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위해 양보한 것 없다”
  • 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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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馥남북고위급회담 대변인

 역사적인 남북합의서가 채택되고 난 후 우리의 관심은 두 가지에 모아진다. 첫째는 과연 이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 될 것인가 이고 둘째는 “신뢰구축의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노대통령이 표현한 남북한 정상 회담이 과연 언제 어떻게 열리는가 하는 점이다.

 첫 번째에 대한 우려는 이번 남북합의서가 구체적이고 실천적이기보다는 선언적이고 원칙적이고 내용을 담고 있다는 데서 나온다. 두 번째에 대한 관심은 정상회담이 갖는 크나큰 역사적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정치에 대한 계산이 작용한다는 교차된 시각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남북고위급회담의 ‘실세’ 대변인인 李東馥 국무총리 특별보좌관(55)으로부터 들어본다. 북한의 ‘말꾼’ 安炳洙 대변인을 능가하는 기지와 재치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대변인은 7 · 4공동성명 때부터 남북대화에 깊이 관여, 남북조절위 대변인(72~80) 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장(80~82)을 역임했다. 한때 신문기자와 기업체 부사장을 지내고 국회의원선거에 출마(서초구)했다가 낙선한 바 있는 이대변인은 6공들어 국회의장 비서실장도 지냈다.

그동안 남북고위급회담 대변인으로서 회담에 영항을 준다는 이유로 한번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최근 인터뷰를 수락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합의서가 타결된 뒤 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합의서를 발효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의서가 채택되자마자 정작 정부는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신문은 온 지면을 통해 기사를 쓰고 국민에게 과잉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남북합의서 이행에 대해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는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이나 우리 측 모두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지요. 합의서 타결 직후 일간지와 갤럽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한 80%가 잘했다는 응답이었으나 72% 전후는 과연 지켜지겠느냐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불안감이 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로동신문>에 “합의서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문제는 남쪽에서 이행할 것이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것은 남과 북이 다함께 불신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북한은 사실 합의서를 발효시키기 위한 준비일정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로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승인했고 회고인민회의와 중앙인민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이를 추인했습니다.

상호 불안감을 느끼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북의 매체들은 우리에 대해 아직도 악랄한 비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북의 언론은 관제언론으로 우리와 아주 다릅니다. 예컨대 요즘 어떤 신문에 김일성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기사가 나오는데, 북은 이를 비방 중상으로 몰아세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북한은 자꾸 우리 측의 ‘흡수통일론’을 북에 대한 파괴전복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북한이 그들의 남조선혁명론에 입각에 우리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정부의 입지를 약화시키려 한다며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남북 쌍방이 잘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언론이 맡아야 할 것입니다.

정상회담 시기와 관련해 2~3월 설도 있고 6월 설도 있는 데요
 2~3월 정상회담성사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정상적인 순서에서 따라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남북고위급회담에 부여된 과제를 완결 짓는 것이 2월입니다. 재작년 김일성 주석이 강영훈 총리에게 말한 것에 토대를 둔다면 정상회담은 이제야 거론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정상회담에 대한 설왕설래는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상회담 시기를 언제로 보십니까?
 상대가 있으니 그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6차 총리회담에서 합의서 발효에 필요한 모든 절차가 이뤄지고 비핵화공동선언도 발효되는 등 ‘신호’가 떨어지게 되면 그때부터 정상회담 얘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성사되느냐 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금년 중에는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올해 정치행사가 많습니다. 어쨌거나 이 문제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6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이 모두 이를 제안했고 북한은 계속 거부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강영훈 총리를 만나 고위급회담이 잘된다면 최고위급회담, 즉 정상회담도 이루어질 것이므로 “회담을 잘 성사시켜 내가 노대통령을 만나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어요. 지금은 핵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고위급회담, 즉 남북합의서가 현안이었는데 이것이 타결됐으니 충분조건은 돼요. 핵문제도  타결됐으니 정상회담이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은 꽁무니를 빼고 있어요. 합의서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일 뿐이라는 거예요. 남북통일방안에 대한 합의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측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지나치게 많이 양보했다는 언론의 지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난번《시사저널》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우리 측이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라는 기사를 써서 종부가 한바탕 떠들썩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 중의 하나가 음모이론입니다. 나타나는 현상의 두를 꼭 짚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고입니다. 정상회담건도 그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지금 정상회담이 거론되는 것은 단계적으로 보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어요. 정권이양 시기 때문에 자꾸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걸 염두에 두면 정상회담은 금년에 못한 것이죠. 그렇다면 내년 3월이나 돼야 새 정부가 들어서 안정이 돼 가닥을 잡는 시기까지 따지면 정상회담은 1년 이상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른 손실은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 측이 남북합의서 타결 때 양보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불가침 경계선에 관한 것이 한 예입니다. 불가침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가침의 경계선 규정이 아닙니까. 처음에 우리는 경계선은 군사분계선과 그동안의 관할구역으로 한다고 했고, 북에서는 군사분계선만 들고 나왔지요. 우리가 주장한 대로 북방한계선을 경계선으로 한다면 휴전협정을 수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지막 날 백남준 대표가 “경계선에 관해서는 이 선생이 웃을 수 있는 우리 측 안이 있다”고 하더니 덜컥 이쪽 안을 받더군요. 두 번째로 합의에 도달하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제5조의 휴전상태를 평화상태로 바꾸되 기간 동안에는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우리 측 제안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처음에는 이 조항을 빼자고 했다가 다음에는 ‘남북한’이라는 용어와 정전협정 준수 부분을 빼자고 했습니다. 정전협정은 미국과 맺은 것이므로 한국은 얘기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더니 마지막 날에 우리 것을 받았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부문이 남북간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에 관한 부문이었어요. 우리는 남북 주민간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에 관한 부문을 교류협력에 관한 분야에 넣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쪽에서는 각계 인사와 동포간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화해라는 정치조항에 넣자고 했어요. 그 이유에 대해 가끔 솔직한 발언을 해 손해를 보던 김영철 대표가 “아무나 왕래할 수는 없지 않느냐,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왕래해야 한다. 또 그 같은 왕래와 접촉을 하려면 방해되는 조건들을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정치 분야에 넣어야 한다”며 우리 국가보안법에 대해 또 시비를 걸려고 그러더군요. 결국 각계 인사와 동포는 민족구성원으로, 또 교류협력 분야로 들어갔습니다. 이외에 파괴 전복 행위 중지는 북한의 대남 폭력혁명노선을 겨냥한 것인데 이모든 것이 다 받아들여졌습니다.

