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의 땅’에 평화는 동트는가
  • 런던 ·한진화 통신원 ()
  • 승인 199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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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휴전’ 새 국면… 폭력 불씨는 여전

북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며 영국과 무력투쟁을 벌여왔던 아일랜드 공화군(IRA)측의 휴전 선언(8월31일)으로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찾아들 것인가.

 분쟁이 극에 달했던 69년 영국군이 현지에 처음 파견된 이래 아일랜드 공화군의 테러로 희생된 사람은 3천1백68명에 이른다. 따라서 이번 휴전 선언은 앞으로 이를 실현하느냐 여부를 떠나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번 휴전 선언으로 북아일랜드 지역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할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특히 이번 휴전 발표문에 나타난 ‘군사행동의 완전한 중지’라는 구절이 곧 ‘테러행위의 영원한 포기’를 뜻하느냐를 놓고 벌써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주민 대다수, 휴전 선언에 강한 거부감
 영국 정부는 일단 이번 휴전 제의를 환영하면서도 과연 아일랜드 공화군측이 앞으로 폭력 투쟁을 완전히 중단할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 1백60만 가운데 신교도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북아일랜드 주민 대다수도 이번 휴전 제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영국 정부가 가지들의 의사와 상관 없이 북아일랜드의 장래에 대해 아일랜드 공화군측과 협상을 벌이는 데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갖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극렬한 반대 투쟁에 나설 것임을 공공연히 비치고 있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휴전 제의에 따른 평화 협상에서 북아일랜드 주민의 여론을 깊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실제로 휴전 선언이 나온 지 1주일이 채 안돼 아일랜드 공화군의 정치 조직인 신 페인당 당사 앞에서 북아일랜드 극우 신교파의 소행으로 믿어지는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관측통들은 이번 테러 사건이 휴전 선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려는 과격파 신교도측의 투쟁 서곡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휴전 선언을 한 아일랜드 공화군측은 ‘이제 공은 영국 정부로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일랜드 공화군은 앞으로 휴전 선언을 실천에 옮겨 진실성을 검증받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진실성이 입증될 경우 아일랜드 공화군의 정치 조직인 신 페인당은 불법 정치집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난 합법 정치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메이저 총리의 영국 정부와 레이놀즈 총리의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이번 휴전 선언의 효력이 영속적이라고 확인될 경우 평화 협상을 급속하게 진전시킬 것임을 분명히했다. 영국 정부는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아일랜드 공화군의 대외 선전을 원천 봉쇄할 의도 아래 신 페인당 지도자들의 육성 방송을 금해온 조처를 해제할 가능성도 있다.

첫 평화회담 11월 말 안에 열릴 듯
 게리 아담스 신 페인당 당수는 지난 8월31일 아일랜드 공화군의 휴전 선언 발표 직전 영국 정부에 자신을 포함한 신 페인당 관계자들에 대한 육성 방송 금지 조처를 즉각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영구 정부는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에 신 페인당 간부들의 육성은 성우의 목소리를 더빙해 사용하도록 요구해 왔다.

 영국 정부가 신 페인당 지도자들의 육성 방송을 허용하고 이 정치 조직을 합법단체로 인정할 경우, 아일랜드 정부와의 첫 평화 회담은 늦어도 11월 말 안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메이저 영국 총리는 영 · 아일랜드 간의 ‘북아일랜드 관련 평화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만약 아일랜드 공화군이 영원히 폭력 행사를 포기하고 신 페인당이 민주적인 합법 절차를 따를 경우 3개월 안에 신 페인당을 포함한 관련 당사자간 평화회담을 개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앞으로 3개월 내에 첫 예비 회담이 열린다면 어떤 의제를 제일 먼저 논의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측통들은 새로 바뀌게 될 북아일랜드의 정치 판도에서 신 페인 당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테러 방지 문제가 우선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내다본다.

 신 페인당은 그동안, 북아일랜드 거리에서 영국군이 사라져야 하며 또한 현지 주둔 영국군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공화군내 과격 급진파 단체인 ‘잠정파’측에 대해 휴전 선언이 계속 유지될 경우 영국군의 거리 순찰을 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테러 행위가 재발되지 않고 완전한 평화가 정착할 조짐이 보일 경우 영국 주둔군이 감축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신 페인당에 대한 화해 신호로 ‘아일랜드 지역의 평화와 화해를 위함 포럼’ 토론회에 신 페인당 대표들을 초청하기로 하고 그 시기를 검토중이다. 이 토론회에는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모든 합법적인 정치단체들이 참가할 것이다.

 영국 정부 주도 아래 열리게 될 첫 평화회담에 앞서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가 주최하는 이 토론회는, 지난해 12월 영 · 아일랜드 평화 선언에 따라 열리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아일랜드 공화군 휴전 선언이 유효한지와 신페인당을 인정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토론회에 이어서 열릴 평화회담에서 영국 정부는 먼저 아일랜드 공화군이 은닉하고 있는 각종 무기를 양도하는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일랜드 공화군 내 잠정파의 내부 규약에 따르면, 아일랜드 공화국에 소속된 어느 누구도 지휘관의 승락 없이 임의로 무기를 양도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 규정을 어길 경우 명령불복종죄로 사형을 당한다. 현재 아일랜드 공화군이 은닉하고 있는 대부분의 무기는 아일랜드의 지방 벙커 곳곳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 공화군은 각종 테러 행위로 수감된 자파 소속 죄수들을 석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들은 영국 정부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먼저 영국 각지의 교도소에 분산 수감돼 있는 아일랜드 공화군 대원들을 북아일랜드의 감옥으로 이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일랜드 공화군 대원 석방 문제는 무기 양도 문제와 함께 평화 회담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질 것이 분명하다.

영국 · 아일랜드, 영토권 포기할 수도
 한편 평화 협상이 진전될 경우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양측의 헌법에 명기돼 있는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토권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두 나라 정부는 영토 귀속 문제는 북아일랜드 주민 자신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하고 있다. 이는 북아일랜드의 장래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새 헌법 제정과 함께 국민 투표가 실시될 수 있음을 뜻한다.

 현재로서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북아일랜드 주민이 현재의 지위나 정치적 구도를 바꾸기를 원치 않을 경우 계속 영국민으로 남아 있는 데에는 표면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앞으로 평화 협상이 잘 진행되고 뒤이어 제헌 회의가 열려 원만히 진행되면, 북아일랜드 지역의 신 · 구교도를 포함한 각 파벌은 북아일랜드의 새 자치 정부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신 페이당은 북아일랜드에 자치 정부가 들어서면 멀지 않아 북아일랜드와 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합 정부가 수립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카톨릭 교도를 중심으로 한 신 페인당과 민족주의자들은 앞으로 북아일랜드 장래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남 · 북 아일랜드 전주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카톨릭 국가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아일랜드에는 주민의 5분의 2만이 카톨릭 교도이며, 과반수가 훨씬 넘는 개신교도가 거의 모든 공직을 장악하고 있다.

 최근 북아일랜드에서 발표된 주민 여론 조사에 의하면, 전체 주민의 15~20%만이 북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통일 아일랜드를 수립하는 데 찬성하고 있다. 이들은 상황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을 경우 본격적으로 휴전 선언 반대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여, 평화를 향항 북아일랜드의 앞길은 멀고도 험난하기만 하다.
런던 ·韓准燁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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