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관련 韓美 이견없다”
  • 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2.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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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玉 외무부장관

남북한의 역사적 합의서 채택이 국제적 환경의 변화 덕택인가 아니면 순전히 남북한의 태도변화 덕택인가를 뚜렷하게 구분짓기는 힘들다. 어쨌든 이 합의서 채택으로 92년 벽두부터 더욱 바빠지게 된 부처 가운데 하나가 외무부다. 합의서 내용의 실현을 위한 분위기 조성은 전적으로 외무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92년《시사저널》 첫 인터뷰석에 李相玉 외무부장관을 앉혔다.

남북한 합의서 채택에 따른 인터뷰가 아닌 신년 인터뷰 명목으로 만난 이 외교사령관으로부터 부시 대통령 방한(1월5~7일)으로 바쁘게 시작될 새해의 외교과제를 들어본다.
이장관은 34년 안동 출생으로 57년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관생활을 시작한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총리회담에서의 합의서 채택, 또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92년의 한국외교는 본격적인 전환기에 돌입했다고 봅니다. 새해 한국외교의 과제를 요약해주십시오.
새해의 외교는 한반도에 평과구조를 정착시키고 남북관계를 보다 정상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남북 화해와 궁극적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 핵문제의 조기 해결이 관건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정부수립 43년만에 실현된 유엔가입을 계기로 유엔과 여타 국제기구 등 다자 외교분야에서 보다 능동적인 외교를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지난해에는 한국 · 아세안간의 전면대화 관계 수립과 확대 외상회의 참가, 제3차 아시아태평양경제위원회(APEC) 각료회의 서울 개최 등 태평양 외교에도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올해에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태평양 외교에도 더욱 힘을 기울여나갈 생각입니다.

특히 지난번에 채택된 합의서의 실현을 위해 외무부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됩니까?
이번 합의서 내용 중에는 우리 외무부와 직 ·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내용이 많이 있으며, 또한 합의서 발효 후 구성키로 되어 있는 3개 분과위원회와 남북연락사무소, 군사공동위원회, 경제교류 · 협력공동위원회 등에도 참여함으로써 합의서 내용 중 외무부와 관련된 사항의 원활한 이행과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외무부 내의 남북관계 담당부서인 외교정책기획실을 중심으로 지원체제도 강화해나갈 생각입니다.

총리회담 이후 핵문제로 한 · 미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핵문제에 관한 미국의 불만을 어떤 방법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한 · 미간에는 북한의 핵문제가 우리 안보에 대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공통 인식하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와 외교적 협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하여 한 · 미간에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서 추진해나간다는 기본 입장에 따라 정부는 미국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왔습니다.

지난 12월17일 솔라즈 의원이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방문이 핵문제와 북한 · 미국 관계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십니까?
솔라즈 의원은 북한측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 협정을 체결하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을 받을 것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12월17일에서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솔라즈 의원이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미의회의 강력한 분위기를 직접 전달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핵문제에 대한 미국 조야의 입장을 좀더 분명하게 인식케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동북아 안보질서의 변화에 따라 한 · 미 안보외교도 수정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최근 남북한 합의서 채택에 따라 한반도에서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개선에 기틀이 마련됐으나 구체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고, 특히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등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는 아직 불안정 요인이 상존하고 있으므로 지역 안보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판단하기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우리의 대미 안보외교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을 방지하고 우리의 국가목표인 통일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통일조국의 안정된 안보환경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두고 추진해왔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대미 안보외교의 기본방향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 중국으로부터 북한 입장에 대한 정보를 받고 있습니까? 또 정기적인 의견교환의 통로를 갖고 있습니까?
중국도 경제발전을 위해 지역정세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북한의 핵개발이 지역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중대성을 감안, 우리의 관심을 중국측에 전하고 있으며 중국이 유엔가입 문제에 있어 보여준 바와 같은 건설적인 역할을 핵문제에서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미국이나 일본 등 우방의 대북수교도 지지하는 입장입니까?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개혁 · 개방과 화해 · 협조를 향한 세계적 조류를 외면함으로써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므로 북한이 미 · 일 등 우리 우방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일은 북한 자신의 태도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들어 북한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응하였고 지난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 합의서에 서명하여 남북한 관계 진전의 물꼬가 트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합의서 서명만으로 남북한간의 대화에 의미있는 진전이 이룩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북한이 조속한 시일 내에 핵비확산 조약상 의무를 이행하고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 이는 한반도 신뢰구축과 평화정착을 위한 북한의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남북한 관계의 의미있는 진전을 기할 수 있으며 또한 미 · 일을 비롯한 우리 우방국들과의 관계개선에 큰 장애가 되어온 부문이 해소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합의서 채택에 따라 이제 정상회담이라는 정치적 결정만 남았습니다. 북방외교는 졸업한 것으로 봐도 좋습니까?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평화통일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6공화국 출범 이래 본격적으로 추진되어온 북방외교의 결과, 우리나라는 89년 헝가리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90년 소련, 91년 알바니아 및 발트 3국과 수교함으로써 2년여만에 11개 동유럽 국가와 수교를 하게 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90년 3월 몽골과 수교하고, 91년 1월 중국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한 바 있습니다. 또한 91년 9월의 남북한 유엔가입은 북방외교가 이룬 구체적 성과의 하나입니다. 한 · 중 수교가 북방외교의 남은 중요한 과제로 되어 있으나, 한 · 중 양국간의 실질관계 발전에 따라 수교도 멀지 않아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 시기를 언제로 잡고 있습니까?
시기를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그간에 꾸준히 확대되어온 한 · 중간 실질 협력관계와 錢其琛 외교부장의 방한 및 무역협정 체결 합의 등 일련의 양국관계 발전에 더하여 남북한의 화해가 이루어졌으니 멀지않은 장래에 한 · 중 관계정상화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은 상호불가침 원칙에 합의했고 또 앞으로 핵문제에 관해 남북한간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이의 보장을 위한 주변국의 협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반도 주변에 대한 다자안보체제를 구상중인 것으로 아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서명된 남북 사이의 합의서는 한반도 문제를 직접 당사자인 남북한간의 대화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도 남북한간의 제반 문제를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남북한간 협의를 통해 해결해나갈 것입니다. 다자간 안보협력 구상과 관련, 유럽 안보협력회의(CSCE)가 냉정 종식 및 유럽 평화구축에 기여해온 점을 감안해서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아시아 다자간 안보협력 기구의 구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태지역 국가들은 정치 · 문화 · 종교적으로 다양하며 유럽과는 달리 군사적 대칭성이 없고, 역내 국가간 상이한 안보(위협)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관계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데다 지역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이 문제를 다자적 안보협력의 틀 안에서 효과적으로 다룰 여건이 성숙돼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다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아태지역 다자 안보협력의 틀에 관해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역내 국가간 협의가 있을 경우 이에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

