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여 분발하라”
  • 부산.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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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여 깨어 일어나라> 쓴 권철현 교수

지방 방송과 지방 대학. 지방 자치와 지방화. 같은 ‘지방’이지만 그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앞의 예에서 부차적이거나 2류라고 멸시하는 인상이 풍긴다면, 뒤의 예에서는 미래 지향적이고 화려하며 다소 과장된 청사진이 연상된다.

 權哲賢 교수(48·동아대 · 행정학)는 그것이 “제 구실을 못한 채 서울이라는 중앙 도시의 신탁 통치를 받아온 지방의 초라한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최근 펴낸 <지방이여 깨어 일어나라-부산 대개조론>(부산일보사)은, 그렇게 통치 받아온 혹은 서울의 주변부로 소외되어온 지방을 향해 분발과 제몫 찾기를 촉구하는 격문이다. ‘대한민국 제2도시’라는 허명 아래 퇴보와 시행 착오를 거듭해온 부산의 생존 전략이 담긴 마스터 플랜이기도 하다.

 권교수는 “지금까지 부산에는 스캔들형 비전, 이벤트형 비전, 캐치올형 비전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 물 문제, 교통 문제, 주택 문제, 빈민 · 장애인 · 노인 문제 등으로 만산창이가 된 부산을 되살리려는 데에는 이 증상들에 대한 다차원적 · 동시적 접근, 즉 다점돌파(多點突破)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근 공식 유보된 인공섬 건설 계획이 스캔들형 비전의 대표적 사례라면, 2002년 아시안게임 유치 움직임은 자칫 이벤트형 비전에 그칠 위험이 크다. 단번에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의욕과 과잉이 부산 시민의 의식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바로 ‘캐치올(catch-all)형 비전’이다.

 과거 부산의 상대적 낙후화 갖가지 도시 문제를 ‘야당 도시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것’쯤 으로 여겼던 부산 사람들은 ‘대통령의 도시’가 된 뒤에도 별다른 개선 조짐이 없는 데에 남다른 불만을 보인다. 권교수는 그러나 “지방자치제를 잘 운영하는 일본을 다녀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구 노력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라고 말한다.

<지방이여…>는 그의 그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스스로 깨드리고 바꾸려는 노력없이 서울만 쳐다보는 지역 주민의 뿌리 깊은 무력증을 질타한다. ‘중앙 의존형 발전 전략’을 버리고 ‘지방 주체형 발전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이여…>가 제시하는 부산의 미래상은 에코폴리스, 즉 ‘녹색 문화 도시’라는 말로 집약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어메니티(amenity)' 개념이 도입되는 곳도 이 대목이다. 환경의 쾌적함, 삶의 쾌적성 따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개념은, 생태주의 · 환경주의가 인간 삶의 중심이 되는 현대에서 모든 도시 환경 관련 사업의 최우선 고려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방이여…>는 특정 지방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그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동시에 담았다는 점에서 다른 지방의 ‘각성’에도 한 전범이 될 만하다. 그럼에도 권교수는 이 책에 담긴 다양한 논점에 대해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기 보다 도시 발전연구소 50여 연구원들이 6년여 동안 50여회의 세미나를 열면서 이루어낸 온축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라고 겸손해한다. 그는 이  연구소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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