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김동선 편집부국장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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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가 적인가” 되풀이되는 물음…과거청산 안된 채 국민감정 갈수록 악화

 올해는 해방 45주년이고, 65년 8월14일 한·일협정이 국회에서 비준됐으므로 국교가 정상화된 지도 만 25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일컬어지고 있고, 한·일간 갈등의 波高가 높아질 때마다 “일본은 우리에게 친구인가, 적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89년 기준으로 왕복 2백만명의 인적 교류와 총 3백억달러의 교역량을 가진, 그야말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한·일간에 왜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이 친구인지 적인지 묻게 되는가? 지난 45년간의 한·일 관계사를 일별해보면 그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가상적이지만, 1945년에 우리가 완전한 독립국가로 출발했다면 ‘과거’를 일찌감치 청산해 갈등의 원천도 없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반도는 해방과 함께 분단되었고 미·소 냉전체제 속에서 북은 소련, 남은 미국의 세력권에 편입되었다. 그 결과 해방 이후 한·일간 교섭의 시작도 당사국의 자발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냉전체제의 역학 속에서 ‘종용’됐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간 정상화를 위한 교섭 자체의 모양과 서로간의 계산, 그리고 교섭을 바라보는 양국민 정신 기저의 흐름이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50년대초 미국이 한·일 관계개선 종용

 한·일 최초의 교섭은 미국의 종용에 의해 51년 10월20일부터 도쿄 주일연합군총사령부(SCAP)에서 동사령부 시볼트 외교국장 사회로 개최되었다. 양유찬 주미대사와 이노구치를 수석대표로 한 이 회담에서 한국은 배상받기를 포기하는 대신 채권적인 성격의 대일청구권을 요구함과 동시에 어업협정을 맺어 일본의 남획으로부터 연안어족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은 소수민족 문제로 발전할 지 모를 재일 한국인 문제부터 처리하려고 했다.

 이후 한·일관계는 이승만의 평화선 선포(52년 1월18일), 일본의 재한 일본인 재산(적산) 반환 요구, 평화선 침범 일본 어선 나포와 어부들에 대한 체형(53년 10월13일), 일본측대표 구보다의 망언(53년 10월15일, “일본이 36년 동안 한국에 많은 공헌, 즉 철도부설·토지개량 등을 통해 많은 이익을 주었으므로, 일본은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독도영토분쟁(53년 11월), 일본 각의의 재일동포 북송 승인(59년 3월13일) 등으로 회담의 성사는커녕 갈등의 심화와 국민감정 격앙이라는 결과만 빚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일본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급진전되었다. 장면 내각은 경제개발에 대일청구권자금을 활용하기 위해 회담에 적극적이었고, 일본도 배일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관리들의 언행을 조심시키며 서울에 의원단을 파견하는 등 장면 내각에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양국은 61년 5월중 예비회담을 마치고 가을에는 협정을 조인한다는 일정까지 합의했으나 5·16으로 깨져버렸다.

 장면 정부를 뒤엎은 5·16군부세력의 대일자세는 매우 특기할 만하다. 이들은 마치 쿠데타 모의단계에서부터 대일청구권자금에 정권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판단한 듯 쿠데타 6일 후인 5월22일 김홍일외무장관의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은 우리나와 여러 가지로 관계가 있는 국가이므로 정상적인 국교수립을 위한 우리의 생각과 노력은 변함이 없다”고 밝힌 뒤, 7월5일에는 군정의 대외친선사절단을 일본에 제일 먼저 파견하는 등 대일청구권자금 확보에 신속성을 보였다. 그후 김종필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외상간의 비밀메모(62년 11월12일)로 급진전한 한·일회담은 비밀흥정에 의한 ‘굴욕외교’라는 비판속에 야당의 결사반대와 격렬한 학생데모를 유발했지만 군부세력은 이 저항을 계엄령(64년 6·3사태)으로 진압하고 마침내 65년 한·일협정을 매듭지었다.

