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쓴맛을 넘어
  • 인도네시아.이흥환 차장대우 ()
  • 승인 1994.10.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임씨 "지역 주민 협조 모자라 한계 느꼈다"

해외 봉사는 결코 화려한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단원이 반드시 주인공이 되라는 법도 없다. 낮선 이방인들의 삶 언저리에서 어정거리다가 그저 한낱 물거품처럼 스러지는, 황당하기 그지없고 기억하기조차 싫은 한순간의 쓰라린 이국체험이 될 수도 있다. 푸석푸석한 황토 먼지와 무더위, 질병, 무력감이 엄습할

때는 심한 자폐감에 빠지기도 한다. 현지 주민의 냉대 속에서 '외딴섬'으로 남거나 중도에 포기해야만 하는 미완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슬라웨시 주 우중판당 시 보건국에서 활동하는 4기 봉사단원 박정임씨(28). 그는 해외 봉사의 이같은 슬픈 단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뼈저리게 느껴보았다. 그러기에 남은 1년을 다른 어떤 단원보다 더 소중하게 보듬어안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한달 기다려 전화 통화 성공
 첫 현지는 그에게 유페지였다. 93년 10월 초였다. 활동지라고 찾아간 고와 군의 한 '깡촌'은 전깃불은커녕 군수 집무실에 달랑 놓여 있는 전화기 한 대가 유일한 문명의 이기였다. 주민이래야 20명이 채 안 되었고, 명색이 우체국인 전신소는 오후 1시만 되면 문을 닫았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기껏 배워간 인도네시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귀에 선 토박이 말이 그를 괴롭혔다.

 자카르타 지역사무소에서 걸려온 안부 전화 내용은 사흘쯤 지나야 그에게 전달되고, 시도한 지 한 달 만에야 한국의 엄마와 첫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전화가 연결되고 나서도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박정임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돌아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화가 치밀어올랐을까. 기나긴 두 달이었다. 그는 결국 활동 지역 전출을 요청했고, 93년 12월에 현재 활동지인 우중판당 시 보건소로 '탈출'해 나왔다.

 91년 부산공대 산업안전공학과 졸업. 국제상사에서 산업안전기사로 2년 반 근무. 2남2녀 중 둘째딸. 그의 신상 명세에 청년봉사단 활동이라는 항목이 보태지는 순간에 맛본 첫번께 좌절의 쓰라림.

 시 보건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록 할 일이 없었어요. 직속 상관 격인 공중위생과장도 오불관언이고, 소장도 오리엔테이션을 해주겠다고 해놓고는 감감 무소식이었지요.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식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사무소 직원과 똑같이 카키색 근무복을 한별 맞춰 입었다. 매일 아침 7시에 남보다 먼저 출근했고,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바투탐풍 같은 농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위생과는 담을 쌓고 사는 지역이었다. 주민 대부분이 강이나 개천에서 그냥 '볼일'을 보았고,

우물은 다 말라붙어 있었다.

실패로 끝난 공중화장실 건설
 지역 단위 공중화장실 건설이 그가 세운 첫 사업 계획이었다. 보건소의 협조를 구하고 주민을 설득하는 동시에 자카르타 지역사무소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결과는 무산. 활동방향을 수정했다. 지난 7월 석 달 일정으로 시작한 현지 주민 상대 위생 강의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지금 박정임씨는 새로운 사업 구상에 매달려 있다. 바투탐풍 지역에 우물을 파는 일이다. 2백59세대 1천4백98명이 사는 곳이지만 우물 3개에만 의지할 뿐 전체 지역의 70%는 음용수 '사각 지대'이다.

 털털거리는 8인승 승합차를 매일 네번씩 갈아타고 찾아가 조사를 벌인 지 두달이 넘었으나 우물을 팔 2평 남짓한 땅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누런 갱지에 작성한 '우물 파기계획서'만 2백여장이나 된다. 양수기 1대 값과 시설비를 계산해 보니 총 6백여만원이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협조다.

 그는 '정'으로 불린다. 하숙집 동네의 인력거꾼도, 바투탐풍의 아주머니들도 그를 '정'이라고 부른다.

살결이 햇볕에 그을려 나무인지 살인지 물라 모기가 물지 않겠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봉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목표를 잃지 않고 끝까지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

 박정임씨는 지난 9월1일 만원짜리 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보건소 근무 1주년을 자축하는 작은 잔치였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부산이 고향인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교 다니던 부산 안락동 골목길이에요.”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