다리기가 아무래도 힘에 부쳤던 것일까. 9월2일로 예약되었던 항공편을 연기하면서까지 힘겹게 추진되었던 귀국 문제는 우여곡절 끝에 ‘일단 귀국한다’는 데까지 합의를 봤으니, 윤씨의 병세가 갑작스레 악화하는 바람에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음악계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이 ‘비단을 깔아놓고’ 모셔들이려 해도 거절했던 윤이상씨로서는 현 정부가 자신의 귀국을 무조건 환영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이상씨는 최근〈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영삼 대통령은 나와 마찬가지로 박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분”이라고 말함으로써 현 정부가 모든 면에서 이전의 정권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82년 대한민국 국제 음악제나 88년 서울올림픽 때와 같은 대규모 문화 행사를 준비할 때마다 정부가 그를 초청하려 했던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마저 그가 뮌헨올림픽 개막을 위해 만든 오페라〈심청〉을 국립극장 개관 기념으로 공연하고 싶어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정부측으로부터 입국허가는 물론 귀국후 행동까지 제한을 받게 되자 매우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 윤이상씨의 한 측근인사는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되 반성문을 써야 한다는 주문을 받은 셈”이라면서 정부측이 윤이상씨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주일간 정부 당국자, 국내 언론과 신경전을 벌이며 피로해진 윤이상씨에 대해 주위에서는 “이번에는 윤이상씨 자신이 귀국을 원했으니만큼 가지 못하게 되어 실망이 컸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초 윤이상 음악 축제가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이상씨 구국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동베를린 사건 이후 줄곧 ‘입국 규제’ 명단에 올라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윤씨의 고국 방문에 대해 통일원ㆍ외무부ㆍ문화체육부ㆍ안기부 등 관련부처 협의를 갖고, 윤씨가 과거 친북활동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지 않는 한 입국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윤씨가 고령이라는 점, 그리고 순수한 음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의 입국을 허가하기로 결정했으며, 여기에는 통일원과 고위층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귀국 결심 직후 심장병 악화로 입원
  동베를린 사건을 겪은 뒤 69년 독일로 돌아간 윤이상씨는 북한을 자주 방문하며 김일성과 교분을 나누어왔으며,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그 스스로가 조국을 등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최근〈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곡자란 자기의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만일 소련에서 내 음악제를 열었다면 거기도 갔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자신의 반정부 활동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권은 물론 광주 사태를 일으킨 전두환 정권에 대해 소신을 밝히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자기를 한 예술가로서 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귀국을 앞두고 ‘과거 친북 활동에 대해 유감을 표명해 달라’는 정부측 요청을 선뜻 수용하지 않았던 것도 “지금까지 내가 취한 행동은 정치 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에 연유한 것 같다. 그는 오히려 과거 군사 정부가 동베를린 사건, 오길남 사건을 ‘조작’하여 자신을 박해한 점에 대해 정부측이 유감을 표명해 주기를 바란 편이었다.

  그가 정부측 인사와 처음 접촉한 때는 지난 8월 25일. 김재규 베를린총영사가 윤이상씨 자택을 방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김영사는 이 자리에서 과거 행적에 대한 유감 표명과 귀국 후 정치적 발언을 일절 삼가 달라는 외무부 훈령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윤이상씨는 시종 말이 없었다고 배석한 가족은 전했다.

  이 묵묵부답은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 그는 “그것은 윤이상씨의 실망과 분노 그리고 그 둘을 합한 것보다 더 큰 귀향에의 염원이었다”고 전달한다. 윤씨도 “내 음악제를 보기 위해 가겠다는데도 이렇게 조건을 다니, 가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실망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 대통령과 총리가 각기 축전을 보내오고 제1 공영 텔레비전과〈쥐트 도이체 차이퉁〉등 독일 언론이 일제히 윤이상씨 귀국을 보도할 정도로 축하 분위기에 싸여 있던 윤씨로서는 정부측 반응이 이렇게 나오자 실망의 정도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이상씨의 실망이 커진 것은 그 다음날 서울발 한 조간 신문의 기사 내용이다. 그 신문은 ‘법무부는 아직 윤이상씨 귀국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가 입국 요청을 해오면 추후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보도하면서 ‘과거 행적에 대한 윤이상씨의 사과 표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영화〈태백산맥〉에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우익 단체의 협박 기사가 함께 실린 이 신문은 윤씨에게 평소의 불안을 가중시켰으며 “정부가 신변보장을 하지 않는 한 귀국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굳히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곧 현지 언론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마련하고 “아직도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기사가 나오는 데 대해 심한 분노를 느낀다. 이런 분위기라면 귀국을 포기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국내 언론이 ‘윤이상 귀국 불가’를 알린 것은 물론이다.

