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낮고, 아파트는 높다
  • 마산.成宇濟 기자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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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미술과, 마산시의 몰이해.무지로 이전 불가피 … ‘보배 지키기 운동'확산

경남 마산의 원로 조각가 文 信씨(71)가 13년간 공들여 세운 미술관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산 앞 바다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추산동 무학산 중턱 추산공원 옆에 자리잡은 재단법인 문신미술관의 주변 환경이 그로 하여금 고향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미술관 한쪽을 막는 9~11층짜리 대형 아파트가 세 동 들어서고, 미술관과 3~4m 거리를 두고 붙어 있는 한 동은 미술관보다 7m(2층)나 높이 올라가, 입구에서 보면 미술관과 연결된 것처럼 설계되어 있다. 문씨는 “이제는 지쳤다. 미술관이 서민을 위한 아파트를 못짓게 한다는 말까지 나돌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공사현장의 먼지와 소음을 피해 한달째 호텔 생활을 하는 작가에게 가장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문화에 대한 시 당국의 무지와 몰이해이다.

“미술관.아파트 모두 살릴 방법 있었다"
 5월27일 문을 연 문신미술관은 개관 한달만에 2만여 관람객을 맞이하리만큼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문화 명소로 자지를 잡는 듯했다. 이는 문 신이라는 이름과 조각.데생.유화 등 수백 점에 이르는 그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천5백여평 대지에 연건평 2백50평짜리 2층 건물 둘로 이루어진 단아한 모습의 미술관이 무학산과 마산 앞바다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산 앞바다는 가곡 〈가고파〉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합포만이며, 무학산 추산공원은 ‘마산의 성지??라고 부를 정도로 마산 시민이 사랑하는 휴식 공간이다. 문씨는 이 미술관을 직접 설계하고 돌을 하나하나 손수 깍아 미술관에 박았고, 작품이 한점씩 팔릴 때마다 공사를 진척시켜 왔다. 81년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마산에 정착한 뒤 그는 낮에는 집 짓고 밤에는 작품을 하는 생활로 일관했다.

 문씨가 섭섭하다 못해 괘씸해하는 부분은 아파트 공사와 관련해 아파트 발주자인 마산시가 보인 태도이다. “시장이 찾아와 마산을 떠나지 말라는 말만 했을 뿐 공사에 대해 오늘까지 단 한번의 상의도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마산시가 발주한 이 아파트는 서민들이 달동네를 이루어 살던 추산주거환경개선지구에 있다. 마산시 주택과의 한 관계자는 "미술관을 의식해 아파트 위치를 조정하면서 미술관의 조망권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할 만큼 했다. 앞으로도 노력은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문신미술관측이 요구하는 것은 미술관보다 30여m 아래에서 올라오는 아파트의 지붕이 최소한 미술관 지붕과 수평을 이루게 해달라는 것이다. 마산시는 이 요구를 들어주면 입주 예정인 3백32세대 중 일부가 입주를 못하고 지금으로서는 예산 부족으로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마산 시민과 예술가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개관 한달만에 미술관이 문을 닫는 충격을 경험한 이들은 문 신씨가 마산을 아주 등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산의 위기??로까지 받아들인다.

 문신미술관을 보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경남대 朴在圭총장은 “아파트를 짓기 전에 미술관과 아파트를 함께 살리는 방법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었다. 공무원들이 법적하자가 없다는 이유로 일을 밀고나가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박총장이 특히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가고파〉의 바다는 썩고, 기관이며 시설들이 옆 도시 창원으로 다 옮겨버린 마당에 문신미술관마저 떠나면 사산에는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박총장은 "마산시가 나서서 미술관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이다, 연로한 작가가 고향을 찾아 전재산을 바쳐 만든 "마산의 정신적 보배"를 밖으로 내모는 것은 시민의 의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처사이다"라며 마산시를 비판했다.

 마산의 시민.예술가들은 작가가 미술관을 떠나버린다면 마산은 황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한 작가와 미술관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마산 지역에서는 7월부터 9월까지 대책 모임이 3개 만들어졌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마창 시민연합????무학 화가회??등 10개 시민 단체와 종교단체가 만든 ??쾌적한 마산을 위한 시민 모임??(가칭.준비위원장 韓錫泰 경남대 정외과 교수)이 7월에 결성되어 서명운동 등 구체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마산미술협회는 문신미술관보전대책위원회(위원장 최명환)를 구성하고 관계 기관에 건의서를 보내는 등 활발한 활동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지난 9월27일에는 마산시립교향악단.마산시립합창단.경남오페라단.마산국악관현악단.마산민속문화보존회 등 마산 지역 22개 무대예술 단체 대표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마산시향 연습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문선생이 마산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추산공원에서 토요상설 예술무대를 열고 우리 의사를 시민들에게 알리자??고 결의했다. 인구 40만인 큰 도시에 문화예술 회관 하나도 없는 절박한 현실에다 마산 문화예술의 중추적 산실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문신미술관의 좌초를 이들은 그 누구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문화.환경 보존 시민운동으로 발전
 ‘쾌적한 마산을 위한 시민 모임?? 준비위원장 한석태 교수는 ??한국의 나폴리라 부를 정도로 산과 바다가 수려했던 마산의 모습이 건설 행정의 잘못으로 도심은 슬럼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마산시는 공간이 생기기만하면 건설업자와 손잡고 아파트와 공장을 지었다??라면서, 문심미술관 보전을 위한 운동을 마산 파괴를 저지하는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명운동과 〈건설행정백서〉발간, 예술 무대 마련, 추산공원 인간띠 잇기 등 여러 행사를 준비하는 시민과 예술가들은, 자기들의 활동이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에게 해를 주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강조한다. 마산미술협회 朴長根 부회장은 “우리가 문제 삼은 것은 장기적인 문화정책은 뒷전인 채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에만 강한 집착을 보이는 시당국의 근시안적인 정책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는 문씨에게 경사와 악재가 두루 겹치는 한 해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작가의 예술 생애를 되돌아보는 〈문 신 예술 50년전〉이 서울에서 성대하게 열렸고, 몇십 년 전부터 그가 꿈꾸어온 미술관 문을 열었다. 그런 반면 6월30일 새벽에는 미술관에 도둑이 들어 그가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그린 40, 50년대의 유화 9점을 훔쳐갔다. 게다가 올 2월부터는 아파트 기초 공사가 시작되어 발파 작업 때 미술관으로 돌이 날아오고 미술관의 벽과 창문에 금이 갔다. 지난 여름에는 집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문 신씨는 아름다운 것들만 보였던 유년기 마산 시절의 추억이 작품을 하는 데 영감의 산실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산 바닷가에서 모래를 끌어모아 작품을 만들어 보고 해서 손재주가 좋아졌다고 그는 믿는다. 특히 어린 나이에 겪은 고생 때문에 마산에 더 애착을 가졌고, 그래서 돌아왔다. 꽃 한 포기를 손수 심고, 돌 하나까지 깎아가며 세울 미술관의 환경이 미술관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리자, 그는 “미술관 건물은 그냥 남는 게 아니냐??면서도 마음은 이미 고향을 떠났다고 말했다.

 문신미술관은 이제 미술관 문제를 떠나 마산의 문화와 환경 지키기 운동을 벌이는 마산 시민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마산.成宇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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