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2002년의 대변혁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2.01.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전을 밝히는 신년 대기획 전문가 70인과 미래를 가본다

미래는 현재의 우리 앞에 항상 경이로 다가온다. 미래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의 구분도 없애버린다. 미래는 꿈이기 때문이다.

2000년. 늦었지만 우리도 이제 2000년을 꿈꾸기 시작해야 한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현재이며, 미래를 대비하는 최선책은 현재를 직시하는 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동시 다발적이며 가속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세계에서 변화를 측정할 절대적인 방법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는 모험은 더욱 우리를 흥분시킨다.

2002년의 주역은 통일 · 한글세대
《시사저널》은 1992년의 신년기획 첫번째 작업으로 ‘한국, 2002년의 대변혁’을 주제로 잡았다. 2002년을 이끌어갈 세대는 통일세대이고 순수한 한글세대이며 21세기 세대다. 지금 국민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성년이 되어 ‘코스모폴리탄’이 된다. 통일한국의 ‘팍스 코리아나’ 시대가 열리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지금 ‘선택’하고 ‘준비’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하루 빨리 취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과 준비를 위한 대전제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다. 더구나 2002년의 자화상과 그 자화상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분석이 ‘추상화’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21세기의 길목에 들어선 1992년 현재 반듯하고 또렷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한 교육 전문가는 유치원에서부터 중학교까지의 10년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첫 10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초의 10년 교육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2002년에야 끝난다. 21세기 세대는 이미 교육을 받기 시작한 셈이며, 향후 10년 후의 삶의 질은 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시사저널》 특별취재반은 1개월에 걸친 예비작업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날 대변혁의 조류를 각 분야별로 진단해 보았다. 분야별 연구기관이나 연구위원 학자 전문가 전문집단 등과 접촉, 직접 면담과 자료 입수의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한 결과 10개의 대주제를 정할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전화면담과 서신을 통한 개별 조사 방법도 병행했다. 통일한국 정치 경제 과학기술 환경 교육 생활양식 여성 가치관 국제정세의 10개 대주제가 정해진 후, 취재반은 각 항목별로 10명 안팎의 전문가를 직접 면담하는 형식으로 취재에 들어가는 한편 수치화된 각종 지표와 자료를 입수했다.

10개 대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배제된 분야도 있다.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른 노인문제 대두와 실버마케트의 일반화, 민족문화의 세계화, 첨단의술 발달에 의한 인공장기 개발과 수명연장, 포스트모더니즘의 미래, 한국정치에서의 군부의 장래, 도시와 농촌간 격차 심화, 스포츠와 레저 시대의 도래가 그것이다. 이 주제들도 향후 10년 동안 한국의 모습을 바꿀 만한 굵직굵직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각 추세가 다른 분야에 끼칠 영향력, 전문성과 대중성의 차이 등을 감안해 일부를 10개 대주제 속에 포함시키거나 제외시켰다.

말레이시아는 요즈음 ‘비전 2020’의 열기에 휩싸여 있다. 신문마다 2000년대 얘기를 헤드라인에 올리고, 마하티르 총리는 공사석을 막론하고 입을 열 때마다 “비전 2020”을 외쳐댄다. ‘비전 2020’은 이제 말레이시아에서 유행어가 되다시피했다.

‘비전 2020’은 앞으로 30년 후인 서기 2020년에 말레이시아를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키겠다는 취지 아래 국가 차원에서 기획한 장기전략 실현을 위한 구호다. 21세기에 맞도록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지시 및 기술을 축적하며 고도산업사회에 걸맞는 가치관과 윤리관을 심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리실 직속으로 ‘경제기획청’을 가동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安忠榮교수(중앙대 경제학과)가 책임자로 있는 ‘2000년대 말레이시아 공업화 종합개발계획’팀은 경제기획청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비전 2020’ 열기에 휩싸인 말레이시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로 개발도상국의 산업구조를 전공한 안교수는 말레이시아 총리실의 의뢰를 받아 말레이시아의 대학교수와 연구위원 7명, 행정관료 9명 외에 국제자문역인 중앙대 교수 2명 등 18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다. 그의 주 업무는 ‘비전 2020’ 계획의 일환인 공업화 부문에서 장기 종합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3.3배에 달하는 말레이시아는 산업기술면에서 우리보다 한수 아래인 나라다. 하지만 안교수는 말레이시아를 “2000년대에는 강국으로 부상할 잠재력을 지닌 나라”라고 평가한다.

