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페르시아만의 승자와 패자
  • (본지 칼럼니스트·고려대교수)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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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합방을 선언했고, 미국은 군대와 무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보내 후세인에게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한편 유엔안보이사회의 결의를 동원하여 對이라크 경제제재를 강행하고 있다. 비록 쿠웨이트가 몇시간만에 점령되었으나 그것이 전쟁이었음은 틀림없고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그에 따른 페르시아만 위기에 있어서 승자는 누구이고 패자는 누구인가?

 우선 표면적으로 보면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 해서 1백50억달러의 빚을 탕감했고 세계 굴지의 유전을 확보하였으며, 수백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노획했고 작으나마 영토확장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승자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직접적인 패자는 자기의 영토와 백성을 빼앗기고 쫓겨나 떠돌이 신세가 된 쿠웨이트의 왕가라고 하겠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은 정말 승자인가? 패자는 쿠웨이트의 왕족뿐인가? 사담 후세인은 승자로 남아 있기보다는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각국은 물론 자신의 형제국인 아랍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고 경제제재에 호응하고 나섰다. 그는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결전을 각오해야 하며 내부적으로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파탄을 가져온 자신을 해치려는 기도에 희생이 되든가 최소한 그러한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페르시아만 위기의 패자는 그외에도 무수하다. 나라를 잃은 쿠웨이트인들, 8년 동안의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지금 또다시 미국과 아랍연합군 등 반이라크 세력과 싸워야 하고 경제적제재까지 받아야 하는 이라크의 국민들, 쿠웨이트와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수만명의 외국인들, 이들은 모두 페르시아만 위기의 패자들이다.

 

중동의 여러 나라는 모두 피해자

 패자는 그외에도 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는 파드 국왕과 그의 친족, 그리고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을 지배하는 전통 엘리트들이다. 이번 쿠웨이트 침공으로 이러한 산유왕국들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허약하고 부패해 있는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즉각적인 보호조치가 없었더라면 금시 이라크에 먹히는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이제 미국을 포함한 수십만명의 외국군대가 그 땅에 진주하게 되어 지금까지 왕조를 지켜왔던 전통적 가치관과 조직이 무너져 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서방군대를 이슬람 메카의 땅에 불러들인 것은 아마도 아랍세계에서 용납받기 어려운 일로 남을 것이다. 요르단의 후세인 왕도 패자로 보아야 한다. 이라크의 제2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라크와 서방측에 대한 양면작전을 쓰는 과정에서 서방측은 물론 동료 아랍국에게도 완전히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에서 쫓겨난 쿠웨이트 왕족은 땅과 백성을 잃었으나 개인적으로 해외에 소유하는 자산이 5백억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그들도 완전한 패자라고는 볼수 없다.

 그러면 승자는 누구인가? 지금까지의 상황전개로 보아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는 페르시아만 위기가 미국 군사력의 국제적 역할을 과시하고 중동 산유지역에서의 물리적 발판을 확보하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부시 대통령은 국내에서 인기도 올라가고 대외적으로는 파나마 침공 때 확보한 ‘만만치 않은 사나이’의 명성을 더 굳혀놓았다.

 앞으로 이라크와의 격전이 벌어지고 많은 살생과 파괴가 생기는 경우에는 별문제이지만 이라크의 후퇴로 사태가 수습되든지 어느 정도의 현상유지가 계속되는 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하는 중동 각국과 중동의 석유를 필요로 하는 서방세계는 미국의 역할에 협조하고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이번 사태로 미국에서는 군비를 대폭으로 줄이자는 주장이 약해졌고, 그에 따라 국방예산의 삭감을 반대하던 세력들이 어느 정도 마음을 놓게 되었다.

 

표면에 나타난 승자·패자가 실제론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이라크의 주변국 중 가장 득을 본 나라는 무론 이란이다. 이라크는 사우디전선에 군대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되자 이란과의 화해를 통하여 8년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점령해오던 이란의 영토를 반환하고 이라크군대를 그 지역에서 철수하였다. 과거의 서방 각국은 호메이니의 이란을 혐오하여 사담 후세인이 야심 많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이라크를 지원했던 것을 상기할 때 서방이 이라크에 대하여 강경하게 대응함으로써 이란이 덕을 보게 된 것은 흥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로서는 자기 나라 주변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위기를 환영하는 입장은 아니겠으나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어부지리도 적지는 않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아랍정상회의를 소집하여 그 세계에서의 지도력을 과시하였고, 이스라엘은 아랍세계의 분열이 자국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듯 실제의 승자와 패자는 표면에 나타나는 승자·패자와 동일하지가 않다. 또 단기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르는 판단도 장기적으로 틀린 것일 수 있다. 2차대전에서 패전한 일본과 독일이 요즈음은 당당히 승자로 부상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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