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줄 대통령감이 없다니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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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지도자를 뽑아서 나라를 맡길 수 있다면 경제문제·남북문제 해결에 큰 힘을 보태련만…

 시련과 격동의 한해가 열렸다. 그것은 빛의 1년일 수 있고 어둠의 1년일 수 있다. 희망의 봄일 수 있고 실망의 겨울일 수 있다. 도약의 시기일 수 있고 좌절의 시기일 수 있다. 지혜의 고비일 수 있고 우둔의 고비일 수 있다. 신뢰의 회복일 수 있고 불신의 지속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가혹한 시련과 엄청난 변동의 시절에 들어섰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빛도 희망도 도약도 지혜도 신뢰도 한낱 물거품이 되고 어둠과 실망과 추락과 우둔과 불신의 나락에 빠질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떨칠 수가 없다.

 구체적으로 나라의 살림살이가 성패의 기로에 섰다. 모두가 아껴쓰고 힘모아 부지런히 일한다면 반드시 제2의 도약을 이룰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사치낭비가 지속될 때 얼마 전까지의 아르헨티나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모든 것은 우리의 결단에 달려있다. 크게는 정부의 지도역량에 달려 있으나, 땀흘려 일하는 사회 분위기와 국민적 에너지의 집결로 생산이 소비를 앞지르고 수출이 수입을 앞서야 한다. 그러기에는 힘있는 사람들, 돈있는 사람들, 지체높은 사람들의 솔선수범만이 열쇠가 된다.

도약이냐 좌절이냐는 지도층 솔선수범에 달렸다
 눈을 밖으로 돌릴 때, 공산주의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는 우리 주변 정세에도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이제 냉전은 끝났다. 냉전이 바로 스탈린주의 소련제국의 발호로 시작되었다면, 소련제국의 붕괴로 냉전에 종말이 온 것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다. 아직도 중국 북한에 공산주의 잔재가 도사리고 특히 우리 북녘 땅에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는 스탈린주의의 잔재가 살아남아 있으나 지금의 비인간적 통제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간헐적으로 “배고파 못살겠다”는 비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때 북의 공산주의 역시 시간과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오죽하면 唯一神인 金日成이 ‘두개의 조선’을 인정하고, 남북 불가침에 서명하고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하였겠는가. 일본의 돈과 물자와 기술을 끌어들이겠다는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남북이 무장 대결에서 평화공존체제로 옮겨가는 희망찬 제1보를 걷는 단계에 들어섰고, 남북정상의 만남이 可視圈에 들어서고 있다.

 남북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독일식 ‘흡수통일’에 매력을 느끼고 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긴 눈으로 볼 때, 상당 기간의 평화공존이 성공리에 지속된다면 궁극적으로는 북에서 공산주의가 소멸하고 민주주의를 공통분모로 하는 민족통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시말해 남북의 인민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민족자결 원칙이 민족문제 해결에 적용될 수 밖에 다른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민주주의적인 정치역량을 어느 정도 얼마나 빨리 배양 축적할 수 있느냐에 있다. 남한의 서독화라는 숙제를 하루속히 풀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 문제는 국내정치의 안정과 발전, 민주주의적인 제도화에 있다. 새해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3월에 있고 이어 6월말이전에 기초와 광역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가 있고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선거풍년이다. 선거란 국민이 지도자를 자유롭게 창조하는 민주주의의 꽃, 진실로 반갑고 기뻐할 잔치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안심하고 나라살림을 맡길 수 있다면 경제문제 해결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북 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감 없다는데. 정치인은 서로 되려고 싸워
 그러나 국민 다수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을 불신하고 선거를 두려워하고 있다. 잇따른 네차례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가 되기는커녕, 돈 드는 선거와 이에 따르는 물가 앙등, 지역분열 등 부작용을 걱정하게 한다. 어느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으로 모실 지도자가 없다는 사람이 67.2%를 차지한다. 10% 이상 지지를 받는 사람이 없다. 여야 대통령 후보로 지목되는 두 김씨에 대한 선호도 역시 6.7%(김영삼)와 7.6%(김대중)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김씨를 대신할 유력한 新人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현존 정당에 대한 불신 역시 매한가지. 원내 2백18석을 가진 민자당에 대한 지지도가 15.2%에 불과하고,민자당에 대한 대안으로 꼽히는 통합야당 민주당 역시 16.6%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가령, 국회의원 후보자 소속 정당에 대한 평가는 7.7%뿐이고 후보자 개인의 자질에 63.8%의 무게를 두겠다는 반응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당정치에 대한 경멸이요 불신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지도자나 정당이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권력 추궁에 수단 방법을 안가리는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는 반증이다. 남북문제가 어찌되든, 또는 물가상승이 어찌되든 지난 몇 달간 대권경쟁에 온갖 권모술수가 총동원된 민자당 안의 추악한 계파간 암투, 갈등이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다. 내일에 대한 희망보다는 실망을, 빛보다는 어둠을, 신뢰보다는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럴수록 깨어있는 유권자가 되어 여론을 존중하고 책임감 있는 지도자를 뽑는 데 능동적으로 움직여야겠다. 적어도 돈에 팔려 신성한 주권행사를 그르치는 우매한 짓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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