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새댁들“살림이 더 좋아"
  • 편집국 (sisa@sisapress.com)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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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여성들이 밝힌 북녘 생활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을 주제로 25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서울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 여성지도자들이 서울을 방문하는 것과 때를 맞춰《시사저널》은 귀순한 북한 여성과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金春玉 국제부장의 사회로 지난 11월21일에 열린 이 좌담회를 통해 북한 여성들의 생활상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북한에 살았을 때의 하루 일과는 어땠습니까?

최봉례 : 북한에는 8시간 일하고 8시간 학습하고 8시간 잠 잔다는 방침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아침 6시30분까지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 4시부터 서둘러야 식구들 아침식사 준비하고 출근할 수 있습니다. 출근하면 30분간 작업장 청소한 뒤 7시부터 30분간 독보시간을 갖습니다. 7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해 12시까지 일하고 1시까지 점심식사를 합니다. 4시까지 일을 마치고 청소한 뒤 그날 일한 것을 총화하고 2시간 학습운동을 합니다. 학습을 하는 날도 있고 회의를 하는 날도 있고 호상비판하는 날도 있는데 어느날이나 빈틈이 없지요. 7시나8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와서 식사준비하고 빨래를 합니다. 매일 같이 이런 일과가 되풀이 됩니다.

임정희 : 계절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여름에는 더 일찍 출근합니다. 간호원 같은 비생산직의 경우 8시까지 출근하면 됩니다. 독보회는 8시30분에서 9시까지 하는데 신문의 논단이나 신년사 덕성자료 등을 읽습니다. 직장에서 집이 가깝기 때문에 대개 집에 가서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시간이 1시부터 3시까지일 때는 오침시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나른해진다고 해서 2시까지로 줄였습니다. 1시부터 5시까지 치료하고 환자 끊기면 청소하고 6시쯤 퇴근합니다.

일하고 와서 집안일까지 하려면 힘들지 않나요? 남자들이 집안일을 도와줍니까?

최 : 남편이 더 바빠요. 불만이 있어도 내가 택한 일인데 뭐라고 할 수가 없지요. 집에서 놀 수도 있지만 안하면 배급이 적어서 힘듭니다. 일할 때는(쌀배급) 7백g, 집에 있으면 3백g을 받습니다.

임 : 직장 내에 남녀차별이 있습니다. 처음 배치받는 곳이 수술장이었는데 남자 의사들이 여자들을 얕보며 자기 일까지도 시켰습니다. 여자 의사와 같이 있으면 열등의식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의사가 되려고 이곳의 야간대학과 비슷한‘통신??을 신청했었습니다.

일하는 여성과 일하지 않는 여성의 차이가 있습니까?

최 : 직장에 나가지 않는 여자는 대개 허약자이거나 아이가 많은 집 여자들입니다. 나는 아이가 다섯이지만 건강하고 할 만하니까 직장에 나갔습니다. 나가는 게 오히려 나아요. 집에 있어봐야 동원되고 회의 나가고 해서 힘들기는 마찬가지니까요.

김일성 주석은 80년 6차 당대회에서‘ 여성이 각종 사회활동에 자유롭게 참가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부엌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습니까?

최 : 남녀평등을 선포한 지 오래지만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일하는데 남자는 급수를 더 받으니 남자가 못된 게 한이구나 싶었지요. 이곳은 남자들이 여자를 많이 생각해줘요. 북쪽에서는 너도 7백, 나도 7백(쌀 배급량)이라면서 여자들을 별로 위해주지 않습니다.

임 : 일하는데 평등은 많습니다. 여자라고 힘든 일 못하는 것 없습니다. 여기와서 보니 처음에는 선진국처럼 여자를 위해주는 듯 했는데 생활해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북한에서는 일할 때는 평등하지만 남자들의 유교사상이 상당히 깊습니다. 가정에서도 여자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합니다. 남한에서는 직장 내에서 승진문제나 다른 차별은 있지만 가정에서는 평등한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가 어떻게 되는 줄 압니다.  직장에서의 평등이 가정에서의 평등으로 연결되지 않는 거죠. 지금은 산전 60일 산후 90일간의 출산휴가가 있는데 이 기간 중에는 배급이 나옵니다.

최 : 여자들을 부엌에서 해방시켜준다고 했지만 실천된 게 없어요.  처음 교사가 나올 때는 고래등 같은 기외집에서 쌀밥에 고깃국 먹게 해주고 더운물도 나오게 한다고 했지만, 기와집은 고사하고 집 구하기도 힘들고 먹을 것도 귀하고 더운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임 : 밥공장이 평양 개성 원산 등 큰 도시 몇군데만 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출근할 때 쌀을 맡기면 퇴근할 때 밥을 주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콩으로 두부를, 옥수수로 떡을 바꿔먹는 교환소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가장 이름이 알려진 여성지도자는 누구였습니까?