  윤이상씨는 9월2일 자택에서 김재규 총영사를 다시 만났다. 세 번째 대면인 셈이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김포공항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었다. 법무부 출입국심사과가 안기부 요청을 받아들여 윤이상씨의 입국 규제를 풀었다고 밝힌 것은 8월31일. 법무부 관계자는 “윤이상씨가 공연 참관, 강연회, 고향 방문을 위해 귀국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날 윤이상씨가 내린 최종 결론은 “일단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귀국 절차와 규제가 여전하고 신변보호 문제도 미진한 상태이지만 고향 충무가 그를 부르는 소리는 그의 말처럼 “눈 딱 감아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국내의 한 일간지가 ‘누구인가, 어둠 속에서 그의 귀국을 끈질기게 지연시키는 세력은’이라고 한 질문은 윤이상 자신이 던지고 싶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67년에 그를 고문하고 종신형을 언도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귀향을 계속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신문은 그렇게 대답하고 있다.

  이 날 김영사가 돌아간 후 윤이상씨는 “모든 행사는 간소하게 조용히 치러달라”는 부탁을 음악 축제를 주최하는 예음문화재단 김용현 상무에게 전했다. “귀국해서 혹시라도 내가 수모당하는 일이 없도록 다시 한번 점검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윤이상씨는 심한 심장발작 증세를 일으켰다. 윤씨는 입원 직후 “아무래도 이번에는 못 일어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윤이상씨 귀국이 다시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채 알려질 사이도 없이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윤이상씨는 귀국 문제가 난망해지자 “피카소도 결국은 프랑코 압제하에서 귀국하지 못한 채 죽었다. 나도 그렇게 죽어야 할 모양이다”라고 자주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윤이상 오페라 초연은 한국의 행운”
  이로써 윤이상씨의 귀국 자체는 매우 불투명해졌으나 오는 9월8일 개막하는 윤이상 음악 축제는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다. 윤이상씨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한국 음악계도 이번 축제 내용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음악인은 “그의 제자들을 비롯해 우리 음악계의 방관적 태도에 깊이 실망했다”고 말하면서 “안익태씨도 고국에 정착하려다 좌우익 대립에 휘말려 고통을 겪고 타향에서 숨을 거뒀다. 이제는 우리 음악계의 중요한 부들이 고국에 안착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는 그들을 고국에 안착시킴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음문화재단 송희영 대리는 ‘관현악의 밤’ 티켓이 가장 먼저 예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작곡가 자신이 “내 음악의 모든 것은 심포니 다섯 곡에 담겨 있다”고 말할 정도로 윤이상 음악이 압축되어 있는 관현악과 실내악 연주에 음악 청중이 몰리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음악청중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가로 꼽힌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씨가 협연한다는 점도 관현악의 밤에 청중이 몰리는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광주 지역에서는 이번 레퍼토리 가운데〈광주여 영원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발매 이틀 만에 광주 지역에서 일부 좌석이 매진되었다.

  그러나 음악 전문가들은 “이번 음악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오페라”라고 입을 모은다. 그간 오케스트라 실연이나 레코드를 통해 어느 정도 윤이상 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나 오페라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음악 평론가 김춘미씨(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는 “윤이상 오페라 네 작품 가운데 둘이나 공연된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연출을 맡은 조성진씨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에 편중된 우리 풍토에 윤이상의 현대 오페라는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며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유쾌한 교훈극을 만들 수 있었던가 하는 점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어로 씌어진 대본을 한국 청중의 정서에 맞게 번역했으며, 작곡가의 요청에 따라〈나비의 꿈〉의 시대 배경을 고대 중국에서 통일신라로 옮겨옴으로써 한국 초연의 의미를 극대화했다.

  이번 공연의 지휘를 맡은 정치용씨(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는 오페라〈유동의 꿈〉초연(65년 베를린 도이치오퍼) 당시 지휘를 맡았던 울릭 베더(독일 국립오페라단 지위자)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음악제를 통해 “엄정하기로 유명한 독일 음악계가 왜 윤이상을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윤이상 오페라를 초연하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양 음악 해석의 명문 베를린 필하모니가 80년 역사상 최초로 선택한 동양인 작곡가 윤이상. 그의 귀국은 아직도 불투명하지만, 풍문으로만 듣던 윤이상 음악의 세계성은 이번 음악제를 통해 투명하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