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늪에서 내각제 건지려고…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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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연기로 ‘대통령독대’ 유도한 JP… 대권구도 가름할 金·金 대회전 임박한 듯

민자당 金永三대표최고위원과 金鍾泌최고위원 사이의 ‘우정과 소신’이 퇴색해가고 있다. 3당통합 직전만해도 잦은 골프회동으로 돈독한 우의를 과시했던 두 金씨지만 이제 어쩌면 한바탕의 대회전을 각오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측은 김최고위원의 ‘지각 귀국’에서 비롯된다. 盧泰愚대통령과 최고위원이 만나는 11일 청와대 조찬회동에 불참하고 13일 귀국한 金최고위원의 ‘미야자키(宮崎) 구상’은 과연 어떤 내용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창당이후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3계파의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서도 정중동의 관망자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김최고위원이 드디어 결단을 내릴 것인지의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특히 그는 귀국 인사 형식을 빌어 자연스럽게 노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을 추진, 개헌 및 공화계 위상다지기와 관련한 정지작업에 돌입했다.

 

출국 전에 공화계 핵심 불러 결속 당부

 지난 1일 출국했던 김최고위원은 당초 5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귀국일을 7일과 9일로 연기한 데 이어 13일로 다시 연기했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그가 청와대 회동이 11일로 결정된 사실을 알고서도, 또한 9일 오전 귀국 비행기편이 예약돼 있었으면서도 이를 굳이 취소하면서까지 귀국을 연기한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崔昌潤 정무수석과 朴俊炳 사무총장이 김최고위원에게 전화로 거듭 청와대 회동의 참석을 권했으나 그는 끝내 이에 불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최고위원과 일본 정치인간에 접촉도 없었다는 것이 金東根비서실장의 설명이고 보면 抗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이번 귀국 연기는 순전히 앞으로의 정국에 대비하는 ‘노림수’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당내 중론이다.

 사실 이번 김최고위원의 일련의 행동들은 과거 金永三대표와 朴哲彦의원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과 비슷한 정황을 보여준다. 지난달 24일 청남대 골프회동 이후 김최고위원의 심기가 급속히 불편해지고 그 여파가 11일 청와대 조찬회동의 불참으로 연결된 것을 볼 때 이는 평소 그의 신중한 성격으로 보아 우발적인 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그는 출국 전에 공화계 핵심의원들을 불러 전과는 다른 결속을 부탁했다고 알려진다.

 그렇다면 과연 김최고위원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첫째로 내각제 개헌 논의의 중단에 대해 큰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그는 그동안 “3당 합당시의 약속이었던 내각제 개헌이 흔들린다면 민자당 자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경고를 거듭해왔다. 맨처음 내각제 합의 각서설이 유포된 것도 민주계의 내각제 개헌 반대 움직임에 쐐기를 박으려는 공화계가 진원지였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지난달의 청남대 회동에서도 그는 김대표에게  “합당의 본질(내각제)에는 어떠한 변질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약간 언성까지 높이면서 약속 이행 여부를 따졌다고 한다. 청남대 회동 직후 그가 당에서 “내가 몇가지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고 확인해두었다. 다소 일이 늦어지고 있지만 당초대로 가고 있다”고 밝힌 것은 표현은 완곡했지만 그의 심증을 그대로 나타낸 말이었다.

 

“내각제 거론 말자” 대통령 말에 충격

 그러나 민정계와 민주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의 이말은 약간 차이가 난다. 청남대 회동에서는 노대통령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당직자는 물론 최고위원들도 내각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내각제 논란의 종식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6월 평민당 金大中총재와의 청와대 회담에서도 노대통령은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건 내각제 개헌이 되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내각제가 3김씨에게 고르게 기회를 주는 제도라고 생각할 뿐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김총재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은 물론 노대통령이 내각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기도 하지만 정국이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뒤덮이는 상황을 초래하면서까지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대통령 자신이 내각제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헌 추진이 용이하지 않다고 말한 것에 김최고위원은 상당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철언의원 노선변경에 더욱 위기 느껴

