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문화” 싹이 트는가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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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없는 수용·모방 단계… 독자적 ‘하위문화’ 형성 미지수

 고급 승용차나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세련된 매너와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젊은이들. 차 한잔을 마셔도 깨끗한 실내장식에 밝은 조명이 흐르는 카페만을 고집하는 젊은이들. 패러볼라 안테나와 논노 따위의 일본 패션잡지에 문화의 채널을 대고 첨단 패션을 직수입하는 젊은이들. 이 사회의 어느 누구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아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 심리적 거리감이나 저항감이 전혀 없는 젊은이들.

 요즘 대학가에서는 이런 부류의 젊은이들을 ‘압구정파’라 통칭한다. 이들은 기성세대로부터는 “부모 잘 만나서 팔자 한번 늘어진, 철없는 젊은애들” 쯤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광고업계로부터는 벌써부터 감성시대의 예비 소비자로 주목받는 층이기도 하다. 이들 압구정파는 누구인가.

 어떤 삶은 이들을 가리켜 한국판 신인류라 칭한다. 한 사회학도는 “한국에 계급문화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면서 압구정동의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소비구조에 과감히 ‘계급문화’라는 딱지를 붙이기까지 한다. 또 어떤 문화인류학도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볼수 없던 압구정동 젊은이들의 행태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학문적 미개척지”라고 말한다.

 시인 유하씨가 지적한 바와 같이 압구정동은 “당신의 와꾸를 디밀어 보면 띠- 하고 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색지대이다. 서구에서는 계층간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현재 한국에서도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이런 징후가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마디로 압구정동은 모두에게 열린 ‘젊음의 용광로’가 아니라, 특유의 생활양식이 몸에 밴 사람들만이 누리는 ‘폐쇄공간’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비록 동년배의 젊은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질적인 집단에게는 아주 배타적이어서 틈입자 스스로가 견디지 못하도록, 그들만의 놀이구조를 형성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광주의 부채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80년대, 당시는 어둡고 힘겨운 시대였다. 정치적으로는 60년대와 7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독재의 시기였다. 너무나 분명한 절대악이 온 사회를 짓눌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너무도 쉽게 절대선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정권의 반대편에만 서 있으면 모든 이념이 은밀한 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선과 악이 대립하던 시대였다.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다양한 이념들이 광범위하게 실험되던 ‘이념과잉’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이념과잉 시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부의 상징인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압구정파는 서서히 자기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극히 타리념적이고 탈정치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면 압구정파는 어떻게 형성됐으며, 우리는 그들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영국의 문화학자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대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대중을 보는 방식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언론이나 학계등에서 편의에 따라 대중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한 사회 내에는 제 나름의 문화를 갖고 있어 도저히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는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다는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들 집단이 형성하고 향유하는 문화를 ‘하위문화’라 부른다. 사실 서구에서는 계급의 층위에 따라 모두 자기 나름의 문화를 개척하고 가꿔왔다. 노동자 계급은 그 나름으로 문화적 자긍심을 잦고 있어서 상류사회의 화려한 문화를 모방하지는 않는다.

“하위문화 형성될 시간적 여유 없었다”
 《시사저널》이 압구정파의 등장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른바 압구정파가 진정한 하위문화를 형성했는지 판정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감이 없지 않다. 오히려 하위문화라기보다는 부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산층 이상 자녀가 만든 정교한 소비문화쪽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사저널》은 이들이 이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풍요한 경제를 기반으로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인 생활양식과 놀이구조를 갖췄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위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위문화는 특정계층의 경제적 조건이 몇 세대에 걸쳐 대물림으로 내려온 경제적 바탕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하위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한국 사회에는 하위문화가 형성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로 바뀌어야 옳을 것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럴 수밖에 엇는 역사를 체험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은 기존의 모든 가치와 질서를 무너뜨렸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서 싹이 튼 한국의 자본주의는 모든 이에게 동일한 출발선을 강요했다. 전쟁을 전후에서 태어난 기성세대는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선대로부터 피페한 경제만을 물려받은 40~50대에겐 문화 따위가 끼여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으켜세웠지만, 너나할 것 없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기성세대는 “출신성분에 따라 향유하는 문화가 다를 수 있다”는 논리에 체질적으로 익숙하지 못하다.

