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기 밀고 당기는 동 · 서독 與野
  • 본·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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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집권당. 동독경제 약화되자 조기선거 추진... 사민당의 반대로 서독의회서 부결

 독일총선을 앞당기기 위한 서독과 동독의 집권당 기민당의 정치공세가 모위로 끝났다. 12월2일 예정됐던 총선일자를 10월 14일로 앞당기자는 기민당측의 헌법개정만이 8월9일의 서독의회 투표에서 사민당의 반대로 부결된 것이다.

 이에 앞서 드 메지에르 동독 총리는 8월 3일 통일의 국제적 장애가 더 이상 없고 동·서독 사이의 ‘통일 조약안’이 합의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독 국민들이 가능한 한 빠른 통일을 원하고 있으니 총선을 12월2일에서 10월 14일로 앞당길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사민당은 단호히 거부해왔고 이같은 자세는 콜 총리와 라퐁텐 사민당 총리후보 사이의 8월 7일 담판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라퐁텐은 6주일 앞당겨진 선거가 동독의 사회.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드 메지에르 총리가 지난 달 30일 서독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12월2일 총선을 고수할 것임을 재확인한 다음날 콜 총리와 선거일을 앞당기는 데 ‘합의’할 정도로 서두르는 이유는 동독의 사회·경제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동맹조약’이 발효된 지 불과 한달만에 동독 기업의 절반이 지불불능 상태에 있고 실업자가 75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금년말에는 실업자가 3백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것이다. 금년중으로 최고 8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통화단일화를 추진했던 양쪽 정부의 예상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을 콜 총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예상이 크게 빗나가도 있는 이유는 당초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기업도 다른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주문을 취소함에 따라 연쇄적으로 지불능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 경제의 파산은 서독 정부에게 그대로 부담이 되어 넘어오고 있다. 공식 발표로는 1995년까지 총 1천 1백50억마르크면 충분할 것으로 예측되었던 ‘통일비용’은 이제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하게 되었다. 롬베르크 동독 재무장관은 금년 하반기의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만도 3백억마르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통일비용’이 매년 1천억마르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면서 서독에서는 세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세금인상은 그렇지 않아도 동독인에 비해 통일에 소극적인 서독인의 불만을 살 것이 분명하다. 실업자의 급증에 따른 동독의 사회적 불안과 함께 서독 국민의 우려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것이기 때문에 양쪽의 집권당은 이러한 사태진전이 12월의 통일총선에 끼칠 영향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다”는 것이 양쪽 집권당의 결론이었다.

 드 메지에르 총리의 제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콜 총리가 불신임될 것을 목표로 하여 서독의회에 자신의 신임투표를 부치는 것이다. 이는 이미 1982년에 콜 총리 자신이 한차례 사용했던 방식이다. 그당시에 서독 헌법재판소는 신임투표의 위헌심사 제소를 기각하기는 했지만 선거전술적인 목표를 위한 신임투표는 위헌임을 밝힌바 있다. 또한 의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는 바이체커 대통령이 이 방안은 사용하지 말 것을 콜 총리에게 권고했다고 한다. 따라서 콜 총리로서는 이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방안은 의회의 최소 임기를 45개월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므로 사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사민당은 이를 거부해왔다. 이에 대해 기민당은 사민당을 ‘통일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전술을 사용했다. 기민당의 이러한 전술이 그동안 통일정책 논쟁에서 여러차례 곤경에 빠뜨렸고 마침내 사민당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기민당은 톡톡히 재미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사민당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총선일은 그대로 두되 동독이 서독헌법에 따라 서독 연방에 ‘가입’하는 날짜를 9월14일로 앞당기자는 것이 그것이다. 나아가 사민당은 조급한 통화단일화가 수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임을 경고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지금은 동독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때이지 선거일을 앞당길 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정치적 계산

 선거일을 둘러싼 이러한 논란이 있기 직전까지 동·서독의 기민당은 지난 가을의 ‘혁명’에 앞장섰던 재야세력들이 무난히 통일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동독에서는 서독에서와는 달리 득표율 5% 미만인 정당의 의회 진출을 억제하는 ‘5% 장애조항’이 없는 선거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사민당은 그러한 선거는 서독 헌법에 저촉될 뿐만 아니라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에게도 유리할 것이므로 동·서독에 동일한 선거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양자의 명분 뒤에는 통일의회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 동독에서 5% 장애조항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재야세력의 결집체인 ‘동맹 90’은 물론 민주사회당도 무난히 의회에 진출하게 될 것이므로 사민당으로서는 자신에게 올 표의 일부가 이들에게 돌아갈 것을 염려한다. 이에 반해 기민당으로서는 자매당인 기사당의 동독내 기반으로서 2~3%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독일사회연맹’도 5% 장애조항이 없으면 의회에 진출할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득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민당의 제안에 따라 선거동맹을 허용함으로써 ‘동맹 90’은 서독 녹색당에 의해 구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러놓으면서 민주사회당을 배제하려는 선거법이 채택되었다. 이 타협에 대해 <슈피겔>지는 “유권자들이 아니라 기민당 기사당 자민당 사민당으로 구성된 ‘카르텔’이 다음 연방의회에 누가 진출할 지를 결정했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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