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망컴퓨터시대’에 기술패권주의 찾아온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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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책상을 고를 때 퍼스널컴퓨터(PC)나 워드프로세서를 놓을 자리를 고려해서 널찍한 것을 선호한다. 이런 기기를 서재의 필수품으로 인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서재에서 종적을 감췄던 전화가 서재에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PC나 팩시밀리와 접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0일부터 한국통신은 ‘종합정보통신망(ISDN) 서비스’를 서울 대전 제주에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이 지역의 일반가입자는 서재에 있는 전화와 PC의 접속을 통하여 단순히 이 두 기기가 제공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맛보게 되었다. ㄱ씨가 ㄴ씨에게 전화를 건다고 하자. ㄴ씨의 PC 단말기에는 ㄱ씨의 전화번호가 표시된다. ㄱ씨는 단말기를 통하여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자료나 문서, 그림 등을 보낼 수 있다. 더욱이 이것들이 전송되는 속도는 일반PC보다 훨씬 빠르고 전화속도에 가깝다.

서재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무실의 풍속도까지 바꿔놓을 이런 ‘정보화혁명’은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가능해진다. 이 두 분야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반도체기술과 같은 정밀전자공학(Microelectronics)이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만큼 각 산업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컴퓨터나 통신기기에 있어서는 반도체의 쓰임새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90년대에는 한국에서 정밀전자공학이 만개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생물학적 의약품 등장, 정신병 불치병 치료
수만개의 진공관으로 구성된 집채만한 전자계산기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불과 한 세대 전이었다. 그러나 실리콘집적회로가 나타나 그 정도의 용량은 손톱만한 크기로 대체 되었다. 그 크기는 앞으로는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집적도를 높인다는 것은 한 전자회로 안에 소자나 배선을 가능한 한 많이 넣어서 기억용량을 높인다는 뜻이다. 1메가D램이 등장한 것은 86년무렵이었다. 90년대 말에는 그 용량의 1백배에 해당하는 1기가D램(1기가=1백메가)이 반도체 시장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그 수준에 이르게 되면 집적도를 높이는 것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 전혀 다른 차원의 전자회로가 필요하게 된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짐에 따라 퍼스널컴퓨터는 “책상(데스크탑)에서 무릎(랩탑)으로, 무릎에서 연습장(노트북)으로, 연습장에서 손바닥(팜탑)으로” 옮아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인공지능’분야가 더욱 더 각광을 받게 된다.

인공지능이란 사람과 같이 생각하는 능력을 컴퓨터에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여러가지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것을 학습한 결과로 컴퓨터가 스스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85년에 로봇이 그림맞추기를 해내 인공지능의 수준이 유치원생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한 바 있다. 아직 유치한 단계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지능은 실용화되고 있다. 이외에도 사람두뇌의 신경조직을 그대로 묘사하여 컴퓨터화한 ‘신경망컴퓨터’ 나 인간의 망각기능을 컴퓨터에 도입하여 불필요한 정보를 모두 잊어버리게 하는 ‘망각인공지능시스템’도 90년대에 각광받게 될 분야이다.

존 나이스비트가 ‘90년대의 과학’으로 꼽은 바 있는 생명공학(Biotechnology)은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에 들어서서야 본격적으로 실용화될 분야이다. 생명공학은 분야마다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선진국과 수년에서 수십년의 격차가 있다.