 

또다른 굴곡 잉태한 국교정상화

 그러나 군부세력이 주도한 한·일 국교정상화는 ‘참다운 정상화’의 출발이 되지 못한 채 한·일관계의 또다른 굴곡을 잉태했고, 한국사회는 이를 계기로 심각한 갈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선 회담 과정에서 발생한 6·3사태는 집권 군부세력과 학생세력이 대립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군부세력이 청구권자금(무상 3억달러 유상 3억달러)으로 경제개발에 성공하면서 독재체제를 구축하자 4·19와 6·3세대의 정신을 이어받은 학생사회는 이 독재에 저항하는 커다란 세력권을 형성한 것이다. 학생세력은 독재정권과 유착된 일본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특히 일본의 ‘경제지배’를 경고하며 일본에 대한 가장 비판적인 그룹이 되었다.

 한편 언론을 필두로 한 일본의 지식인 사회는 한국의 독재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퍼부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못한다”는 경멸은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의 한국관을 악화시켰다.

 지난 5월 노대통령 방일 때 아키히토 日王이 과거에 대한 사죄성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민이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은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한·일관계사가 결코 ‘정상’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일본 증오’ 젊을수록 커

 이러한 사실은 최근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한국 6월27일~7월3일 표본수 2천20명, 일본 7월1일~2일 표본수 3천명) 결과가 잘 말해주고 있다(양 신문사는 84, 88년에도 여론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일본을 싫어한다’는 항목의 응답률은 84년 38.9%, 88년 50.6%였으나 올해에는 66.0%로 급증했다. ‘한국을 싫어한다’는 일본국민의 응답률 역시 84년 19%, 99년 21%, 올해 23%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호 국민에 대한 인상도 ‘이기적’ ‘타산적’ ‘위압적’등 나쁜 인상의 합계가 일본의 경우 88년 22%에서 25%로, 한국의 경우 43%에서 46%로 각각 조금씩 증가했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경우 ‘일본이 싫다’는 사람이 66%로 나타났다. 84년 조사에서는 39%였으나 ‘한·일합방에는 한국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등의 일본관리의 발언으로 한·일관계가 흔들린 다음인 88년 조사에서는 51%로 증가한 뒤 이번에 크게 늘었다. 노대통령 방문시에 일본측은 과거의 식민지배등에 사죄했으나 이 사죄 발언에 대한 불만, 기술이전 문제 등 경제마찰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가 반영된 것 같다. 이러한 ‘일본 증오’는 세대별로는 40대 이하의 전후세대, 직업별로는 학생, 행정관료, 사무직 등에서 특히 심했다.”

 이에 대해 수학자이면서 일본문제 전문가이기도 한 김용운교수(한양대 대학원장)는 일본이 ‘좋으냐’ ‘싫으냐’라고 물을 때 한국인들은 명분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싫다’고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여론조사 결과에 의문을 표시했다.

 한상진교수(서울대·사회학)는 “우리나라가 제3세계의 많은 나라보다 발전수준이 높아지면서 일본을 경쟁상대로 삼는 경향이 생겼고 일본에는 지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다. 더욱이 예전에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앞섰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모욕이나 모멸, 또는 착취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만큼 과거청산, 교포처우, 무역역조 심화현상에 대한 반발이 강하기 때문에 그같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그러나 이 현상도 세대별로 차이가 있다. 기성세대는 일본모델을 지향하면서도 과거를 되새기는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강한 반발을 갖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젊은세대는 기성세대의 이러한 체질 자체에 동의하려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한편 한국을 수십차례 방문한 일이 있는 일본작가 도요다 아리츠메는 그의 최근 저서 <일본인과 한국인, 이 점에서 크게 다르다>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 일본인은 구미와의 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고독을 감추어왔다. 여기서 동아시아에 현재 하나의 선진공업국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양국간의 관계에는 물론 마찰이나 불협화음도 있을 것이지만, 수평무역을 포혜평등으로 행한다고 하는 관계를 통하여 대미·대유럽에서 협동하며 함께 보조를 취해줄 나라가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이다.”

 만일 일본인 대다수가 위와 같은 사고를 가진다면 한·일관계가 제자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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