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두고온 재산 누구 몫?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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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돼도 분단 전 소유권 인정 어려울 듯 …토지는 현 점유자에게

김영삼 대통령이 최근 ‘갑작스런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를 지시함에 따라 정부 관련 부처들이 통일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 당국자는 “각 부처의 안을 다각적으로 재점검하고 있다. 특히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남북 관계가 소강 상태에 들어가면서 정부는 급작스런 통일이 엄청난 ‘경제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 흑자예산 편성, 방위비 증액, 무역수지 흑자기조 유지 등 최근 청와대가 지시한 예산과 재정 정책도 모두 이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정부의 한 소식통은 밝혔다. 갑작스럽게 북한 체제가 흔들릴 경우 불가피하게 난민 문제와 긴급 경제 지원을 동시에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 통합에서 정부는 가격자유화, 통화 통합, 재산권 및 사유화, 임금 및 노사 정책, 거시 경제의 안정, 재정 및 금융 통합 등과 관련한 구체적 문제점들을 집중 검토하고 있다.

  북한 지역에 급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다. 최근 정부내 한 보고서는, 전면적 통합이 이루어질 때 남쪽으로 넘어올 난민 수가 최고 4백만까지 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정부는 한국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난민 보호 시설을 운영하고 궁극적으로 취업 교육을 강화해 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난민자 생활 지원ㆍ보장
  현재 난민 대책은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들이 다양하게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개략적인 정책 방향은 일단 난민 생활을 지원ㆍ보장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 쪽으로 탈출한 난민은 일단 해당국과 협의해 현지 수용을 추진하고, 차후 이들의 국내 이송을 검토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위기 발생 초기에는 국제적십자사나 유엔등의 국제적 협조 체제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으로 관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이 급작스레 통합될 경우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은 북한지역의 재산권과 토지 사유화 문제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일단 민족분단 이전의 재산권은 일절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분단 이전의 소유권을 인정하면 대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법은 북한 공산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단 이전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통일 대비책 수립에 관여하는 대다수 전문가의 생각이다.

  토지의 경우 전국적인 조사 작업을 거쳐 원칙적으로 북한 지역의 현 점유자에게 소유권을 주는 방향이 일단 최선책으로 강구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토지개발계획을 기초로 사유화와 국유화를 전개할 전망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현지에서 생활할 수 있는 희망을 주기 위해 주택과 농지에 대한 사유화는 최대한 신속히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기업 정상화에 주력
  기업의 경우 사유화나 민영화는 독일 통합의 예가 집중적으로 연구 검토되고 있다. 이 작업에 관계하는 전문가들은 우선 독일통합과 한반도의 경우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독일은 자유 시장경제 질서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에 동독의 국영 기업을 우선적으로, 그리고 전면 사유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들은 우리의 경우 사유화보다는 기업 정상화를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쪽이다. 강력한 산업정책으로 정부가 시장에 깊이 관여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독일식 ‘무차별 사유화’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선별적 사유화’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북한 기업은 현재 한국의 국영 기업처럼 운영하고, 일단 기업 운영이 정상화하면 현재 한국에서 진행하는 공기업 민영화 방식으로 매각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통화의 교환 비율이 정치 목적에 의해 1 대 1 비율로 결정되어 오히려 동독 경제의 붕괴를 앞당겼다. 우리의 경우에도 통화 통합이 가장 어려운 문제로 등장해 있다. 경제학자들은 남북한 경제력 격차가 그대로 반영되는 교환 비율이 원칙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 경제의 정확한 실상을 측정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적정 교환 비율을 찾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임금의 경우 노동생산성에 근거해 화폐 교환 비율을 엄격히 결정해야 한다고 대다수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교환 비율로 결정된 임금이 최저 생계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사회주의 경제에 익숙한 북한 주민에게 당분간 국가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당 기간 노사 제도와 근로 기준을 차별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 한 체제 안에서 ‘법적 대우 차이’가 수용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독일은, 서독식 임금 결정 방식이 동독에서 채택되고 서독의 노조가 동독 노조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라고 부추겨 통일 후유증이 더욱 심해졌다.

‘한반도 경제개발 전략’필요
  통합 이후 이주민에 대한 지원 문제 역시 이러한 지원이 이주를 촉진시킬지 자제시킬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요구된다. 현재 정부 내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한국 이주를 억제하고, 넘어온 이주자는 직업 알선 등 간접 지원에만 한정하며, 대도시 집중을 막기 위해 지방 취업을 적극 장려한다는 기본 계획을 구상해 놓고 있다.

  통일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오든 ‘북한 요인’이 계산되지 않은 한국의 경제개발계획과 산업정책은 앞으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막대한 ‘통일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정부는 남북한 산업입지와 산업비교우위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처지이다. 한국 경제권만을 염두에 둔 ‘신경제 5개년계획’보다는 한반도 전체의 경제개발 전략이 요구된다.
南裕喆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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