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센터 움직이는 두뇌들
  • 애틀란타.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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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밴스.크릭모어 ‘쌍두마차'… 한반도 전문가 없어

 카터 센터는 조지아 주 주민들에게 고유명사가 돼 있다. 주민 누구에게 물어도 센터의 위치에 훤하고, 자랑스레 길 안내를 자청할 정도이다.

 조지아의 주도 애틀랜타 공항에 내려 시내쪽으로 뻗는 고속도로를 타다 보면 도로표지판 곳곳에 카터 센터 진입로가 명시돼 있다 미국 연방 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고속도로에 사설 재단 이름이 공식으로 등재돼 있는 것이다. 카터 센터는 명소가 됐고, 주민 거개가 이를 자랑으로 여긴다.

  애틀랜타 시 외곽 코펜힐 소재 카터 센터 정문에서 기다리던 공보부국장 디아나 콘젤리오 여사가 “〈시서저널〉에서 오셨죠???라고 손을 내민다. 카터 센터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제일 궁금한 것은 이 센터에 봉직하는 한국통들이 지닌 신뢰도였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과연 어느 수준, 어느 경지에 이른 두뇌들이 카터를 보좌하는가.

  콘젤리오 공보부국장이 보여주고 설명하는 이 센터의 구성과 기능은 ‘약 2백50여 명인 카터 캠프 진용이 전쟁.인권.질병.빈곤 등 세계적 난제에 관해 거의 사도적(使徒的) 입장에서 해결에 임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여러 기능 가운데 특히 아프리카 열여섯 나라에 창궐하는 기생충을 박멸하는 일은, 이들 국가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을 카터 센터가 범대륙적 차원에서 해결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 같다. 또 국제적 난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미국 어린이의 방역률을 지난 5년 동안 20%에서 거의 90%로 끌어올린 것도 카터 센터가 선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터 센터의 심장 ‘분쟁해소국??
  그러나 카터 센터의 명성과 주가가 인정되는 대목은 역시 분쟁 해소 기능이다. 그 구체적인 예가 아이티 사태에 관한 카터의 해법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카터의 평양 입성과, 그후 한때 가능성을 비치다 다시 소강 상태에 빠진 남북한 화해 기류다. 이 분쟁 해소기능은 △개발과 민주화 △인권 △공해 추방 △도시 문제 해소 등 카터 센터가 취급하는 현안 가운데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각 분야별로 국장을 두고 그 밑에 전문 종사자들이 그룹을 이루어 카터를 보좌한다. 그리고 각 분야별 연구.검토 사항은 총괄집행국장인 존 하드먼 박사가 취합해 회장인 카터에게 수시 보고하는 체제로 되어 있다.

  분쟁 해소 담당 국장은 국무부의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루마니아.인도 대사(이상 카터 대통령 재임시)와 80년대 후반 칠레 대사를 역임한 해리 밴스가 낱고 있다. 잠시 인권국장을 맡다 지난해 8월부터 분쟁해소국장으로 전보된 밴스는 프로그램국장인 마리언 크릭모어와 함께 현 카터 외교 드라이브의 주역을 맡고 있다.

  크릭모어 역시 밴스와 마찬가지로 국무부에서 25년간 잔뼈가 굵은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마지막 공직은 스리랑카 대사였다. 그는 지난 6월 카터를 수행해 평양과 서울을 방문 했을 정도로 외교적 수완과 순발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밴스 국장의 차석으로 일하는 언어학자 조이스 뉴 박사(여.부국장)도 분쟁 해소에 관한 한 일가견을 지닌 두뇌이다. 한때 서든 캘리포니아에서 대학 교수로 일한 뉴 박사는 카터 캠프에 합류하기 직전까지 나이지리아.폴란드 등지에서 미국공보처(USIA) 자문역을 맡아 왔고, 한때 서아프리카에 평화봉사단원으로 봉사한 경험도 있다. 국제 분쟁해소를 위한 이론과 협상 방식에 관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여러 차례 기고했으며, CNN 등 방송 매체를 상대로 카터(센터)의 중재 능력과 이론적 배경을 선전하는 일도 맡고 있다.

   이밖에도 톰 크릭.랩 조이스.수전 팔머 등 ‘능력과 비전을 겸비한??신예 연구진이 분쟁해소국에 모여 있다고 콘젤리오 공보부국장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들은 명성이나 업적 면에서 기억을 되살릴 만한 정도는 아닌 듯 싶다.

  여기서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이들 국제분쟁 해소팀 멤버 가운데 누구 하나 한반도 문제 전문가나 지한파(또는 북한파)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예컨대 상황과 진척에 따라 북한 문제에 휘말렸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이티 사태나 이라크 사태 쪽으로 관심과 노력을 전환해야만 한다.

