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진화론을 극복한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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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백주년 / 문명사적 전환 · 지자제 시대 ‘대안의 사상’

동학혁명 백주년 기념 행사들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동학사상과 동학혁명(갑오농민전쟁, 1894년 농민전쟁, 동학농민전쟁 등 그 명칭이 아직 통일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편의상 동학혁명이라고 통칭한다)의 연관성, 동학혁명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는 각종 학술대화가 잇따랐고, 연극을 비롯해 창극 · 전시회, 그리고 농민군 재현 같은 문화 행사도 이어졌다.
  언론과 학술단체에서는 동학 전적지 기행을 펼쳤고 새로 발굴한 동학혁명 관련 자료들이 공개되었으며, 서점에는 동학사상과 동학혁명을 재조명하는 학술 서적들이 진열되었다(43쪽 도서 목록 참조).

  올해 들어 펼처진 다양한 기념 행사의 반향은 적지 않다. 역사학자 이이화씨(역사문제연구소장)는 무엇보다 먼저 이번 기념 행사들이 순수하게 민간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값지다고 평가했다. 이씨에 따르면, 동학혁명은 지난 백년 동안 한 번도 ‘정식 대접’을 받지 못했다.

“동학혁명 복권” 공감대 형성
  동학혁명 백주년을 맞아 <동학혁명의 문화사적 의의> (<문학과 사회> 94년 봄호)라는 장문의 논문을 발표한 박맹수 교수(원불교 영산대학)는 “기념 행사들을 통해 민족사적 · 민중사적 관점에서 동학혁명을 제 위치로 복권하려는 움직임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한다. 박교수는 특히 “올들어 열린 각종 학술 대회가 기왕의 도식적인 연구에서 벗어나 동학혁명 당시의 성과와 한계를 실증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으며 지역 사례들을 활발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눈에 띄었다”고 학계의 새로운 경향을 읽어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동학에서 생명사상을 발견해 생명운동을 펼치는 시인 김지하씨(10월 11일 환경운동 · 시민 단체들과 함께 ‘생명민회’를 출범시켰다)는 “기념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념은 자칫 사실을 박제화할 우려가 있다. 기념이 아니라 생활 속에 육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의 이같은 비판에는 동학혁명이라는 ‘사건’에만 주목하는 학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김진석 교수(인하대 · 철학 · <그물코> 편집위원)도 같은 맥락에서 동학혁명 연구의 문제점을 짚어낸다(47쪽 기사 참조). 김교수는 동학혁명이 결코 1회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동학을 1894년이라는 연대기에 묶어놓으면 동학사상이 지닌 현재성 · 미래성을 놓치고 만다는 것이다. 동학혁명을 사상사 · 문화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다고 말하는 박맹수 교수는, 동학혁명 연구가 편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박교수는 이른바 운동권 진영에서 운동 이념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1894년의 봉기를 중심으로 동학혁명에 접근하는 자세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시기 · 주제 · 쟁점 별로 연구 성과를 개관하는 논문만 해도 여러 편이 나와 있으리만큼 지금까지 학계에 제출된 동학에 관한 연구 분량은 방대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동학혁명의 성격, 동학사상과 혁명과의 관계를 비롯한 주제들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동학을 접두어로 쓰느냐, 갑오라는 간지를 내세우느냐, 아니면 1894년이라고 표기할 것이냐를 두고 학계에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동학사상과의 연계성을 인정하는 쪽에서는 ‘동학농민전쟁’ ‘동학혁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전쟁이냐 혁명이나 또는 봉기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갈린다. 동학과 동학혁명(전쟁)과의 관련이 희박하다는 입장은 명칭에서 동학을 배제한다. ‘갑오농민전쟁’ ‘1894년 농민혁명’ (전쟁) 등이 그 예이다. 명칭에 따라 동학혁명의 성격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학계가 동학혁명의 성격에 ‘합의’를 보지 못해 왔으므로, 그간의 학술적 접근이 시기 · 주제 별로 많은 편차를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박맹수 교수의 위 논문에 따르면, 동학혁명이 발발했을 당시, 동학은 지배층과 재야 유생들로부터 ‘반상 윤리를 깨뜨리는 비도들의 반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학자들까지 동학을 바로 보지 않았다. <독립신문>은 물론이고 신소설을 쓴 지식인들도 동학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광복 이후부터 70년에 이르는 동안의 동학연구에서는 동학사상이 지닌 진보성 · 근대성 · 혁명성이 과대 평가되기도 했다. 안병욱 교수는 논문 <갑오농민전쟁의 성격과 연구 현황>에서 ‘50년대까지는 식민주의 사학 아래서 자행된 왜곡과 그 왜곡을 바로 잡으려는 연구가 진행되었고, 60,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군사 정권에 의해 근대화와 그 이데올로기로서 의미를 지닌 민족 주체성과 일정한 연계성을 갖는 연구 활동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지적했다.