지난 91년 8월말 우리나라 대통령 자문기관인 ‘21세기위원회’는 89년 발족 이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盧泰愚 대통령에게 중간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 제출 사실이 알려지자 행정 각 부처로부터 보고서 사본을 요청하는 주문이 쇄도했고, 21세기위원회는 2천부를 추가로 인쇄해 행정부처에 돌렸다. 이 위원회의 한 위원은 주문쇄도 현상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작업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21세기위원회의 활동과 말레이시아 ‘비전 2020’의 공통점은 국가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미래상을 설계하며, 그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점을 미리 점검해본다. 21세기위원회의 보고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관심은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며, 우리들의 주체적인 판단과 노력으로 이상적인 미래상을 선택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이미 지난 70년대에 30년 후인 21세기를 전망하는 각종 예비작업이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21세기위원회의 작업은 때늦은 감이 있다. 정부 주도라는 점에 대한 반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위원회가 보고서에서도 밝혔듯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 미래상을 ‘선택’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일본의 미래연구 전문가들이 너나할 것 없이 즐겨쓰는 말이 있다. ‘세계 속의 도쿄’라는 단어다. 앞으로는 일본의 도쿄가 세계의 도쿄가 되어 국제 네트워크의 중핵거점이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우리도 ‘세계 속의 서울’이라는 말을 쓰고 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양자의 차이가 너무나 명백한 것이 사실이다.

10개 분야의 변화상을 예측하고 그 과정을 진단하는 것은 결코 독립된 별개 사항이 아니다. 통일한국의 가능성과 국내(남한) 정치 상황을 따로 떼놓고 진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환태평양지역 정세의 흐름도 한반도 통일의 중대한 변수이며, 더 나아가 전세계적인 신질서 구축도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의식주와 생활양식도 과학기술의 진전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개인이나 사회의 가치관 역시 경제나 교육에서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미 대변혁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사실이며, 피부로 느끼지 못하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변혁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동용 취재카메라(ENG)를 메고 사건 현장을 누비는 방송국 기자의 취재 모습이 돋보인 때가 있었다. 기자가 어깨에 멘 비디오용 카메라가 일반인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때의 일이다. 이제 비디오용 카메라는 가정에까지 보급되었고 일반화돼버렸다. 불과 몇년 사이의 변화다. 이제는 이동용 취재카메라 대신 위성용 취재카메라(SNG)가 보도용으로 쓰이고 있다. 취재기자가 사건현장에 달려가 위성에 쏘아올리면 비디오용 카메라에 담긴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 그 위성을 통해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안방에 앉아 걸프전의 실황중계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변혁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영화관람의 형태도 바뀌었다. 영화관람은 일종의 사회활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영화는 이제 혼자서도 볼 수 있다. 사회활동이 개인활동으로 바뀐 단적인 사례다. 사회생활이 개인생활로 이미 대체되었거나 대체되어간다는 것은 집과 일터, 삶과 일의 구분이 퇴색되어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시행되고 있는 在宅근무와 시차별 출근제가 이미 입증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전노동인구의 11.5%가 자기 집에서 회사일 전체를 처리하거나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재택근무의 일반화는 교통체증과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과학과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기인한다. 21세기를 예측하고 추정하는 연구기관의 보고서나 미래학자의 저술 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없다. 미래 예측이 간혹 ‘꿈’이나 ‘환상’의 설계처럼 비쳐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학자는 과학기술시대의 변화를 세탁기와 레이저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세탁기는 수동작업을 자동화시킨다는 특정한 목적 때문에 만들어졌다. 사회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던 ‘세탁기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개발된 기술을 사회에 응용하는 ‘레이저 시대’다. 레이저 광선을 개발해놓은 다음에 어디에 쓸 것인가를 궁리한 끝에 이제는 의술과 쇼에서도 레이저 광선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정치나 교육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놓는가 하면, 기존의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어놓음으로써 20세기와 21세기의 간극을 산술적인 10년의 세월 이상으로 벌려 놓을 수도 있다. 정보화시대의 도래도 과학기술 발전의 필연적인 산물로 지적된다. 사회의 ‘신경조직’이랄 수 있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의 구축은 한 개인의 생활을 거의 완벽하게 뒤바꾸어놓는다.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 동시에 없어질 직업도 많다. 나보다 남이 나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질 수도 있고, 정보 공급자가 정보의 질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 결국 기술변동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기술결정주의’가 도전을 받게 될 날도 함께 다가오는 셈이다.