‘생명’과 ‘공학’이라는 안 어울리는 두 단어가 결합한 생명공학은 전통적으로 미생물을 이용해 음식물을 발효시키는 기술에서 시작되었다. 세계적으로는 40년대에 페니실리움이란 푸른곰팡이에서 항생물질의 원조인 페니실린을 양산하면서 기술혁신의 계기를 맞았으며 70년대에는 유전공학의 탄생으로 두번째 혁신의 계기를 맞았다. 한국에서는 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생명공학 가운데서 단기적으로 가장 빠르게 상품화되고 있는 분야는 보건의료이다. 럭키는 ‘감마’인터페론을 개발, 임상실험을 거쳐 제품허가를 받아냈다. 녹십자와 제일제당은 간염백신 ‘알파’인터페론을 개발해서 이미 상품화했다. 이밖에도 여러 회사가 간염 간암 임신 등의 진단시약을 시판하고 있다. 이런 상품들은 인체 내에서 조금씩 생산되는 여러 물질을 미생물이나 동 · 식물을 통해 유전자 조작으로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앞으로 멀지 않아 암이나 류머티즘 고혈압 같은 불치병과 AIDS와 같은 전염병, 노인성치매와 같은 정신병을 치료하는 ‘생물학적 의약품(바이오의약품)’이 등장할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몇몇 연구소 실험실에서는 이미 병충해와 벌레에 강한 내충성 토마토 담배 목화 옥수수 등이 재배되고 있다. 병충해를 일으키는 벌레가 먹으면 죽게 되는 미생물독소를 이런 작물의 유전자에 끼워넣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제초제에 강한 콩 옥수수 사탕무도 개발중이다.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적어도 97년까지 이런 작물이 완전히 실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작물들이 밭에 등장하는 날이면 농부들의 김매기가 사라지고 농약을 훨씬 적게 사용해도 된다.

대관령 농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인공씨감자와 같은 인공종자도 곧 실용화될 전망이다. 보통 감자는 잘라서 땅속에 파묻음으로써 종묘를 한다. 이렇게 하면 감자가 땅속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많은 수확량을 거둘 수 없다. 따라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씨감자를 공장에서 대량생산해서 심으면 보통감자보다 1백배 이상이나 되는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인공씨감자는 시험 농장재배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다른 작물의 인공종자 개발도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생명공학 기술로도 인간의 성별을 조절하거나 마음대로 쌍둥이를 임신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생명공학은 발전할수록 여러가지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대리모나 시험관 아기 문제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오르내리게 될 것이 틀림없다. 최근 일본 교토대학에서 벌였던 ‘침팬지인간’ 실험이라든가 프랑스에서 화제가 됐던 ‘남성임신’ 연구 같은 것에 반대하는 새로운 유형의 녹색운동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생명공학은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보여줄 것이다.

“한국 과학기술, 진행방향 알 수 없다”
비록 시장은 크지 않으나 모든 첨단산업에 핵심적 요소가 되는 신소재도 20세기 말을 빛낼 과학기술이다. 신소재란 새로운 특성과 기능을 가진 물질을 말한다.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초전도체가 대표적이다. 극히 낮은 온도에서 갑자기 저항이 사라져버린다든가, 다른 전기적 성질이 바뀌는 초전도현상은 이미 1910년부터 잘 알려졌다. 그런데 86년 이후부터는 보다 덜 낮은 온도에서 초전도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20세기 말까지 보통온도에서도 초전도현상을 일으키는 초전도체(상온초전도체)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상온초전도체가 만들어지면 저항과 같은 전기적 성질을 마음대로 조작, 레일 위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날아가는 자기부상열차 등을 실용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신소재가 인간의 활동영역을 더 먼 우주공간과 깊은 바닷속까지로 확대시킬 것이다.

과학기술의 다양한 가능성은 앞으로 ‘과학기술패권주의’의 도래를 예감하게 한다. 과거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국력을 좌지우지 했던 시대를 지나 과학기술 수준이 한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소립자의 비밀을 캐는 ‘초전도입자가속기사업’이나 유전자의 신비를 규명하는 ‘게놈프로젝트’와 같은 순수과학적인 연구에는 한국의 참여를 종용하면서도 ‘휴먼프런티어사이언스’와 같은 연구프로그램에는 한국의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사람의 두뇌와 유전정보, 생체분자 등을 해명하는 대규모 연구로서 이는 21세기의 첨단지식이 될 생명공학 분야이다. 기술선진 7개국에서는 이 연구를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기술 후진국의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과학기술패권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는 96년까지 모두 1조원의 ‘과학기술진흥기금’을 조성해 내년부터 추진키로 한 2백56메가D램 고화질텔레비전 전기자동차 등 14개 ‘핵심선도기술(G7과제)’ 개발에 집중 투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서인 과학기술처에서는 2000년까지 14개 분야가운데 2개 분야에서 많아야 4개 분야 정도가 성공하는 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직선이나 보통의 곡선과 달리 다음의 진행방향을 전혀 알 수 없는 변곡점에 우리의 과학기술이 서 있다’는 지적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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