일본 · 중국 · 북한도 연구 활발
  동학과 동학혁명과의 관련성을 캐내는 데에 집중됐던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들어와 동학혁명 연구는 새로운 시각과 자료 발굴에 의해 연구가 활성화했다. “80년대 이후 연구는 크게 동학혁명의 성격 문제, 동학혁명의 주도 · 주체 세력문제, 동학혁명의 사회경제적 지향 문제, 동학혁명 좌절 후 동학 농민들의 동향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박맹수 교수는 구분했다.

  동학혁명은 일본 · 중국 · 북한 학계에서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일보에서는 <조선의 유사 종교> (무리야마 지준) <근대조선사> (기쿠지) <근대 日? 관계의 연구> (다보하시) <교조 최제우에 있어서 동학 사상의 역사적 전개> (이시이)와 같은 연구서들이 30년대에 간행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동학 연구는 ‘동학’이라는 시각으로 일관돼 있다. 광복 이후 일본에서는 박경식 · 강재언과 같은 교포 학자를 중심으로 이전의 일본 학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동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9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동학혁명 백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김경진 교수(중국 북경중앙민족대학)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 학계에서는 동학혁명을 ‘봉건 통치를 반대하는 투쟁’ ‘반봉건 · 반침략의 이중성을 띤 운동’ ‘반식민지 · 반봉건 민족해방운동’ 등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봉건 통치와 외래 침략을 반대하여 벌어진 대규모 농민전쟁’(갑오농민전쟁)이라고 동학혁명을 규정하면서 ‘그후(1895) 시기 조선 인민의 자주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크게 고무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전쟁’이라고 본다.

  동학 연구는 기성 학계 밖에서도 지지하게 이루어졌다. 박교수는 “80년대 들어와 동학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김지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서 김지하 시인의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같은 저작물을 통해 동학사상은 생명사상으로 발전되었고, 나아가 민족 · 민중 운동 진영 사이에서 되살아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김지하 시인, 동학 연구의 경향 비판
  동학을 사상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그것을 ‘대안의 새 사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온 김지하 시인은, 학계의 연구가 아직 동학사상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동학사상이 제시하는 문명사의 대전환 문제, 동학사상과 지방자치 시대와의 연관성 등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지하씨가 보기에 동학사상의 핵심은 ‘시천주’로 요약되는 생명 사상에 있다(44~45쪽 딸린 기사 참조). 동학사상이 경제 가치에서 생명 가치로, 국민 국가에서주민 자치 시대로 넘어가는 문명사의 대전환을 견인하는 대안의 세계관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기씨는 자주 강조해 왔다(<옹치격> <동학 이야기> 참조).

  <동학 농민혁명과 사호변동>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엮음)의 마지막 부부에 실린 연구자들의 대형 토론회는 앞으로 동학 연구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박명규 교수(전북대 · 사회학)는 그간 학계는 동학의 역할과 비중을 다소 낮게 보아왔다고 밝히면서 “동학 농민혁명은 전북 지역에서만 일어난 지역 사건이 아니고 한국 사회 전체의 사건이고 프랑스 혁명과도 비교사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세계사적으로도 검토할 수 있는 주요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박맹수 교수는 동학을 혁명사상적 측면과 종교사상적 측면으로 지나치게 이분화하거나, 한 측면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온전한 이해 태도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박교수는 “동학사상을 동양사상의 기반 위에서, 그리고 조선사상사가 내재적으로 발전해온 맥락에서 조선 민중이 자기 주체를 확립해 가는 사상으로서 재정립하는 방법론적 반성이 절실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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