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中原의 ‘견원 동맹’
  • 안병찬 (편집인 · 주필) ()
  • 승인 1994.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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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군은 전쟁 때마다 독일한테 느꼈던 콤플렉스를 벗어나 새 구도 속에서 안주라혀는 프랑스 특유의 독자 노선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유럽 대륙에서는 예기치 못한 근본적 변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와 통일 독일이 추축국(樞軸國)을 이루고 유럽 중부에 진을 치고 있는 장면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2국 추축은 40여년 자리를 굳힌 동서 대립의 논리가 홀연히 사라지면서, 빈 자리를 메우는 질서 개편 작용이다. 2국 추축은 유럽군(유로코:EUROCORPS) 편성과 확장을 통해 현실화하고 잇다. 이러한 불 · 독 연합은 중세 십자군 전쟁 이래 처음 보는 일이다.

프랑스 식자들은 독일과 견원지간으로 싸워온 경험을 두고 이런 말을 곧잘 해왔다. “독일인들은 우리를 20년에 한번씩 두들겨 팼다.” 프러시아와의 보불전쟁과 1,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경험을 가리키는 이 말은, 오늘의 유럽 중원(中原)에서는 흘러간 노래 소리로 들리고 있다.

십자군 이후 첫 동맹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있는 스트라스부르크에 사령부를 세운 유럽군은 유럽 방어축 형성을 전략 목표로 삼았다. 다른 유럽 국가에 문을 열기로 결정한 뒤 벨기에 · 스페인 · 룩셈부르크가 가담하여 모두 다섯 나라 군대로 편성된 다국적군이다. 본래 프랑스 · 독일의 기선으로 시작된 유럽군을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유럽군을 만드는가 하는 반론이 있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 쪽은 유럽군이 유럽 대륙의 색깔과 독자적 소리를 내는 것이 달갑지 않은 듯 유럽군이 속빈 강정이라고 조소했다. 그렇지만 나토와는 조정과 조율이 이루어져, 나토군을 약화시키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유럽군의 임무를 규정한다는 내용의 협정이 작년 1월 두 기구 사령부 사이에 맺어진 바 있다.

유럽군 조직을 통한 정세 대변동은 프랑스 쪽에서 보자면 자기가 기선을 잡아 틀을 짜나가는 원대한 유럽 구상의 일환이 된다. 전쟁 때마다 독일한테 기선을 빼앗겼던 역사적 전쟁 콤플렉스를 벗어나 유럽 통합의 새로운 구도 속에 독일과 더불어 안주하면서 안도감을 느끼자는 프랑스 특유의 독자 노선을 표현한 것이다.

지난 7월14일,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에 파리 심장부를 행진한 독일군의 군화 소리와 탱크 굉음을 프랑스인들은 지금도 희한한 축제로 기억하고 있다. 군사 퍼레이드는 개선문을 출발해 샹젤리제 길 1㎞를 행진한 뒤 콩코르드 광장 이집트 방첨탑(오벨리스크)에 이르는 것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상황의 새로운 전개를 능동적으로 읽을 줄 안다. 자크 시라크 파리 시장의 국제문제 보좌관인 피에르 를루시 하원의원은 세번 전쟁을 치른 프랑스 · 독일 관계는 과거의 관계일 뿐, 프랑스 · 독일 사이에 평화가 없으면 유럽 평화도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독일군의 파리 개선문 행진에 대해서는 그는 이렇게 반응했다. “그날 나는 내 아들한테 창문 밖으로 독일 탱크가 굴러가는 장면을 일부러 보여 주었다.”

에두아루 발라뒤르 총리의 국제문제 자문인 베르나르 드 몽페랑은 역사적 변화에 따르는 프랑스 · 독일 관계야말로 통합 유럽의 ‘엔진’이라고 표현했다. “내 형제 둘도 독일군한테 죽었다. 2세기에 걸친 독일과의 싸움은 지났다.”

“우리는 역사를 쓰고 있다”
스트라스부르크는 프랑스와 독일 시가지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유럽 중원 도시다. 프러시아군의 점령을 소재로 한 프랑스 장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무대인 알사스 지방에 있는 이 국경 도시에 유럽군 사령부가 설치된 것은 깊이 계산한 결과였다. 프랑스가 작년부터 엘리트 양ㅇ성소인 파리국립행정학교(ENA)의 기능 일부를 이 도시로 이전한 의중도 유럽 중원을 향한 프랑스의 전략을 담은 것이다.

스트라스부르크 공한에서 유럽군 사령부까지 안내한 운전병 슈에그라프는 독일군이었다. 그에게 프랑스와 독일이 몇번이나 싸웠느냐고 묻자 되돌아오는 어조가 냉담했다. “나는 그 문제에 대답하지 않겠다. 그 일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 세대는 그런 과거지사는 알 필요가 없다.”

7년 전 프랑스와 독일 정상이 군사 협력 관계를 갖기로 합의하여 태동한 유럽군은 처음에는 프랑스 · 독일 여단으로 출발했다. 92년 5월 라로셀 정상회담에서 기본적 내용이 결정된 이래 지난 7월 유럽군은 기계화부대 배치 및 위기 대응, 인도적 작전 훈련을 했다.

반 스틴란트 대령은 거듭해서 유럽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는 역사를 쓰고 있다”는 말로 자기들의 임무를 표현했다. 또 유럽군 편성을 가리켜 ‘꿈의 군사조직’이라고 불렀다. 과연 프랑스와 독일을 축으로 한 유럽군은 구체적 실체로 자리잡아 가는 형세다. 내년 10월 유럽군이 공식 출범하면 그 병력은 5만8백명에 이르고, 특히 중형 탱크 보유 대수가 6백45대에 이르게 된다. 이 부분은 속빈 강정이라고 놀림을 받은 유럽군이 정색을 하고 반박하는 대목이다. 영국군은 중형 탱크가 없으며, 이만한 수는 프랑스군의 탱크와 맞먹는 수라는 말이다.

베를린 장벽 철거로 시작된 냉전 이후 시대에 유럽은 대전환을 하고 있다. 소련이 없어지자 미국은 포함외교와 군사 개업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초강대국 행세를 하고 초강대국의 이기성을 보인다. 갈피를 잡기 힘든 형세를 타고 프랑스와 통일 독일은 유럽 중심의 안보 논리와 정치 논리를 펴며 군사동맹을 실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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