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현실, 가능의 예술이다
  • 박권상(주필)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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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이 무조건 뭉쳐야 한다느 소리가 높다. 실제로 어떤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강력한 통합야당을 원하고 있다. 얼마전 시사저널이 金大中평민당총재의 고향인 목포와 李基澤민주당총재의 선거구인 부산 해운대의 선거민 3백명씩을 대상으로 김·이 양씨의 ‘지역구 교체출마’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일이 있다. 야권통합의 당위론이 지역감정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현지조사였다.

 이 조사에서 두 지역 사람들은 당면한 공공문제에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컨대, 국회의원직 사퇴만 하더라도 해운대 사람들은 불과 25.3%가 잘했다는 반응이었고, 46%가 부정적이었다. 목포 사람들은 반대로 61%가 잘했다는 반응이고, 21.3%가 부정적이었다. “국회해산과 총선거 실시”라는 야당의 주장도 해운대 유권자들은 30.3%가 찬성하고 46%가 거부하였는데, 목포 유권자들은 62.3%가 찬성하고 16%가 반대하였다. 해운대 사람들은 대체로 민자당 노선을 지지하고 목포 사람들은 야당노선을 찬성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러나 ‘야권통합은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67.3%(해운대)와 85.3%(목포)로 압도적 다수가 이에 찬성하고 있다. 반드시 야당을 지지한다기보다, 강력한 거대여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야권통합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해운대에서 27.7%요, 목포에서조차 48.3%이며,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43.7%(해운대)와 23.7%(목포)로 비관론 역시 해운대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본론인 ‘김대중·이기택 양총재의 지역구 교체출마’에 대한 지지도는 목포에서의 이씨 지지가 68.7%인데 반해 해운대에서의 김씨 지지는 26.5%에 불과하다. 매우 의미 심장한 시사라고 볼 수 있다.

 

‘말의 盛?’뿐인 야권 통합

 결국, 야권통합은 좀처럼 거역할 수 없는 대의명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부산 사람에게 있어 야권통합은 원내세력에 있어 70대8로 우세한 평민당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민주당이 평민당에 흡수될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이 사전에 해소되어야 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7·14날치기파동 전후해서 국회의원직을 내던지는 데 선수를 친 것은 민주당측이었다. 이어 평민당이 뒤질세라 ‘사퇴정국’에 가세하였다. 날치기파동 며칠 후 김·이 양총재와 재야 통합추진회의 김관석목사는 “단시일내 범야신당의 결성”을 선언하였고 15인통합기구를 발족시켜 9월10일의 정기국회 이전에 통합신당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국민적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이 다짐한 ‘범민주세력의 통합수권정당’의 창출은 한달이 넘도록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였다. 이른바 “先합당등록 後체제정비론”(평민)과 “先체제정비 後합당등록론”(민주) 등 방법론을 놓고 15인통합위가 입씨름만 거듭하고 있어 날치기파동 직후의 그 뜨겁던 열기는 간 데 없고 오직 첨예한 당리당략의 대립으로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고 있다. 한때, “경상도에서 배신자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통합을 하겠다”는 이기택총재의 비장한 결의 표시와 “당대표에 이기택총재를 추대할 용의도 있다”는 김대중총재의 충격적 발언도 있었다. 그러나 숱한 말의 盛?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야권통합이 성사될 수 있을는지는 의심스러운 현실이다.


 특히 민주당 안에서 통합반대 내지 통합지연을 주장하는 세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고 김대중총재의 퇴진을 고집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면서까지 합당하겠다는 평민당 사람이 얼마나 있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다’는 특정한 주의주장이나 원리원칙의 차이 때문에 통합야당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어느 파가 당권을 쥐느냐의 싸움, 거기에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가미되어 통합야당의 출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유기적 연합전선 구축으로 효과적인 대여투쟁 전개해야

 이런 상황에서 여론의 채찍질에 쫓겨 무리하게 통합을 서두르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당사자들은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졸속하게 억지로 물리적인 조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화학적인 용해로 발전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겠으나, 과거 민주당의 新?파 싸움이나 신민당의 양김씨 싸움과 같이 돈과 시간과 힘의 대부분을 당내 계파 싸움으로 낭비하는 그런 ‘통합야당’의 반복이라면, 그것이 바람직스러운 것인지 역시 국민적 차원에서 심사숙고할 일이 아니겠는가. 수권정당으로 강력한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는 커녕, 그들한테 ‘분할·통제’받는 공작·희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물론, ‘범민주세력의 통합수권정당’이라는 이상은 결코 버릴 수 없는, 버려서는 안되는 대의명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는 야당 지도자들 스스로 자문자답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들 스스로의 당파적 이해 때문에 어렵다는 답을 얻는다면 최선 대신 차선을 택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선 유기적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공동지도기구를 두어 효과적인 대여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유대와 투쟁이 축적되고 동지애가 싹트고 이해관계가 조절되면서 특히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절박한 시기에 통합의 조건이 무르익어 별 무리없이 통합으로 골인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최선’이 안되면 늘 ‘차선’을 고려해야 한다. 공연히 비현실적인 ‘신기루’를 국민 앞에 그려 놓고 얼마 안가 국민을 실망시키는 惡手는 삼가야 한다. 정치란 역시 기능의 예술이요 차선의 예술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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