양측의 이견이 많아 합의서가 채택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성공적인 결과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5차 회담이 열리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합의서가 타결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2~3개월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노태우 정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레임덕 정권이므로 합의서를 채택해서 이 정권을 도와줄 수 없다고 했거든요. 판문점에서 북쪽 사람들과 함께 서울로 올 때 안병수 대변인 등 저쪽 대표들이 “우리는 이번에 꼭 수표(서명)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우리 측은 5차 회담 기간 동안 버티기 작전을 펼쳤다는 후문이다).

자기들의 전력을 그렇게 쉽게 노출하던가요?
 그쪽이 워낙 급했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핵문제에 관해 북한은 설령 사찰을 받더라도 현실적으로 시기와 방법에 있어 문제가 많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영변에 들어가 시설을 보면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추궁할 수 있습니다.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어느 정도 협의했습니까?
 미국과 지난 8월부터 밀접히 협의해왔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 첫째 북한이 핵사찰 의무를 이행하고, 둘째 한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한 선언적인 조처를 취해야 하며, 셋째 남북한간의 직접사찰이 필요하고, 넷째 핵재처리 시설을 포기하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과 협의하면서 대두된 문제는 북한이 틀림없이 핵개발을 하려 할 것이고 남한과의 협상에서는 지연작전을 벌일 게 분명하데, 그럴 경우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한 2년은 끌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측의 급선무는 북한에 대해 국제 원자력기구와의 문제를 타결짓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겐 핵무기문제를 어느 단계에 연계시키느냐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이냐 또는 핵재처리시설이냐, 아니면 비핵공동선언에 연계시키느냐 하는 단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이런 문제 들을 포함해 여러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그래서 남북대화와 핵문제 협상을 병행해나가기로 한 · 미간에 합의를 봤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합의서가 타결됐죠.

핵사찰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어느 정도 믿습니까?
 핵문제회담 때 우리는 그들에게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 이것이 군축협상의 격언이다”라고 얘기했고 또 이것이 우리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번 부시 대통령 방문 때 솔로몬 차관은 더 심한 얘기를 하더군요. “불신하라. 그리고 검증하라”고요. 그만큼 핵문제는 불신의 자락을 바닥에 깔고 할 수밖에 없어 얼마만큼이나 앞으로 믿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놓고 우리 측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던데요.
 북한이 통일전선전술에 의해당국과의 회담은 피하고 비당국과의 관계나 대화만을 선호하는 입장을 취해오면서 갈등구조가 생긴 깃입니다. 그러나 이번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를 보면 당국간 관계를 강조하고 있고 그 증거로 이번 합의서를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갈등구조가 아직까지 존재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남북대화라는 것은 모든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총체적 개념의 전책운영입니다. 다만 남북대화는 주관부서가 통일원이지만 통일원은 남북대화의 수단을 관리하는 곳이며 기능면에서 관리한다고 볼 때 청와대가 당연히 목소리를 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주요 의제가 타결됐는데도 총리회담은 계속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북합의서가 채택됨으로써 우리 측의 한민족통일방안의 문턱은 넘어섰다고 봅니다. 총리회담은 상설 각료회담의 모체가 될 것입니다.

고위급회담 대변인을 하시면서 이대변인의 강성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홍구 전 통일원장관은 남북관계를 ‘상황의 이중성’으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실은 ‘다중성’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남북문제이므로 복잡한 사고의 틀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남북관계에 중요한 것은 합목적적인 사고입니다.

통일의 관건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북한이 루마니아나 옛 동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북한이 갑자기 무너진다면 남북 공히 비극적인 사태를 맞을 것입니다. 적어도 북한이란 체제가 질서 있게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남북한 모두에게 좋습니다. 이것이 큰 모험 없이 통일이라는 민족의 대역사를 이뤄내는 관건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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