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풍향계 ‘김영삼 向’
  • 김재일 정치부 차장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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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을 깨서는 안된다”… 민정·공화계 강력 반발, 자유경선 적극 주장

 민자당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차기 대통령후보 논의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盧泰遇 대통령의 의중이 金永三 대표쪽으로 쏠리는 듯한 기류에 대해 민정·공화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당내 최대의 현안이자 국민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인 여당 대통령후보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열기는 1월 둘째주 최고조에 달했다.

 노대통령의 마음이 김대표에게로 어느 정도 기울었다는 정황 증거는 여기 저기서 감지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보 부상 방법은 여전히 미궁인 채로 남아 있다. 10일경으로 예정된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노대통령과 김대표는 제반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두 사람간에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민정·공화계의 강한 반발은 후보 결정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지루하게 끌어온 여당 대통령후보 문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엎치락 뒤치락 혼돈상태였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심중의한 끝이 밝혀지면서 일단 김대표쪽으로 방향이 잡힌 듯한 느낌이다.

 노대통령은 지난 2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민자당 중진의원 만찬모임에서 “3당통합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순리와 원칙에 따라 후계 문제를 결심하려 한다”고 밝혔고 “내가 결심을 할 테니 아늬 결정이 다소 여러분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따라주기 바란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모임에 참석한 한 고위 당직자는 이같은 보도의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차기 후보를 암시하는 말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참석자 전원, 즉 당3역인 金潤煥 사무총장, 李慈憲 원내총무, 羅雄培 정책위의장과 당 중진인 李漢東 李春九 沈明輔, 李源祚 의원은 전혀 이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특정인을 명시하지도 않았고 어떤 결론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당을 깨서는 안된다”는 말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 후보문제와 관련, 대통령의 마음이 김대표에게로 기운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이 부분은 평소 김대표와는 반대 입장에 서온 이한동 이춘구 심명보의원의 행동에서도 어느정도 뒷받침된다. 이들이 청와대모임이 끝난 직후 약속이나 한 듯 각각 지역구로 내려가버리는 바람에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내심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이 고위 당직자는 후보 결정방법·시기·내용 등 모든 문제는 백지 상태로 노대통령과 김대표 두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말한다. 원칙은 섰더라도 방법이 있어 타협점을 못 찾으면 일은 다시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주례회동에 앞서 청와대측과 협상을 벌였던 민주계의 金德龍 의원과 崔炯佑 장관 측도 이제 자신들의 역할은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측의 ‘총선 전 정당대회 불가’ 원칙에 따라 후보문제 해결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의 대국민 공표·청와대에서의 당무회의 추인 공표·공천가 대회에서의 후보 명시 등의 방법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대표의 한 측근은 ‘총선 전 전당대회’라는 민주계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선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다른 한편에서는 총선 이전 지명에 의한 대통령 후보 결정에 반대하는 민정·공화계의 연대 움직임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자유경선 원칙을 줄곧 주장했던 李鍾贊 의원은 지난 4일 金鍾泌 朴泰俊 두 최고위원을 차례로 방문하고 당이 표류하고 있는 현실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이 자리서 두 최고위원은 이의원의 총선 이전 후보 결정 반대 입장에 분명한 동조 의사를 표명했다. 이의원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5일 저녁에도 공화계 핵심 金龍煥의원, 민정계의 朴泰俊 의원과 각각 회동, 총선 이전 후보 가시화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9일의 임시당무회의를 통해 후보 문제를 공론화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따라 ‘새 정치모임’의 吳有邦 의원은 6일 오전 김윤환 사무총장을 만나 임시 당무회의의 소집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는 김대표를 비롯한 민주계가 당무회의를 거치지 않은 채 곧장 노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가질 계획이기 때문이다.

