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장 선거의 ‘풍경과 상처’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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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 출마, 투표율 낮아 ‘불신임’ 여론도 … 김상돈 시장, 5개월여 만에 도중하차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이 일어난 해인 60년 12월30일,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한 각 신문은 너나 없이 호외를 찍었다. 모두 ‘서울시장 선거 개표 완료, 민주당 金相敦씨 당선’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도지사와 서울시장을 뽑는,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광역 자치단체장 선거를 12월29일 치렀던 것이다. 시 · 읍 · 면장 선거는 26일 이미 치렀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역시 서울시장 선거였던 모양이다.

 ‘29일 아침 두툼한 외투 깃에 목을 감추고 의사당에 나온 신민당 尹濟述 선전부장은 “난 이제 선거란 필요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선거는 오히려 입찰제가 좋겠더군” 하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잠시 그 말 뜻을 모르고 있으려니까 윤의원은 그 독특한 아이러니를 섞어가며 “입찰이란 돈 액수를 많이 적어 넣는 이에게 낙찰이 되고 따라서 이기게 마련인 거야. 그러니까 요새처럼 돈만 가지고 해결되는 선거에서는 차라리 입찰제가 낫지 않겠어?”라고 설명했다.’ 선거 열기를 묘파한 <동아일보> 기사 내용이다.

김상돈 시장 “시의원 · 공무원은 도둑놈”
 아무튼 당선된 이는 여당인 민주당 소속 김상돈씨인데, 전부 15명이 출마한 가운데 21만7천4백75표를 얻음으로써 1위를 차지했다. 당시 김씨와 경합을 벌였던 이는 신민당이 지지하던 무소속 張基榮씨(<한국일보>창업주)였는데, 장씨는 11만7천1백45표를 얻었다. 3위는 무소속 鄭 濬 후보로 2만1천2백37표에 그쳤다.

 그러나 막상 서울시장 선거 투표율은 광복 이후 치른 역대 선거 중에서 가장 낮은 35.7%를 기록했다. 그래서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선거 불신임 여론이 일기도 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제일 많다는 수도 서울에서 유권자 1백12만6천여 명 가운데 40만1천여 명만이 투표에 참가했으니 그럴 법도 한 일이다. 특히 무효표 중에서 행정부나 입법부를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도 더러 발견되었다. 선거가 끝난 후 민주당 金大中 선전부장은 “민주당 정부는 원인을 규명해서 사후책을 강구하겠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새해에 선정을 베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김상돈씨는 법에 따라 서울시장에 취임했고, 시민과 언론은 처음 자기 손으로 뽑은 시장이 어떻게 시정을 펴나가는지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시장은 시장에 취임한 지 며칠 만에 정가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서울시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비 60% 정도가 빼돌려지고 있다”며 서울시 의회 의원들을 ‘도둑놈’으로 몰아세웠고, 시 간부들을 향해서는 “부시장 이하 국장 · 과장들이 사표를 제출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던 것이다. 서울시 간부들이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사표 강요라며 반발하자, 마침내61년 1월6일 서울시 의회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김시장 발언 긴급규명 동의안을 제출했다. 초대 민선 서울시장이 궁지에 몰린 것이다.

 이 사건 뒤로 김상돈 시장은 사실상 시 행정을 장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현재 어떤 기록에서도 김시장이 시 업무를 집행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도둑놈 발언 파문 이후 5·16이 일어날 때까지 당시 신문에서는 김시장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게 다섯 달 남짓 세월이 흐른 뒤 김시장은 5·16세력에 의해 구속되었다. 그리고는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5·16 이후 군사 정부에 의해 강제로 정계를 떠난 후, 김시장에 관한 소식은 85년 미국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그를 기억하는 몇몇 사람에게 전해진 정도이다.

 당시 선거에서 3위를 차지한 정 준씨(80 · 도덕재무장본부 이사장)는 “나는 낙선해서 불행했고, 김상돈씨는 뽑혀서 불행했다. 비록 시민이 뽑은 사람이 시의 행정을 편다는 정치적 이상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35년 만에 서울시장을 내손으로 뽑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아직 건강하니까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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