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인정이 통일 첫걸음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9.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년전, 이른바 7·4공동성명은 비단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이루어진 듯한 분위기였다. 독일에서는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서로가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므로써 동서독간의 막혔던 관계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던 때였다. 소위 ‘一民族 二國家’이론이 주효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통일을 부인한 것이고 ‘분단의 고착’이었다. 그러나 비록 분단의 고착이었지만 상대방의 존재를 현실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므로써 상호교류의 문을 열게 된 것이고, 경제·사회·문학적 교류를 근20년간 진행하는 가운데, 문화·사회적으로 서서히 통일이 이루어지다가 국제적인 조건이 성숙되자 재빨리 통일로 골인한 것이다.

 동독 사람들은 밤낮으로 안방에서 서독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열살된 동독 소년이 18년간이나 서독 텔레비전을 계속 보며 자랐다고 생각해보라. 그들에게 있어서 서독의 생활양식은 결코 낯선 것이 될 수 없다. 연간 5백만 이상의 서독 사람들이 총인구 1천7백만의 동독을 방문했다. 서로 전화통화가 가능하고 편지왕래가 자유롭고, 거기에다 동독의 상품이 관세장벽없이 서독으로 수출되었다. 이미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통일이 무르익고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로 말미암아 공산주의 자체가 싱겁게 무너졌고, 때를 같이하여 동독 공산권에서 공산주의의 너울이 벗겨졌다.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공존 원칙에 합의해야

 우리의 경우, 상황은 결코 동일하지 않았다. 접근방법도 전혀 달랐다. 7·4공동성명으로 남북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통일’에 합의하였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이루어질 것 같은 신기루 속에 너나할 것 없이 넋을 잃었다. 그것은 속임수였다. 정권당국에 통일의지가 전무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있을 수 없는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쇼’에 불과하였다.

 南으로서는 ‘유신독재’로 가는 수단에 불과했다.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데 국력을 조직, 극대화하여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가운데 朴正熙대통령은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열였다. 北에서는 역시 이른바 ‘사회주의헌법’을 채택, 金日成수상이 하루아침에 ‘주석’이 되어 ‘유일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들로서는 미군을 몰아내고 힘으로써 다시 한번 밀어붙이자는 속셈이었다. 공산통일을 기하려는 전술로 7·4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이다. 70년대 들어서서 터널을 파고 군비를 대폭 증강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결국, 얼마 안가 7·4공동성명은 쓸모없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고, 남북의 대결구조는 ‘한결 더 견고한 것’이 되었다.

 이제, 다시 한번 남북의 고위당국자들이 만났다. 이번에는 각각 두 정부를 대표하는 공식모임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리들이 공식으로 공개리에 만난 것이다. 7·4공동성명이 나오기 전과 같은 비밀접촉이 아니다. 그점에서 크게 진전된 남북회담이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국제환경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왔다. 동서냉전구조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고, 따라서 이제 동서냉전의 전초기지로서의 남북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북의 경우, 후원국인 소련과 중국이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진심으로 원하고 촉구하고, 유무형의 압력까지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7·4공동성명 당시의 일종의 ‘사기극’이 반복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내외 조건이 7·4공동성명 당시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성패는 남북이 상대방의 존재를 대담하게 인정하고 그러므로써 평화공존의 원칙에 뜻을 같이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인도주의적인 조치에서라도 진일보하는 회담되었으면

 이제, 이렇듯 우둔하고 소모적인 대결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 세계 대세가 그렇고 역사의 흐름이 그렇고 국민 모두의 뜻이 그렇다. 우선 대담하게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사이 좋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그러므로써 분단이 가져온 고통을 더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만일, ‘통일은 단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민족의 지상과제’라고 서둔다면, 그 결과는 어찌 될 것인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무조건 굴복하지 않고서 당장에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어느 한쪽이 비평화적 수법으로, 가령 전쟁이나 혁명으로 다른 한쪽을 흡수할 수밖에는 없다.

 북한은 1950년 6월25일, 무력으로 ‘민족의 지상과제’를 풀려고 시도하였다.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결국, 통일은 고사하고 국토를 폐허로 만들고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갔으며, 분단만 심화시켰고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분단고착’을 가져왔을 뿐이다. 아무리 통일이 지상과제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서로 희생이 없는 평화적인 것이어야 하고, 모든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민주적인 것이어야 한다.

 지금 화해와 공존의 물결이 大河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다. 45년간 굳었던 동서냉전의 벽이 도처에서 무너지고 있다. 오직 한반도에서만 이데올로기의 두터운 장벽을 헐지 못하고 있어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서울회담을 7천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고 세계의 눈초리가 주시하고 있다. 더 이상 동족끼리 수십만 대군을 대치시키는 전시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더없는 수치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이번 모임을 계기로 무엇인가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고 싶다. 지극히 작은 일, 가령 이산가족끼리 생사여부를 확인하는 정도의 인도주의적인 조치에서라도 진일보했으면 좋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