자동화 · 정보화 · 개인화 · 지구화
가치관의 변화야말로 21세기를 특징지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측 과제다.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하던 ‘매스컴’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개인접촉 시대의 총아 ‘텔레콤’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기존의 가치관은 설 자리를 잃는다. 전체보다는 부분, 보편보다는 특수가 부각됨으로써 개인 중심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더불어 개인의 공공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이미 막을 올린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10개 분야의 주제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조류는 자동화 · 정보화 · 개인화 그리고 지구화다. 이 네가지는 외국의 미래학자들이 진단하는 세계 대변혁의 조류와도 일치한다. 향후 10년내에 일어날 변화상을 예견하는 데는 과정과 결과의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통일 분야의 경우, 10년 후인 2002년에 한반도가 통일되거나 이미 통일되어 있을 것을 전제로 통일 한국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고, 통일까지의 과정에 비중을 둘 수도 있다. 각 분야별 기술에서 이 두가지 기준은 서로 얽힐 수밖에 없다. 특히 국제정세의 변화 등 변수가 산재한 통일 · 경제 · 정치 분야에서는 결과를 예측하기보다는 과정이 중요시된다.

교육이나 과학 · 환경은 정책결정과 집행의 주체에 따라 결정적으로 변혁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정부 주도냐 민간 주도냐에 따라 질이나 양의 측면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21세기위원회가 가동하는 ‘국가발전모델팀’은 소속 연구위원간에 다소 의견차가 있긴 하지만 현재 한국이 민간보다는 정부 주도의, 삶의 질보다는 성장 위주의 모델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제시한 바 있다.

외국의 이름있는 미래예측 연구기관의 활동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 미쓰비시 종합연구소의 마키노 노보루 회장은 《전예측-1990년대의 세계》에서 두뇌집단이 다루는 예측 주제의 3대 조건으로 미래지향 · 정책지향 · 전문영역별 협력을 지적했다. 미쓰비시 종합연구소는 20년 전에 설립된 민간 연구소로 1천여명의 박사급 연구원으로 구성된 일본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두뇌집단)이며, 모기업인 미쓰비시사와는 완전히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래학은 최소한 20~30년 단위의 변화상을 다룬다. 과거나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투사’, 이론적 가정에 기초한 ‘예언’, 예측자의 주관적 판단에 기초한 ‘추측’등이 미래예측의 방법으로 활용되는데, 학계 일부에서는 학문적인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미래학이라는 말에 대해 회의를 품기도 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나 나이스 비트, 허만 칸의 미래예측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런 풍토 때문이다. 일본의 미래예측 프로젝트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뉴미디어’란 말도 일본에서 태어난 신조어로 알려져 있다.

《시사저널》이 기획한 ‘한국, 2002년의 대변혁’ 특집은 미래학의 방법론을 바탕에 깔고 있기는 하지만 미래학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일부 분야에서는 10년 후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10년내에 일어날 변화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거나 정책 측면에 치중하기도 했다. 기획 단계와 기사 마무리 단계에는 2개월이라는 시차가 있었다. 그 2개월 동안에도 ‘변혁’은 계속되었다. 남북한간에 화해와 불가침 합의서가 채택됨으로써 통일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으며, 소연방의 해체와 독립국 공동체의 탄생은 ‘소련’이라는 단어 표기의 정확성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했다. 변화의 와중에서 또 다른 변화를 내다보는 일은 전문집단의 고유 영역에 속한다고 강변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시사저널》의 이번 작업은 적어도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의미를 가졌으면 한다.

21세기위원회는 서울 시내 14곳에 2000년 1월1일 기준으로 역산한 ‘2000년 시간표’ 전광판을 설치했다. 1992년 1월1일의 전광판에 쓰여진 글자는 ‘2000년까지 앞으로 2922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