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입성 실패한 ‘후계자’의 반란
  • 김당 기자 ()
  • 승인 199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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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민후계자대회 ‘차별’에 분노…농수산장관에 욕설 세례

 “한강을 건너면 똥이 갑자기 발효해 온 서울천지에 냄새라도 진동하는 겁니까?” 제2회 전국농어민후계자대회를 사흘 앞둔 지난 8월17일 오후 전국농어민후계자중앙협의회(회장 李京海, 서울 서초구 반포1동 747-13)에서는 초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당국을 성토하는 말들이 오갔다. 그날 국민체육진흥공단 漕艇湖관리국 책임자 명의로 된 ‘행사장소 대여에 대한 방침통고’ 문서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 ‘불가’통고문에 따르면 후계자협의회가 하남시 미사리의 한강조정경기장에서 열기로 한 대회는 ‘오·폐수 처리에 관한 환경처 및 행정관서의 보장 불가’와 ‘분뇨처리 불가’ 두가지 이유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행 법규상 하남시에서 나온 분뇨는 서울시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회를 치르게 되면 수만명의 후계자들과 대회 참가자들이 미사리에서 대·소변을 볼 터인데 하남시는 그것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선별 지원하면서 ‘새끼 호랑이’ 키운 셈

 그 ‘같잖은 분뇨핑계’를 구실로 대회를 사흘 앞두고 불가 통보를 받은 대회준비위 관계자들은 분뇨 때문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뇨가 고사에 나오는 귤입니까, 한강이 회수(淮水)입니까? 인분이 쌀입니까, 경기미라도 됩니까? 제물에 제밥이라고 인분이 한강을 건넌다고 밥맛이 달아납니까.”

 “지난해에도 걸스카우트 대원 7천여명이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야영한 바 있고 올해도 후계자대회가 열리기 불과 며칠전에 침례교세계대회 ‘1만인 침례식’에 참가한 침례교인들이 미사리에서 몸을 담갔어요. 결국 농민을 똥만도 못하게 여긴 겁니다”

 그러나 이같은 성토와 분노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는’ 후계자들은 8월18일 오후 7시 비상대책회의에서 장소변경을 결의, 충남 천원군 성환읍 국립종축장에서 8월20일부터 대회를 열기로 확정했다. 지난해 8월 전북 무주 구천동에서 열린 제1회 후계자대회에서 2회대회는 서울서 열기로 뜻을 모은 결의사항을 바탕으로 추진된 ‘서울대회’는 끝내 당국의 ‘서울 입성 불허’방침으로 ‘외양간대회’로 바뀌었다. 후계자협의회는 대회준비위(집행위원장 권순노)를 구성, 서울 여의도광장 및 고수부지에서 대회를 열기로 지난 6월1일 결정했으나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다. 농림수산부 서울시 민자당 등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대회 예정지가 잠실고수부지·보라매공원·미사리 조정경기장 등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이경해 회장은 “그러나 어찌 되었건 지난 8월7일 민자당 박준병 사무총장과 농림수산부 농산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회준비위측과의 협의에서 미사리대회 지원을 약속하고 이를 당론으로 확정했음을 통보해주기까지 했는데 관련부처가 겉으로는 ‘똥핑계’를 댔지만 실제로는 시위가 예상된다는 경찰의 첩보에 근거해 막판에 장소사용을 불허한 것은 당국이 당초부터 대회를 무산시킬 복안을 예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노는 끝내 성난 ‘후계자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8월20일 오후 8시께 국립종축원에서 농어민후계자들과 가족 등 1만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개막식에서 姜普性 농림수산부장관이 축사를 하려고 연단 앞으로 나오는 순간 응어리진 분노가 폭발했다. 후계자들은“장관은 내려가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포기하라” 등 구호와 함께 욕설과 야유를 퍼붓더니 급기야는 빈깡통과 쓰레기를 집어던졌다. 비서가 우산을 방패막이로 삼아 막는 가운데 짤막하게 축사를 끝낸 강장관은 비가 내려 질척거리는 흙탕길로 쫓기듯이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대토론회에서 金成勳교수(중앙대 산업경제학)는 ‘농어촌은 뿌리, 도시는 꽃’이라는 주제발표에서 “그 뿌리를 지탱하고 줄기를 세워 잎과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주역은 역시 농어민후계자가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으나 배수도 안되는 뻘밭의 ‘가축 우리’에서 비 맞은 장닭처럼 쭈그리고 앉아 토론회를 지켜보는 후계자들의 후줄근한 모습은 ‘주역’과는 동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지난 81년부터 선발하기 시작해 89년말 현재 4만5천4백44명에 이른다는 농어민 후계자들은 그동안 선별적 자금지원을 미끼로 전국 자연부락마다 한명꼴로 심어 놓은 정권의 ‘끄나불’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서 볼 때 정부는 ‘호랑이 새끼’를 키웠던 셈이다. 그 호랑이 새끼들은 9월7일로 예정된 또다른 ’농민궐기‘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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