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반도체 산업 1조 이상 투입해도 ‘험난’
  • 김상익 기자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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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64메가D램 개발 가능성은 확인”

반도체 산업을 가리켜 최첨단 산업이라 부른다. 그것은 무업보다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들기가 어려운 만큼 만들고 난 뒤 얻게 되는 이익도 크다.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야만 ‘단맛’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칫 경쟁에서 밀리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릴 위험도 크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개발 역사는 짧다. 83년의 64KD램 개발은 세계 수준에 4년 가량 뒤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기술격차는 갈수록 좁혀졌다 (표 참조)

반도체 분야에서 ‘국내 최고’라는 삼성전자는 지난 17~22일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린 ‘91한국전자박람회’에 64메가D램 ‘시험시제품’을 전시했다. 18일자 주요일간지들은 하나같이 ‘64메가D램 개발’이라는 제목을 굵직하게 뽑았지만 이는 사실보다 몇발짝 앞선 보도였다. 시험시제품은 ‘제대로 작동하는 반도체’를 만들어내기 이전단계의 산물로서,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처럼 “64메가D램을 개발할 가능성을 확인한”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92년중 동작제품을, 93년중에는 상업용 견본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발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직 세계 반도체 시장에 선보이지 않은 16메가D램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반도체 수출액도 단일품목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90년 반도체 수출액은 모두 40억7천만달러였다. 그동안 한국의 으뜸 수출품목으로 꼽혀왔던 직물류 의류와 편직류 의류는 같은 기간 각가 31억달러, 26억달러에 그쳤다.

그렇다고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를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삼성 현대 금성 세 재벌회사 정도다. 우리가 수출하는 반도체 중 자기 이름을 달고 해외에 나가는 것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남의 이름, 남의 기술을 빌려 ‘조립’ 수준의 생산을 하고 있다. 기술의 종속이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다음으로 ‘순수한 우리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느 누구도 정확한 규모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매출액의 5~10%를 특허료로 지불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기술 선진국의 물량공세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김순관 홍보과장은 “85년 삼성이 64KD램 양산에 들어갔을 때 일본에서 덤핑공세를 벌여 위험한 시기를 맞을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덤핑은 자기 자신의 채산성도 악화시키므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반도체에는 생명곡선이 있다(표 참조). ‘머리가 더 좋은’ 반도체가 개발되면 머리가 뒤지는 반도체는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반도체끼리만의 ‘머리싸움’이 아니다. 반도체는 스스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 등 세트에 들어갈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한다. 머리가 아무리 좋은 반도체가 나와도 그 머리를 받아줄 몸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것이 반도체 생명의 변수가 된다.

미국의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 데이터퀘스터가 예측한 시장전망에 따르면 4메가D램은 개발된 지 4년만인 92년부터 ‘자기 시대’를 맞는다. 그러나 이와 상반된 견해도 있다. “웬만한 퍼스널 컴퓨터는 1메가D램으로 충분하다. 장차 고화질 텔레비전이 등장하면 그 자리는 16메가D램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끼인 4메가D램은 받아줄 상대를 못 만나 단명에 그칠 것이다.” 전자공업 진흥회 반도체 담당 유중현씨의 분석이다.

‘공룡 5마리’중 일본업체 3개될 듯
반도체 산업에는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된다. 연구개발비도 많지만 시설자금은 더 많다. 삼성전자는 1메가D램을 월 7백만~8백만개 생산할 공장을 짓는 데 3천억원 이상 투자했다. 16메가D램 생산설비에는 1조원 이상을 들여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업계에서는 2000년대의 반도체시장이 거대한 공룡의 싸움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거대 공룡 5마리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그중 일본업체가 3개쯤 끼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날이 험난한 만큼 한국 반도체산업의 사활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온다. 엄청난 자본을 필요로 하는 산업인 만큼 한번 무너지면 회생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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