한반도 핵문제나 남북한 대화에서도 보듯이 우리 외교의 독자적 정책 일정이나 수행과정이 아직은 무척 좁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 시각 자체가 우리 한국이 커졌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봅니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더 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닌 국제정치면이나 경제무대의 주요 국가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종속이론으로 우리 외교를 보려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봅니다. 다만 오늘날 국제사회는 상호의존성이 중시되고 있기 때문에 자주외교와 국제협력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어떤 나라도 고립해서 살 수 는 없고 상호 의존하면서 서로 협력하고 협조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은 자주외교와 대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협력의 바탕 위에서 자주외교도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실례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걸프전쟁에 대한 대응이 그랬습니다. 당시 우리가 미국의 일방적 압력에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료단 파견이나 재정지원 등의 판단은 당시 안보리 결의가 있었는데다가 6·25 때 우리가 안보리 결의에 의한 유엔군의 도움을 받았고 또 국제적 위상이나 국력이 큰 만큼 응분의 기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인식과 도의적 책무를 기초로 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통일외교 정책의 구상과 실현에 있어 통일원과 외무부의 기본적 출발점이 다르지는 않습니까?
통일정책의 주무부서는 통일원입니다. 그러나 통일정책엔 양면성이 있습니다. 대내적 측면과 국제외교적 측면이 그것입니다. 통일 정책의 대내적 측면은 통일원이 주로 하지만 외교적 측면은 외무부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원이 수립한 종합적 통일정책을 외교면에서 지원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통일정책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지난 APEC 때도 상곡부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알다시피 큰 일을 하다보면 실무자선에서 업무협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오히려 이번 대회는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국내언론은 훨씬 낮은 채점을 해준 것 같았습니다. 국내언론에 사전 설명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성을 했습니다.

국제정세 변화와 국내정치와의 연관이 밀접한 현시점에서 국민들은 보다 더 자세하게 외교정책을 알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외무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여론입니다.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여론 수렴 방안은 무엇입니까?
외무부는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을 수렴하여 국민적 이해와 지지에 바탕을 둔 외교를 수행한다는 방침 아래 언론매체를 통한 외교정책 설명, 국내 여론지도층 인사에 대한‘외교문제 해설’등 외교정책 자료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강연회 · 학술회를 개최하고 지방자치시대에 대비하여 국민여론 수렴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습니다. 앞으로 외무부는 이러한 추진방법을 실효성있게 보강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여론 수렴활동을 추진해나가겠습니다.

12월27일로 장관에 취임한 지 1년이 됐습니다. 우리 입장을 국제무대에서 관철시켜나가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고 또 어느정도 실현됐다고 평가하십니까?
우리가 설정했던 외교목표가 91년에 80%는 성취됐다고 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대국으로 착각해서도 안되고 선진국 대열에 접근해가는 중진국 위치에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중진국이 강대국의 외교를 흉내내서는 안됩니다. 자기 위치를 인식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이익을 추구해나가야 합니다. 나는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에 선 중진국 위치에서 외교도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런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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