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 기혼녀 취업 늘고 여성 지도자 진출 많아져
  • 여운연 기획특집부 차장 ()
  • 승인 199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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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등학교 2학년생인 ㅂ양이 오는 2002년에 어떤 숙녀로 변모할 지를 그려보자.

ㅂ양은 적어도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여성 비하의식을 거의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될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딸을 키우며 “여자이니까 이래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는 법이 없었다. 28세인 ㅂ양의 직업은 그 또래에게 유망직종인 건축기사. 자기 일에 흠뻑 빠진 ㅂ양은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도 별달리 결혼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물론 접근해오는 총각들은 많다. 그러나 ㅂ양의 심중은 직장생활과 가정과의 이중부담을 당분간 피하겠다는 것이다. ㅂ양의 부모도 굳이 딸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 독신에 대한 사회 인식도 달라져 혼자 사는 여자나 남자를 이상하게 보는 관념은 ‘골동품’적 발상으로 치부된다. 2천년대 여성의 삶은 출산과 육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영역의 제한 없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 영위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다.

사내아이를 더 원하는 뿌리깊은 풍조로 인해 2천년경에는 혼기에 달한 남성들의 결혼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ㅂ양의 경우 신부감 기근으로 애태우는 남자동료들에게 “독신으로 지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며 여유있게 충고를 들려줄는지 모른다.

신부감 부족해 배우자간 연령차 문제 안돼
지난 80년만 해도 20~24세 연령층의 경우 여자 1백명당 남자가 78.6명에 불과해서 80~90년대는 신부의 과다한 혼수비용이 큰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2천년에는 여자 1백명당 남자가 119.4명, 2010년엔 그 차이가 더욱 커져 1백명당 128.6명, 따라서 이제는 장가보내기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90년대까지는 남성에 비해 독신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였으나 10년후엔 38만명의 신랑감이, 20년 후엔 40만명의 남성들이 불가피하게 짝없이 혼자 살아야 할 상황이다. 그쯤되면 정치문화와 마찬가지로 결혼도 다원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남자의 결혼 적령기가 여자보다 3~5년 정도 높아야 한다는 통념이 이미 80년대말부터 서서히 변화하면서 연령차는 더 이상 결혼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연하의 신랑을 맞아들이는 경우도 보편적 추세가 된다.

또한 성윤리도 달라진다. 인구변화보다도 기존의 사회문화적 변화 때문인데 보다 자유스러운 성문화가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보수적이며 특히 50년 동안 폐쇄적이었던 북한과의 통일을 내다보면서 통제기능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이혼은 지금보다 훨씬 덜 부정적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혼율은 높아지겠으나 이혼가정에서 파생되는 자녀문제는 자연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특히 여성노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남녀 간의 평균수명차는 더욱 커져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는 남자에 비해 여성은 경제적 · 신체적 · 고독의 짐에 더욱 시달리게 된다. 또한 노인부양의 책임을 전적으로 지고 있는 중년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대폭 늘어나면서 직장과 자녀보호의 틈바구니 속에 노인문제가 큰 부담이 된다. 따라서 노인 문제와 가족문제는 여성운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된다.

여성인력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져 여성 인력의 개발 · 활용이 사회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란 인식이 커져 갈 것이다. 경제발전계획이 시작된 지난 60년대의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6.8%에 불과했던 것이 80년 들어 42.8%, 90년엔 47%로 크게 높아졌는데 2천년에는 50%~60%까지 이를 것으로 점쳐진다.

여성 長壽로 여성노인 문제 심각해져
특히 기혼여성의 취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89년 들어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46.8%)이 미혼여성(45.6%)을 앞지르기 시작함으로써 탁아시설 확충은 필연적이다. 탁아문제는 더이상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빈곤가정 위주로 선별적으로 이루어졌던 탁아시설수용에서 전체 여성의 아동복지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인 탁아시설 서비스가 따르게 된다.