최 : 김성애(김일성의 처·김정일 계모)지요. 자금은 별로 역할을 못하고 있지만 김정일이 올라앉기 전에는 다 해치웠어요. 김정일이 곁가지를 없애라 해서 힘을 못쓰고 있지요. 평범한 사람들은 누굴 존경하기보다는 그저 내려보내면 따를 뿐이다.

임 : 최고인민회의 지방 대의원선거 때 여자가 나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감탄합니다. 개성에도 방직공장 출신 여자 대의원이 있었어요. 독신 여성이 많아 성공하려면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 : 여자로서 대의원이 되려면 남편이 한 자리 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와 마찬가지지요. 우선 성분이 좋아야 합니다.

여성의 사회에서의 역할이 최근 들어 변하지 않았습니까? 가정 내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더군요. 특히 가정화목을 위해 며느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의 학습을 한다던데요.

최 : 변화가 있다기보다는 점점 다 못살게 되고 통제가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자식간이나 고부간 관계도 남북 서로 비슷합니다. 여기 와보니 북한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고발한다고 말들 하던데 그건 남한에서 부모를 구박하는 자식이 많지 않듯이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임 : 에전에는 여자들이 맞벌이로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 했는데 요즘은 가급적 집에서 가정주부로 충실히 지내려 합니다. 요즘 20~30대 젊은 주부들은 결혼만 하면 웬만하면 집에 있으려고 합니다. 우리 새언니도 안전국 산하 기관에 다녔는데 결혼하자마자 집에 눌러앉았어요. 10명 가운데 서너명은 집에서 놀고 그 가운데 한명 정도는 집에서 가정부업을 합니다. 그냥 놀면 식량이 부족해서 견디기 힘들고 또 여맹조직에 많이 동원되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헐레벌떡 나가는 것보다는 가내부업을 하면 여맹에서도 나오라고 하지 않고 수입도 좋아요. 재봉일이나 스웨터 뜨개질을 많이 하는데 공장에서 일을 받기도 하고 개인 일을 맡기도 합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암거래를 통해 쌀을 사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부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공장에 줄이 있어야 일거리라도 맡을 수 있지요. 87년경부터는 가내부업이 자본적 경향이라고 하여 수입의 20%를 국가에 바치게 했습니다.

남쪽에 와보니 여성들이 어떻던가요?

최 : 생활수준을 놓고 보면 하늘과 땅 차이지요. 북에서는 워낙 아무것도 없으니 여자들이 강하고 드셉니다. 여기 와보니 여지들이 너무 안일하고 호화방탕해보입니다. 남북이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북에도 좋은 점이 잇고 남쪽에도 좋은 점이 있지만 나쁜점도 많이 있지요.

임 : 차이가 많습니다. 회사 동료들과 지낼 때 보면 제가 상당히 노티가 나고 보수적인 듯해 보입니다. 제가“여자가 뭐 그러냐??고 하면??여자라고 왜 못해??그럽니다. 회사에서는 저를??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놀려요. 너무 보수적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남쪽 여자들이 안이하지요. 여자들이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말만??여자도 할 수 있다. 여자라고 못할 게 뭐냐??라고 합니다.

5년 가까이 남한에서 살았는데 자식과 세대차이는 생기지 않던가요?

최 : 늙은 우리야 우리 식대로 살 뿐입니다. 아이들은 여기 식대로 따라가겠지요. 학생이 무스도 바르고…. 차이가 좀 나는 것 같아요.

딸을 낳으면 어떻게 기를 생각입니까?

임 : 나는 딸은 안 낳을 겁니다. 시댁에서는 딸도 좋다고 말씀하시지만 여기서는 딸기르기가 너무 힘들어요. 딸은 좀 애물인 것 같습니다.

남북한 여상지도자들이 만나서 통일문제를 의논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최 :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해야 하는데 자기 주장만 하다가 마는 것 같습니다. 북쪽에 있을 때는 남쪽이 전혀 말을 안 듣는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북쪽이 자기네 주장만 옳다고 하더군요. 그쪽의 주장을 꺽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전세계가 들고 일어나는데 곧 통일이 되겠지요.

임 : 북쪽 사람들이 논리가 세서 아마 남쪽 여자들을 설득하려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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