 김최고위원은 대야 협상방안에서도 김대표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김대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민당에게 4석의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양보하도록 힘을 썼던 일에서도 야당을 보는 그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지자제 문제도 김대표보다 탄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대표가 평민당에서 내놓은 지자제안에 상당히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면 김최고위원은 평민당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하자는 입장이다. 이같은 견해 차이는 평민당의 金大中총재에 대한 견제 감정의 일단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보완법에 대한 의견 대립도 무시될 수 없는 사안이다. 4당 시절부터 국가보완법 개폐에 적극적이었던 김대표와 국가보완법에 애착을 보이고 있는 김최고위원 사이에 인식 차이의 골은 예상외로 깊다고 할 수 있다. 청남대 회동 이후 국가보완법 및 안기부법을 ‘미래지향적이고도 전향적으로’검토하겠다는 결론이 그에게는 내심 불만일 수가 있다.

 그러나 역시 김최고위원이 가질수 있는 불만의 핵은 차기 대권구도이다. 합당할 당시의 약속과는 달리 김대표가 계속 대통령제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철석같이 믿었던 민정계의 일부마저 이에 동조하는 것처럼 나타나자 JP는 내심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내각제 신봉론자의 하나였던 朴哲彦의원이 4년 임기에 연임 가능의 대통령제 및 부통령제 개헌 가능성을 말한 것은 내각제 추진 그룹의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를 더욱 흔들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김최고위원은 일본으로 떠나는 날 아침 박의원을 불러 아침식사를 같이 하면서 내각제 개헌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새삼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대표와 박의원이 교량역을 맡고 있는 민주계의 한 핵심위원은 “정치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김대표와 박의원의 제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민정계와 민주계에 비해 ‘종속변수’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공화계의 위상에 불만을 가진 김최고위원은 내각제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공화계는 물론 자신의 앞날도 장담하지 못할 최악의 위기상황에 처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특히 김대표가 국회 날치기 이후 더욱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며 여권내 2인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자리잡아나가는 것도 자극요소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최근 김대표는 노대통령과의 신의와 우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돈독해진 것은 물론 민정·공화계 중진들과 잇따라 골프를 치며 우의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어 그의 위상은 전보다 훨씬 다져진 인상이다.

 이같은 여러 정황에 따라 김최고위원은 자구책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대표와의 한바탕 격돌을 예상외로 빨리 앞당길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 민자당의 분위기는 김최고위원의 이런 행보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가 출국하기 직전 장시간 대화를 나눴던 朴俊炳 사무총장은 “김최고위원이 내각제 및 정국 문제에 대해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낙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민정계가 사태의 조기 진화에 나섰다는 것을 알려주는 한 장면이다. 민정계의 만류와 김최고위원 특유의 신중론이 합쳐져 이번 사태가 겉으로 폭발하는 양상으론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야권 앞에서 분열할 수는 없다는 논리도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정계퇴진이 JP의 배수진

 그러나 김대표와의 관계 정립은 김최고위원으로서는 언젠가는 반드시 마무리해야 할 운명적인 숙제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곧 진정된다 해도 이는 시기적으로 잠시 유보된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민자당은 14대 총선 이전에는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된 당내 권력구조를 명확하게 정착시켜야 한다. 13대 국회의 임기가 92년 5월29일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총선 1년 전, 즉 91년 상반기에는 당지도부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야 공천에 따른 마찰 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총선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 이러한 일정을 염두에 둔다면 민자당은 결코 한가할 수 없다. 서둘러 차기 대권구도를 정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두 김씨의 승부가리기도 머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동안 당내 제3인자로서 김대표에게 깍듯한 예우를 해온 김최고위원이지만 이제는 탈당 내지는 정계퇴진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한바탕 결전을 벌여야 할 시점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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