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분위기’로 살려야 한다.
  • 엄도명 (엄도명투자경제연구소장) ()
  • 승인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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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6일 우리 증시의 마지노선이라고 믿어져왔던 종합주가지수 6백선이 맥없이 무너지자 모든 투자자들은 경악했다. 이로부터 증시는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종합주가 6백은 지난해 4월의 최고가에 비해 40%가 하락한 선이지만 대부분 종목의 주가가 반동강이 났음을 의미한다.

증시의 장기침체요인은 표면적으로는 경기하강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수급문제가 더 근원적인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증권당국에서 그동안 주식시장에 지나치게 물량을 많이 공급한 후유증이 오늘날까지 증시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와서는 일반 투자자들이 집단적으로 시장을 떠나고 있다. 88년 올림픽 이후 종합주가가 급등할 때 주식시장으로 벌떼처럼 몰려들었던 대중 투자자들이 투자에 큰 실패를 보고 주가하락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88년 이후 주가급등기에 시장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라 적잖은 실패를 본 것이다.

그중에서도 신용이나 미수금으로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의 손실규모는 더욱 크고, 이들이 기한이 되어도 대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어 이 미수금 · 미상환융자금이 증시의 큰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

주가는 공급이 많아도 수요만 많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실명제 파동으로 증시의 큰손들이 모두 흩어져버렸는데 곧이어 사정활동이 강화되자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큰손들마저 후속적으로 시장을 떠나게 되었다. 주식시장에 장기간 매수부재상태가 지속되어온 것이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중동사태마저 야기되어 투자자들의 투매양상이 속출해 6백붕괴로 치달았었다.

 

증시침체 정확한 원인진단 필요

주가가 계속 떨어지자 증권당국은 유· 무상 증자나 신규공개 등 모든 물량공급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의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의 길이 막히고 있는 것이다. 최대의 산업자금 경로인 증시가 이처럼 자금조달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투자자들의 막대한 투자손실은 사회적으로 큰 불만세력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하락하는 주가를 저지하고 자본시장 본래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 지난해 연말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주식시장은 더욱 기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심지어 지난 ‘12· 12 조치’ 때에는 중앙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해 3조원 가까운 자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했지만 쏟아지는 매물을 조정하지 못해 결국 손을 빼버리고 말았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증시부양책을 썼던 정부당국의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는 증시가 침체한 진정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자의 병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면 병을 고칠 수가 없다.

 

지상· 지하자금 마음대로 드나들어야

본래 주식시장에는 투기성향이 항상 깔려 있게 마련이다. 수많은 투자자들은 한몫 단단히 잡으려는 다분히 투기적인 심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불확실성에 거는 이 투자자들의 기대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조화되어 발전해가는 데 매력이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처럼 초기단계에 있는 경우 투기적인 색채가 더욱 강하게 마련이다.

증시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학계에서는 이같은 투기적 요소를 불건전한 것이라 해서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이때문에 86년에서 89년에 이르는 주가급등시기에 투기수요를 죽이기 위해 무제한으로 물량을 공급했던 것인데 이는 오늘의 증시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12· 12 조치’만 하더라도 실명제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주식시장에 대량의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에 투기수요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대한 큰손자금들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에는 사정활동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큰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여서 액면분할이나 그밖의 제도적인 보완책을 내놓아도 주가는 계속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대한 지하경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주식시장도 지하경제 자금의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주식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상자금이든 지하자금이든 마음대로 주식시장에 들어와 활동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시장분위기가 먼저 조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하자금은 대개 투기적 수요에 의해서 민감하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조심성이 강한 성질을 띠기 때문에 사정활동이 지속되거나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혀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거대한 지하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여 기업의 자금조달을 원활히 하고 증시에서 시중자금을 흡수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려고 한다면 사정활동을 빨리 마무리짓고 긴장된 사회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일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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