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운동권만 보는 영화 아니다”
  • 이성남 문화부차장대우 ()
  • 승인 1990.08.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항쟁 다룬 최초의 35mm 극영화 <부활의 노래>

 “제작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 대신 제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는 꿈을 꾸었을 정도로 심리적 압박감은 크게 느꼈습니다.” 광주항쟁을 소재로 최초의 35mm 극영화 <부활의 노래>를 만든 이정국감독의 말이다.

 현재 ‘공륜 심의’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부활의 노래>는 광주항쟁을 전후로 ‘들불’야학을 주도했던 실존인물 3명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시민군 대변인으로 도청 진압작전 때 사망한 윤상원, 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수감중 옥중 단식투쟁 끝에 절명한 박관현, 위장취업으로 제적되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 훗날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올린 박기순 등의 생을 담은 이 영화를 통해 이감독은 “광주 이야기보다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윤상원은 과묵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평소 잘 나서지 않으나 항쟁의 현장에서는 앞장 서 투쟁하는 초인적 인물(태일)로, 박관현은 우직하고 겉으로 강하나 현장에서 도피하고 그로 인한 죄의식에 시달리다 마침내 투쟁의 일선으로 돌아오는 인간적인 인물(철기)로 그리려 했다”는 설명이다.

 <부활의 노래>를 제작하면서 운동권 관객보다는 “광주란 말만 들어도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감동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피력한 이감독은 그런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탱크를 전면에 내세워 직설적인 방법으로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나 사실주의적인 접근법을 피했다”고 말한다.

 광주항쟁이라는 거대한 물음표를 높은 목소리보다는 미학적인 ‘영화언어’로 풀어낸 감독의 의도는 여주인공인 박민숙의 죽음에서 잘 드러난다. 도청을 진압중인 계엄군의 총소리를 들으며 박민숙은 길가로 뛰쳐나가 총알에 맞아 죽은 엄마 곁에서 우는 아이를 들쳐앉고 돌아선다. 그 순간 그를 향한 총신의 그림자가 비치고 이어 총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져 죽어 있는 모습이 나온다. 화면에는 계엄군의 모습도, 학살의 현장도 나타나지 않는다.

 

6개의 소제목이 등장하는 생경한 형식

 그러나 이같은 상징적 영화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은 대개 실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올리는 박민숙의 기도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나님, 어찌 해야 좋습니까. 양심이 무엇입니까. 왜 이토록 저희에게 멍에를 지게 하십니까. 우리의 피를 원한다면, 하나님 이 한몸의 희생으로 모두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이 기도문은 도청에서 전사한 박영준씨의 시신에서 나온 것이다.

 <부활의 노래>는 공동대표 7인으로 구성된 독립프러덕션 ‘새빛 영화제작사’가 ‘제도권 영화’에 도전하는 첫 작업이다. 그런 만큼 젊은 영화인의 실험정신이 곳곳에서 돋보이는데, 특히 자막에 ‘살얼음 위의 사랑’ ‘폭풍전야’ ‘겨울로의 긴 잠행’등 6개의 소제목이 등장하는 생경한 형식은 시사회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부분이다. “지나치게 설명적이어서 감정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살려주는  새로운 방법이다”라는 엇갈린 의견이 있었다. “한사람이 영화 찍는 동안 한사람은 자금을 조달해야 했던” 악조건속에서, 가장 어려웠던 촬영은 많은 수의 엑스트라가 필요한 도청 앞 횃불시위 장면과 총성을 울리며 실탄을 나사해야 하는 도청진압 장면이었다고 이감독은 귀띔한다.

 그는 “나라가 망할 때는 자결 행위를 하기보다는 윤상원이나 박관현 같은 죽음을 택함으로써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활의 노래>라는 제목에서, 장렬히 산화한 주인공들의 후예 같은 아이를 들쳐업은 노동자 ‘현실’의 강인한 모습에서 이감독의 그런 의식은 첨예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로는 <오! 꿈의 나라> <황무지> 등의 16mm 소형영화가 있다. 이 영화들은 나름대로 사회적인 반향을 크게 불러일으켰으나 ‘몰래 숨어서 보는 운동권 예술’의 범주에 머물렀던 것도 사실이다. <부활의 노래>가 공륜 심의를 통과하여 극장에서 상영되면 일반인들로서는 광주항쟁 영화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