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세일즈 순방’ 압력 거셌지만 실속 못챙겼다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변창섭 기자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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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太 4개국, 원칙적인 경제협력만 약속

 금년 하순의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경제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통상압력을 강하게 넣고 있다.

 구랍 31일 호주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한국 일본 등 4개국을 순방한 부시 대통령은 통상압력에 반발하는 한국과 일본의 거센 항의에 부닥침으로써 “좀더 많은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의 창출”이란 소기의 외교 목적을 거두지 못했다. 시장개방 등 경제현안에 대해선 관련 당사국들로부터 원칙적인 협력만 약속받았을 뿐 실속있는 보따리를 챙기는 데는 실패한 느낌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은 장차 필리핀에서 철수할 미군 태평양함대병참본부를 싱가포르로 이전한다는 데 싱가포르 정부와 합의함으로써 안보적 실리를 취했다. 그러나 통상 마찰의 해소에 대해서는 호주 한국 일본과 큰 원칙에만 합의했을 뿐이다.

 부시 대통령의 아태 순방은 당초 태평양국가로서의 미국의 장기전략을 선언하기 위해 계획된 여정이었다. 지난 4일 싱가포르연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소련 소멸 등으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는 가운데 “고립주의를 단호히 배제하고 아태지역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은 지난달 남북간에 한반도비핵화가 타결됐고 핵사찰에 대한 북한의 태도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져 관심을 끌었다. 한·미 정상은 예년과 달리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뚜렷한 현안이 없기도 하지만 4개국 순방의 비중이 마지막 방문국인 일본에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두 정상은 회담이 끝난 후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합의사항을 밝혔다. 이중 관심을 끄는 것은 盧泰遇 대통령이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고 의무를 이행하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밝힌 대목이다. 매년 2월 중순께 시작되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1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선언이 나옴으로써 북한이 핵사찰에 응할 경우 한·미 군사훈련은 당장 올해부터 중단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 앞으로 한·미 두 나라가 북한의 핵문제를 포함해 경제 외교 안보 등 제반 분야에서 “항구적인 동반자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말한 대목 역시 음미해볼 만하다. 한·미 관계가 과거의 주종적 관계에서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옮겨가는 것은 대세에 따른 것이겠지만 한국은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7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정치상황을 관찰해온 한 미국 외교관은 부시 대통령과 노대통령이 서로 상대국을 방문할 때 테니스를 통해 친선을 다진 예를 두고 “이것이 바로 동반자 관계(이퀼 파트너십)를 상징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에 따르면 관계가 소원했던 박정희-카터 시절이나 “주종적 관계”라고 비판받던 전두환-레이건 시절과 달리 노-부시 시대의 한·미관계는 테니스 시합이 상징하듯 동반관계에 바탕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요한 것은 한국이 동반자 관계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이 청와대 기자회견과 국회연설을 통해 줄곧 ‘동반자 관계’라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시장개방확대를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은 데 반해 한·미과학기술협정과 특허비밀보호협정 등 2건의 경제관련 협정이 나온것도 부시 대통령의 방한이 안보보다는 통상부문에 더 쏠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년 1천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기록해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과는 냉전체제종실 이후 미·일간에 형성된 지구차원의 협력관계(글로벌 파트너십)에 입각해 역할분담을 규정하는 ‘도쿄선언’에 초점이 쏠렸다.

 “외교우선 내정경시”라는 국내 비판에 몰린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비상이 걸릴 만큼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걸프전쟁 때 90%가 넘었던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를 밑돌 만큼 미국의 경제사정은 말이 아니다. 11월과 12월 두차례의 금리인하 조처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회복되리라는 조짐도 없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3천5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실업률도 여전히 6.8%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경제의 상징인 자동차산업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해 “세계의 거인”으로 불리던 GM은 종업원 5명에 1명꼴로 줄여 모두 7천 4백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문화인 자동차산업, 그것도 미국의 대표선수인 GM이 일본 자동차 회사와의 경쟁에서 몰락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급변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아태 순방을 시장개방을 위한 ‘세일즈맨 여행’으로 그 성격을 바꾸고 이념이나 경제원칙보다는 눈에 보이는 경제적 성과에 주력하게 됐다. 미·일 자동차전쟁의 패전지장인 ‘빅스리’ 회장들을 비롯해 21명의 재계수뇌를 대동한 것도 “미국에 있어서 자동차는 한국이나 일본의 쌀처럼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같이 태풍 ‘부시호’가 선린우호관계의 재확인이 아닌 시장개장으로 그 진로를 바꾸자 일본의 기대는 크게 허물어졌다. 일본이 걸프전쟁과 내정위기로 두차례나 연기된 부시 대통령의 방문을 학수고대한 것은 ‘도쿄선언’을 통해 정치대국으로 부상해보겠다는 속셈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진주만 기습 50주년을 맞아 과거 50년 동안의 종속적 미·일관계를 청산하고 동등한 파트너십(즉 글로벌 파트너십)에 입각한 새로운 관계구축을 위해 ‘도쿄선언’을 도출하는 데 큰 기대를 걸어왔다. 미·일관계는 일본의 일방적 대미 의존관계에서 상호협조시대를 거쳐 지금은 포스트 냉전 뒤의 제3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소련의 소멸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지만 그 경제력의 상대적 저하로 경제대국인 일본과의 역할분담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도쿄선언’을 발판삼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피선을 노리는 등 국제외교무대에 적극 진출해보겠다는 주판을 굴리고 있었다. 일본은 유엔분담금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12%)라는 점과 전후 50년이 지난 지금 유엔헌장의 ‘구적국조항’은 시대착오적 규정이라는 점을 들어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지위를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본 ‘도쿄선언’의 의의는 크게 줄었다. “미·일 두 나라는 세계에 대해 특별한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추진해나갈 결의이다”라고 규정한 대목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선언보다는 일본의 수입확대와 시장개방을 중시한 미국측 태도로 김빠진 선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국은 또한 ‘도쿄선언’ 속에 “미·일 두 나라는 아태지역 제국의 번영을 촉진하고 긴장완화와 정치협력 강화를 위해 아태경제협력각료회의(APEC)를 중시한다”고 못박음으로써 일본의 대아시아정책에도 쐐기를 박았다. 부시 대통령은 싱가포르 연설에서 “미국이 참가하지 않는 경제블록 형성은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말레이시아의 마하틸 총리가 제창한 동아시아경제회의(EAEC) 구상을 견제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태경제각료회의에 참석한 베이커 미국무장관의 “아시아와 태평양을 이분하여 미·일분단을 획책하는 지역주의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지적을 재확인하는 발언이다. 다시 말하면 아태지역에서 정치군사력은 미국, 경제력은 일본이 맡아야 할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태지역의 지도자는 미국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본측에 강조한 셈이다.

 일본의 경제적 양보의 대가로 도출된 ‘도쿄선언’에도 불구하고 미·일관계가 글로벌 파트너십에 입각한 밀월관계로 발전되리라는 시각은 매우 적다. ‘일본 두들겨캐기’(저팬버싱)와 '嫌美현상‘이 교차하는 현재의 미·일관계가 ’도쿄선언‘에서 채택된 ’행동계획‘의 실행을 둘러싸고 더욱 큰 마찰음을 내리라고 보는 시각이 오히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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