 5일 김종필 최고위원은 공화계 金鎔采 玉滿鎬 의원, 李熺逸 전동자부 장관 등과 골프회동을 가진 데 이어 자택에서 김용환 의원 등과 대책을 숙의하고 총선 전 대통령후보 결정 반대의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했다. 이날 공화계 중진들은 민정계와 공동 대응을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김최고위원의 심경과 관련해 “그는 과거 18년 동안의 집권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공당에서 어떻게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매우 불쾌한 심경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丁海昌 대통령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자신의 불쾌한 심정을 그대로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계 의원들은 6일 전체 오임을 갖고 민정계의 당무회의 소집요청을 지지하고 공동 대응한다는 원칙을 재확인 하는 한편, 민정계의 이종찬 오유방 심명보 이자헌 金顯煜 申相式 張慶宇 의원 등 ‘새 정치모임’도 이날 밤 전체 회동을 통해 자유경선 원칙을 노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종찬 의원은 “언론 지상에 당 총재가 사임한다느니, 당적을 이탈한다느니, 김영삼 대표가 총재 권한대행을 맡는다느니 하는 말들이 보도되고 있는 데도 이런 사실을 당의 최고위원이나 당무위원들이 모르고 있다”면서 “당 총재가 총재직을 사임한다는 것은 총재의 기능 정지를 뜻하는 중대사안인 데도 당 공식기구를 통해 단 한마디의 해명도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의원은 또 “김종필 박태준 두 최고위원도 자유경선 원칙에 분명한 동조의 뜻을 표명했다”고 밝히고 “경선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朴哲彦 의원도 지난 5일 “일부 언론의 보도와 공작적 차원에서 대통령후보 문제가 결정될 수 없다”면서 “이종찬 의원과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의원은 6일에도 “특정인을 지명하는 방식은 반시대적이고 반민주적이다. 여권 후보를 밀실 흥정에 의해 국민 앞에 내놓고 지지를 호소다는 것은 6·29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만일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에 반대하는 그 누구와도 지혜를 모아 연대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박의원의 이러한 태도는 만약 노대통령이 김대표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어서 대통령 인척이기도 한 박의원의 입장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 소식통은 박의원의 결심과 관련해 “그는 최근 노대통령의 결정 사항이라도 일방적인 지명에는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말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김영삼 대표에 반대하는 각 그룹들이 단일세력으로 결집됨에 따라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결정 문제는 노대통령의 ‘결심’만으로는 그 고비를 넘기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김종필 박태준 두 최고위원 및 박철언 장관이 이종찬 의원의 경선론에 동조하고 나섬에 따라 그동안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던 자유경선 원칙은 민정·공화계 다수의 지지를 받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민자당의 한 고위 소식통은 “민정·공화계 대다수가 이처럼 노대통령에게 경선론을 강력히 요청할 경우, 노대통령도 일방적으로 지명만을 고집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계 의원 52명 전원이 ‘分黨 외통수’지지 서명
 그러나 민주계측은 경선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대표 측근의 한 의원은 “진행되는 상황을 볼 때 후보문제는 끝났다. 김영삼 대표의 후보 부상은 순리이고 당연한 일이다”고 말한다. 민정·공화계의 반발이 당연히 있을 것이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변수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경선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체육관에서의 대통령 선출이 엊그제였다. 선진국에서도 경선형식은 빌리더라도 총재의 낙점은 있게 마련이다. 완벽한 경선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민정·공화계를 충분히 설득해 뜻한 방향으로 끌고 갈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노대통령이 김대표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면 그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인 요인을 감안한 선택일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말한다. 특히 김대표가 당을 깨고 나갈 경우의 정치적인 혼란과 김대표를 지명했을 때의 당내 혼란 요소를 비교 분석한 결과일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계는 줄곧 총선 전에 김대표가 대통령후보로 결정되지 않을 경우 분당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12월에는 민주계 의원 52명 전원이 김대표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서명을 해 그의 입지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분당 배수진의 외통수가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가는 셈이다. 서명을 주도했던 한 민주계 의원은 “그것은 공갈이나 협박이 아니었다. 분당해도 20여명은 남을 것이라는 민정·공화계의 추측과는 달리 서명을 못하겠다는 의원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여권 핵심부가 이러한 민주계의 행동통일 의지를 정확하게 읽은 것 같다고 그는 분석했다.

 만약 김대표가 대통령후보로 부상하게 된다면 이에 따라 당권과 국회운영귄 등 민정·공화계츧과의 권력분담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대통령직을 놓고 양김씨가 한판 승부를 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아직 이르다. 정치가 어떤 형태로 진전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만약 노대통령이 김대표 선택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해도 반발하는 의원들을 어떻게 다독거려 싸안고 가느냐가 현안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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