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실명제 왜 안되나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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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1개 구청 부지 선정 못해…주민들 “왜 하필 우리집 앞이냐"

지난 7월 서울시 중랑구청 홍범택 청소과장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민 대다수가 ‘우리 구의 쓰레기는 우리구에서 치울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였고, 쓰레기 소각장 건설에 대해서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관내에 소각장(자원 회수 시서) 부지를 선정하는 문제가 쉽게 풀릴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2개월 남짓 지난 지금 그는 침울하다. 반상회보와 각종 홍보물을 통해 구민들에게 부지를 추천해 달라고 여러차례 알렸지만, 추천은 단 한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하루 10여건씩 구청에 걸려오는 전화는 한결같이 ‘어디에 건설하느냐' '우리 집 앞에 건설하면 결사 반대하겠다'는 내용뿐이었다.

 기대를 모으며 출범했던 ‘쓰레기 소각장 건립부지 선정 위원회"도 부지를 선정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위원회에는 주민 대표와 학계 전문가, 구의원, 공무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들이 부지를 추천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결국 중랑구청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구청은 관내에 있는 공터 네곳을 물색해 부지 선정위원들과 현장을 답사했고, 10월7일에 열리는 4차 회의에서는 그 중 하나를 선정해 확정지을 방침이다.

 중랑구청이 걱정하는 것은 그 다음에 닥쳐올 민원이다. 홍과장은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2개월 전의 기대나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서울시에서 쓰레기 소각장 부지를 선정하지 못한 구청은 모두 열한 군데이다. 이들은 모두 중랑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사 구청이 전에 부지를 선정했다고 하더라고, 이웃 구청의 쓰레기까지 처리하도록 계획된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지역 쓰레기를 왜 우리가 처리히야 하느냐'는 것이다.

 노원구 상계동에 건설되고 있는 소각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시설은 원래 노원구.동대문구.중랑구 쓰레기를 동시에 소각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다른 지역 쓰레기를 자기네 지역에서 처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하루 1천6백t을 처리하기로 계획되었던 시설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사정이 비슷한 일원.강동.마포.도봉 구청은 주민들이 노원구의 경우를 선례로 삼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다.

환경처.서울시 책임 떠넘기기
 서울시가 이처럼 소각장 건설에 열심인 까닭은,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을 건설하는 일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환경처 자료에 따르면, 난지도에 이어 김포 매립지도 앞으로 25년 정도면 포화 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환경처와 서울시는 소각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종량제와 분리수거 방식을 통해 쓰레기 양을 줄이고 재활용을 적극 장려해야겠지만, 당국은 이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파악한다.

 문제는 주민들이 자기 동네에 소각장을 수용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서울시는 첨단 소각 시설이 들어설 것이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소각장 주위에는 수영장.독서실 등 편의시설을 짓고, 공원을 조성하며, 소각장에서 발생하는 열은 부근 주민들에게 싼값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은 당국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다이옥신 같은 오열 물질이 배출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악취와 소음으로 인해 집값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또 청소차가 동네를 드나드는 것도 질색이다. 왜 하필 우리집 앞이냐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른 지역 쓰레기까지 함께 처리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폐기물 처리 시설은 구청마다 따로 건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방자치 시대의 주민 여론이다.

 일반 폐기물 처리 문제로 서울시가 고충을 겪고 있는 가운데, 환경처는 지난 9월5일 특정 폐기물 관리까지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폐기물 처리장을 확보하지 못한 환경처가 문제를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려 한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환경처는 지방자치제를 명분으로 쓰레기 처리 책임을 지방자치단체로 떠넘기고, 지방정부는 다시 이 골치아픈 문제를 하급 행정 관서로 넘겼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무도 받아 주지 않고 있다. 갈곳 없는 쓰레기더미는 행정 조직과 제도 위를 떠돌고 있다.
朴在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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