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모르는 일본 속 孤島
  • 도쿄·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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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범죄집단’ 취급 받으며 굴욕의 세월 보내

 ‘일본 속의 孤島’로 불리는 재일교포사회의 ‘戰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45년이 지난 오늘, 전후의 혼란을 말끔히 청산하고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일본인 사회속에서 아직도 재일교포들은 ‘민족차별’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굴욕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민족차별과 투쟁하는 연락협의회’에 회원인 朴哲圭(38·출판사 근무)씨는 지문날인거부운동에 참가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문날인제도를 한국인 차별의 상징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재일교포들이 지문날인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이다. 지문은 인간의 인격·사상과 연관성을 갖고 있는 신체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엄지손가락의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5년 뒤인 85년에는 3천49명이 지문날인을 거부할 만큼 이 운동은 재일교포 사회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박철규씨가 이 운동에 처음 참가한 것도 바로 그 해였다. 도쿄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한 후 고등학교 교사를 지망하고 있던 그에게 첫 좌절을 맛보게 한 것은 교원채용거부통지였다. 국공립의 초중고 교원은 ‘公的意思형성’직종이므로 일본국적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는 ‘국적조항’이라는 민족차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결국 교사의 길을 포기했다. 그후 민간회사에 취직하였으나 10년새 3번이나 직장을 옮겨야 할 만큼 곳곳에서 차별대우를 받았다.

 재일교포 사회의 지문날인거부운동이 거세지자 일본 정부는 82년에 지문날인을 5년에 1회로, 87년에는 16세가 되는 해에 평생 1회로 개정했다. “지난 3월말 盧泰愚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간에 합의를 본 재일교포 법적 지위 문제는 앞으로 태어날 협정3세에 국한된 문제만을 해결했을 뿐이다”라고 박씨는 한·일 양국 정부를 비판하면서 “취직차별 문제등 재일교포 사회의 현안은 하나도 개선된 게 없다”고 노대통령의 방일성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일방적으로 외국인으로 신분이 바뀐 재일교포 1세들은 ‘잠재적 범죄집단’ 취급을 받으면서 일본 치안당국의 감시대상·외국인등록·지문날인·취직차별 등 온갖 수모를 겪는다. 태평양전쟁과 식민통치의 피해자였던 이들은 전후에도 피해자가 될 것을 강요당한 것이다. 물론 가해자는 두 번 다 똑같은 일본인이다.

 

2·3세들은 정체성의 갈등 겪어

 그동안 일본은 차별과 동화정책으로 재일교포를 견재해왔다. 일본인이 될 것이냐 차별을 감수할 것이냐 하고. 이와 같은 일본인 동화정책으로 말미암아 매년 5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일본에 귀화하고 있으나 아직도 68만2천명(89년 6월말 현재)의 재일한국인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이중 8%에 해당하는 약 5만5천명은 상용·유학목적으로 체재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5만~10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숨어 살고 있다.

 그러나 광복 45년이 지난 지금 재일교포사회도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온 1세들이 귀화·사망·고령화함에 따라 이제 재일교포의 주역은 2세, 3세(약8%)로 바뀌고 있다. 박철규씨와 같은 30대의 2세 교포가 18.0%로 가장 많고 20대(16.9%), 10대(16.2%), 40대(15,4%)로 이어진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2세, 3세의 고뇌도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민족의 동질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용하는 언어나 사고방식·생활습관 등이 거의 일본화하고 있다. 한국식 된장국보다는 일본식 ‘미소시류’(된장국)가, 김치보다는 ’오시코‘(일본식 김치)가 입에 맞으며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이 ’일상어‘로 굳어지고 있다.

 조국분단의 비극은 재일교포 사회도 양극화시켜 극한대립이라는 긴장관계를 강요해왔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 재일교포 사회가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갈라선 지 이미 30여년이 흘렀다. 그러나 최근 남북대화 움직임에 따라 이 앙숙같은 관계에도 대화의 물꼬가 터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조총련측이 지난 7월 범민족대회에 함께 참가하자는 제의를 해오자 민단측은 “양측 대표가 판문점을 통해 서울과 평양을 하께 방문하고 북경 아시안게임에 남북한 선수를 응원하기 위한 참관단을 파견하자”고 응답한 것이다. 그러나 남북대화의 진전만큼이나 이 변화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뒤따를 것이다.

 바나나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얗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바나나와 같은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황색인종이면서도 백색인종 흉내를 내려고 한다는 말이다. 아직도 ‘단일민족 신화’를 신주처럼 모시는 일본인들은 겉은 ‘경제 선진국’이면서도 속은 ‘인권 후진국’이다. 이같은 겉과 속이 다른 일본사회의 속성 때문에 ‘일본 속의 孤島’인 재일교포 사회는 45년이란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戰後’가 끝날 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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