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 ‘큰 떡'에 조선3사 군침
  • 김상익 기자 ()
  • 승인 1991.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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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화천연가스 운반선 2차분 수주, 현대 삼성 대우 경쟁

 어떤 아버지가 어렵사리 떡을 한덩이 구해왔다. 큰형이 먼저 한입 베어물자 동생들이 이번엔 내 차례라고 조른다. 큰형은 나머지 떡도 차지하고픈 마음이다. 형제끼리 서로 다투게 된다. 이 광경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착잡하다. “차라리 떡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분쟁도 안 생겼을텐데.” 이런 생각마저 든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차분 수주를 둘러싸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조선 3사가 벌이는 경쟁이 이같은 형국이다. 여기서 떡을 구해온 아버지 역할은 한국가스공사가, ‘떡맛??을 먼저 본 큰형 노릇은 현대중공업이 맡고 있다.

 액화천연가스를 실어나르는 운반선의 건조방식은 모스와 멤브레인 두가지가 있다. 모스 방식은 가스를 담는 알루미늄 탱크를 별도로 제작, 배 위에 얹는 것이다. 따라서 배 위로 둥근 탱크가 드러나보인다(아래사진). 멤브레인 방식은 배의 갑판 밑부분에 탱크를 장치한다.(위 사진). 모스 방식은 일본을 중심으로, 멤브레인 방식은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 두 방식의 우열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현대는 두 방식 모두에 대한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이중 모스 방식은 현대 독점이다. 삼성과 대우는 멤브레인 방식에 대해서만 기술을 갖고 있다.

 대우조선측에서는 “1차 입찰 마감 예정일이 90년 4월14일이었으나 이틀 전인 12일 수송을 담당할 해운사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공부가 선형을 모스형으로 결정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현대는 1차분 운반선 2척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국내 운반선 수요 10척 이상
 그렇다면 가스공사가 가지고 들어온 떡은 얼마만큼 큰 것일까.

 정부는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은 터라 에너지원 다원화와 공급안정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그래서 83년 8월 인도네시아 국영석유공사인 페르타미나와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맺었다(86년부터 20년간 매년 2백만톤). 한국가스공사도 이때 설립됐다.

 그러나 연간 2백만톤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됐던 천연가스 수요는 의외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따라 가스공사측은 액화천연가스 도입계획을 수정, 지난 5월7일 인도네시아 석유공사와 추가도입 계약(94년부터 20년간 연 2백만톤)을 맺었다. 말레이시아 국영가스공사와도 장기 도입계약을 맺기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다.

 가스공사가 맨처음 인도네시아와 계약을 맺을 때는 운임과 보험료를 천연가스 가격에 포함하는 ‘도착항 인도가격??(CIF) 방식이었다. 수송에 따른 이득은 인도네시아 차지였다. 그러나 추가도입 때는 ??본선인도가격??(FOB)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국내 해운사가 국산 선박으로 액화천연가스를 실어나를 수 있게 됐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부터 추가로 들여올 물량은 모두 8천만톤이다. 업계에서는 운임을 1톤에 40달러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운임 총액은 32억달러(약 2조4천억원)로 추산된다.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은 매우 비싸다. 1척값이 대형 유조선의 3배에 가까운 2천억원이다. 업계에서는 가스공사의 액화천연가스 도입 물량을 토대로 하여 나름대로 국내의 운반선 수요를 ‘10척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장 규모는 무려 2조원이나 된다. 조선 3사가 그 큼직한 떡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스 운반선 기술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조선영업부 조덕희 과장이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이다. 이미 75년부터 10년간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건조를 위해 기술을 도입하고 기초기술 개발에 힘썼다는 것이다. 85년부터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건조를 통해 ‘노하우??를 쌓았으며, 88년부터는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을 건조하기 위한 생산설비 투자를 해왔다는 것이 현대의 자랑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삼성중공업 夏壽鉉 부장의 말은 이렇다.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건조 기술은 7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일본조차도 70년대후반까지는 건조실적이 없었다.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액화천연가스 운송선 기술을 현대가 70년대부터 쌓아왔다고 한다면 누가 들어도 웃는다.”

 국내 조선업계의 관심은 2차분 2척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데로 모아져 있다. 그 자체도 4천억원짜리 ‘큰 물건??이지만 해외시장에는 단 1척이라도 수주한 실적이 있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이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만큼 국내 조선업체는 ??안방??에서라도 수주 실적을 쌓아야 할 입장이다.

“이번 만큼은 공정한 기회 주어져야”
 이같은 사정 때문에 삼성이나 대우로서는 “2차 입찰은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한 처지다. 이들은 ‘국가적인 명분??을 내세워 이번에는 멤브레인을 단 1척이라도 수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스에 강한 일본과 국제무대에서 겨루려면 한국은 멤브레인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 모스를 독점한 현대는 멤브레인이라는 카드도 따로 갖고 있다. 삼성과 대우가 더욱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멤브레인으로 선종되더라도 현대는 여전히 막강한 경쟁자로 남는것이다. 대우조선 선박영업 2부 張興淳 대리는 “2차분 2척에 대해서만큼은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아귀다툼 속에서 두 손에 떡을 든 가스공사측은 오히려 입장이 난처해졌다. 올 11월중에 2차분 3ㆍ4호선 계약을 추진할 계획이던 가스공사는 “내년 6월까진 시간이 있다”며 관망하는 자세다. 한국가스공사 원료부 高貞洙 차장은 이렇게 말한다. “가스 도입은 본선인도가격으로 계약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액화천연가스를 어떻게 하면 싸게 들여오느냐 하는 데 있다. 만약 도입 대상국이 본선 인도가격일 경우 가스값을 2배로 올린다면 우리는 도착항 인도가격을 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운반선 수요는 매우 유동적이다. 현재 조선업계는 너무 앞질러 생각하고 있다.” 조선 3사간의 갈등은 떡도 나오기 전에 김치국을 놓고 다투는 형국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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