  물론 남북한에 관한 일상적인 정보나 기류 변화는 해당 국 사무직원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분류.검토되지만 국무부 산하 한국과처럼 상설 편제나 담당관 제도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백여 명 규모의 상설 요원으로 구성된 카터 센터의 특징에 관해 현지 신문 〈애틀랜타 컨스티튜션〉 정치부의 한 기자는 “카터 중심의 철저한 방사선 조직을 갖춘 관리방식??이라고 귀띔해 준다.

  중견 간부급 이상이면 거래가 카터 회장과 직접으로 상하 관계에 놓일 뿐, 횡적으로 이렇다 할 교류나 교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백악관 시스템이 그대로 원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모든 정보는 카터 한 사람에게 집약되는 만큼 센터 내부의 정보 관리와 보안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라고 그는 말한다.

  밴스나 크릭모어 또는 조이스 뉴 등 카터센터 참모들이 가진 한반도 정보나 기류의 수준과 범위를 재기 위해 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기자가 제의했을 때 콘젤리오 공보부국장은 이를 거절했다. 사진도 안된다고 막무가내였다.

  카터팀은 남북한 현지 정보를 누구를 통해 얻는가. 미국 주재 몇몇 한국 공관이 일차적으로 카터의 정보 욕구를 충족시킨다. 특히 애틀랜타 주재 한국총영사관(총영사 권영민)과 카터의 참모 크릭모어 프로그램국장간에 긴밀한 협조와 정보 교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DJ.레이니 주한 대사와 정보 교환
  카터는 또 한승수 주미대사와도 긴밀히 접촉하며, 지난 6월 평양 방문을 위해 출국할 당시 워싱턴 대사관저로 한 대사를 방문해 오랫동안 요담할 정도로 막역한 교분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애틀랜타에 수시로 나타나는 아.태재단의 김대중 이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소스의 하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객관적인 한국 정보를 그에게 줄 수 있는 인물로 레이니 현 주한 미국대사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해 10월 주한대사로 취임하기 직전까지도 이곳 조지아 주의 명문 에모리 대학 총장이던 레이니씨는,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카터를 에모리 대학 초빙교수로 불러 대학의 주가를 한층 더 올린 명총장이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82년 카터와 함께 지금의 카터 센터 전신인 에모리 대학 부설 카터 센(CCEU)를 설립한, 카터와는 불가분의 공동체를 이뤄온 인물이다.

  서울의 모니터들이 보내는 각종 보고나 서신도 카터에게는 중요한 한반도 정보를 될 수 있다. 공보부국장에 따르면, 1년 동안 카터 앞으로 배달되는 각종 서신의 가짓수만 3만5천통에 이른다. 이밖에도 전화와 팩시밀리가 24시간 풀가동하고, 이를 수집.관리.분류하는 개인 비서(수행 비서 포함)가 10명에 이른다.

  북한에 관한 정보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하거나, 평양을 수시로 왕복하는 재미 한국계 정치학자들의 보고를 받기도 한다. 화급한 경우 김정일과 직접 교신도 가능한 상태이다.

  이곳 카터 센터의 측근 소식통들이 전하는 카터의 정보 수집 통로를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한 가지 확실한 사실과 만난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카터는 어느 특정 세력이나 집단의 영향력이나 입김에 깊이 말려들기를 한사코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그 좋은 예가 얼마 전 이곳 센터에서 카터가 치른 ‘3나 연쇄 대담??이다.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애틀랜타 방문을 사흘 앞두고 한승수 주미대사가 불쑥 이곳에 나타나 한때 서울의 뉴스 촉각을 크게 자극한 바 있다. 현대사가 그 시점, 그 상황에서 굳이 카터를 만나러 애틀랜타까지 올 정도로 화급한 일이 있었겠느냐, 결국은 카터.김대중 요담에 ‘재를 뿌리기 위한 김빼기 작전??이 아니냐 하는 것이 워싱턴 주재 한국 언론들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카터와 요담한 뒤 워싱턴으로 돌아온 한대사의 기자회견에서 전혀 엉뚱한 사실이 불거져 나왔다. 카터가 유엔주재 북한대사 박길연을 카터 센터로 불러 먼저 면담했던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카터는 이처럼 한국 정부나 북한 정부, 또는 아.태재단 어느 한쪽에 깊이 개입되거나 개입됐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자칫 그럴 소지가 있거나, 있다고 보이기만 해도 세 쪽을 거의 동시에 다 불러들임으로써 오해받거나 과신할 요인을 없애는 데 익숙하다.

  이러한 균형 감각과 분별력마저 자연인 카터의 행위라기보다 카터 센터라는 제도의 제품으로 받아들여지니 놀랍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적했듯이 카터에 대한 재평가는 지금 미국 시민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그 카터가 10월1일로 만 70세가 됐다.
 애틀란타.金勝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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