90년도 실태를 보면 맞벌이부부 자녀 가운데 탁아시설 이용이 필요한 경우는 80여만명이나 현재 아동수용 규모는 겨우 7만3천명 선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수용능력 9%에 불과한 탁아시설이 2천년에는 50%로 높여져 명실공히 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는 사회변화가 이루어지는 날, 국방예산의 삭감부분이 복지비로 환원되면 탁아혜택의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앞으로 더욱 심화될 일손부족 현상의 한 돌파구로 기혼여성을 많이 끌어들이면서 예상되는 것은 시간제 고용의 증가이다. 시간제 고용은 단순직뿐 아니라 고도기술을 요하는 직종까지 확대된다.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남편의 수입만으로 살 수 없다는 압박에 따라 기혼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취업전선에 참여하게 된다. 25~34세 연령층의 여성은 출산 · 육아로 직장을 쉬게 되고, 40~50대 전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로 M자 모형의 경제활동분포 곡선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시간제 고용이 늘 경우 여성이 겪는 기존의 구조적 임금불균형에 또 하나의 저임금 불이익이 보태어질 소지가 있다. 이런 시간제 고용직도 상용근로직에 준하는 법적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노동계와 여성계의 운동방향이 될 것이다.

산업사회가 정보화시대로 옮겨가면서 직종분포는 생산직과 사무직에서 점차 전문직에 확산되고 ‘재택근무’가 늘어날 것이다. 은행과 회계분야, 컴퓨터 · 정보서비스 분야에서 여성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러나 사무자동화로 인한 사무직 인력의 수요감소, 유통 · 서비스 · 판매 부문의 생산성합리화운동으로 도시 비공식부문 취업여성의 실업문제가 점차 표면화될 것이다. 고학력여성은 뚫기 어려운 대기업보다 비교적 여성에게 개방된 중소기업을 선호하게 된다. 늘어나는 외국과의 거래로 중소기업은 고학력인력이 아쉬워지고 요구에 맞는 대졸여성을 적극 받아들인다.

고학력 여성 취업 쉬워져
교육분야에서 여성의 고학력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나 현재의 공학계 여학생 비율은 5.0%(남학생 30.2%)로 앞으로 첨단기술사회 · 정보화사회가 요구하는 전문기술인력을 충족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정보화시대가 되어 여성들은 환영을 받겠지만 오늘날 젊은 여성이 목표를 너무 낮게 잡음으로써 전진이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전통적 남녀역할관에 의존한 학과선택이 크게 변화해 여성의 과학계 진학은 크게 증가하게 된다. 진로가 보다 확실한 법대. 의대 진학률도 높아진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2천년대에는 여성이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금년에 처음 실시된 지방자치제는 여성의 정치참여 확산에 청신호를 켰다고 평가된다. 현재 여성진출은 기초의회 40명,광역의회 8명으로 전체의 0.9%에 불과하나 힘을 축적해 95년 지방의회선거부터는 의미있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지자제 출마 여성후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0%가 법정 선거비용을 썼다고 응답했으므로 부정부패 척결과 깨끗한 정치에 여성이 해야 할 역할은 많다.

이미 정치란 여성의 삶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역으로 의식되고 있으며,직접 참여하는 것만이 이익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정치의식이 형성돼 99년 선거까지는 20% 정도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지도자의 시대란 권위주의의 수직적 인간관계로부터 벗어나 다원화사회를 맞이해 동료 같은 리더십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뜻한다. 힘과 힘이 맞서는 ‘근육’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여성 특유의 포용성과 온유함이 다른 형태의 창조적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의 공직 진출도 눈에 띄게 활발해진다. 금년부터 임용시험에 남녀구분이 폐지되면서 이미 9급 행정직의 경우 60%의 합격률을 보여 여성은 하위급에서부터 넓게 참여하기 시작했다. 10년 후 이들이 사무관이나 서기관으로 승진하면 굉장한 힘이 생기게 될 터이다.

여성운동의 방향은 더이상 대규모로 조직화되는 운동이 아닐 것이며 전문화 · 세분화 · 다양화 추세를 보일 것이다. 선도적인 활동가 중심의 여성운동은 사라진다. 생활이 이루어지는 현장인 지역단위에서 소규모공동체 중심으로 환경 소비자보호 교육 세금 주택문제 등을 전업주부들이 구체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지역사회운동은 또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 소집단적 연대의식을 기반으로 이웃 공동체끼리 일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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