 지금이야 상류·중산·하류층으로 뚜렷이 신분이 구별되지만 기성세대는 모두 전쟁 후 역동적인 신분의 부침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허리띠 졸라매고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어느새 신분의 선이 굵게 그어진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민들의 재벌에 대한 불신감이 유독 심하다. 없는 자가 부유층에 대해 반발심리를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부동산 투기꾼으로 상징되는 부의 기형적인 축적과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심리의 밑바탕에는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전쟁 직후에는 다 마찬가지였다“는 똑같은 출발선의 논리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뒤틀린 경제성장 때문에 졸부들의 무절제한 과소비와 허겁지겁 이를 뒤쫒는 하류층의 모방소비가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같은 경제수준의 사람들이 일군의 유형을 이뤄 비슷한 사람들끼리 독특한 문화적 유통구조를 일구어내기를 기성세대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성세대의 눈에 압구정동의 신세대는 그저 위험한 아이들로 비칠 뿐이다. “미숙한 10~20대가 자생적인 문화를 만들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폭탄을 갖고 놀도록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는 논리가 그동안 압구정동의 젊은이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각이었다.

경제적 출발이 여러 걸음 앞선 압구정파
 그러나 지금 10~20대는 부모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제 이들에게 똑같은 출발선에 서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선’예서 출발한 셈이다. 경제 수준이 다르면 문화적 지향이나 관심도 다르게 발현되기 마련이다. 또한 문화적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세계관과 의식구조가 다르게 형성된다. 압구정동의 유흥문화, 그것은 경제적으로 가장 앞서 출발할 수 있는 혜택받은 층이 그들의 ‘다른’ 관심을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첫째 압구정동 스타일이 계속 재생산되면서 뚜렷한 문화유형을 만들 가능성이다. 그런데 재생간이 가능하려면 압구정파는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가 제공한 경제적 조건을 현상 유지해야 한다. 경제적인 밑받침 없는 문화는 유행이나 모방일 따름이며 쉽게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누리고 즐기는 만큼 서로에게 강제하는 의무가 있어야 한다. 서구의 상류층이나 귀족에게는 ‘귀족의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지)라는 게 있어서 누리는 만큼 자기들끼리 도덕적 제어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압구정동 신세대는 즐기기만 할 뿐 아무런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둘째 기성세대의 ‘똑같은 출발선’ 논리가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도 먹혀들고 있기 때문에 압구정파의 화려한 유흥구조가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지역에 확산될 수도 있다. 만약 지역을 막론하고 이런 풍조가 만연한다면, 빈부의 구별없이 온 사회가 과소비 열풍에 휩싸이는 부정적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셋째 압구정파 자신이 기존의 사회구조에 편입되면서 기성세대의 의식과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낸 일본의 신인류도 사회에 진입하기 전에는 반항과 광기, 변태로 특징되는 ‘철딱서니 없는 아니들’이었지만, 일단 기업체에 몸담고부터는 차츰 조직의 틀에 짜맞춰져갔다.

 앞으로 10년 후면 우리는 이사회 곳곳에서 어른이 된 압구정파를 만날 것이다. 그때에도 압구정파가 자생력을 갖고 독특한 자기문화를 개척해나갈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현재 이들이 드러내는 차별성은 외국의 것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모방하는 것일 뿐이지, 스스로 자기 것을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다. 지난 여름 압구정동 젊은이들 사이에 하의는 미니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상의는 긴팔 옷을 입는 소위 ‘언밸런스 패션’이 유행했었다. 이는 일본에서 마약하는 젊은이들이 즐겨 입던 차림새로, 팔뚝의 주사바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은 데서 유래했다.
 
 여하튼 압구정파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지는 길게 잡아도 5~6년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다르니까 나쁘다”는 어른의 시각으로 그들을 규정하려 들면, 바른 이해는 영원히 불가능 하다. 압구정동의 현재는 하위문화의 가능성이 실험되는 모색의 시기일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주목해야할 신세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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