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싸워서 덕볼 것 없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0.11.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제확대 꺼려 정정보도 청구권 스스로 포기

언론이 ‘마구 휘두르는’ 보도로 피흘리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우선 언론의 기를 눅이거나 자제를 당부할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일단 ‘휘두를 자유’가 있는 데 반해, 정치인 쪽에서는 이를 막아낼 ‘방패’가 없는 탓이다.  있다면 피해를 구제하는 사후적인 장치가, 그나마 구제가 아닌 보완적인 차원으로 존재할 뿐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각국에서는 ‘반론권’과 ‘소송’이라는 두가지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반론권이란 언론의 보도로 피해를 입은 쪽이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발생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이 반론을 무료로 게재할 수 있는 권리로, 대부분의 서유럽국가는 이를 법률로 인정하고 있으며 영ㆍ미 법계에서는 관례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소송의 경우 피해자가 승소한 예가 드문데, 이것은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는 법원의 태도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론권에 대한 명문규정은 없지만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정보도청구라는 일종의 반론권 행사제도가 있다.  물론 소송절차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한 사례는 작년부터 올해 10월23일 현재까지 총 2백33건이지만 정치인 관련 접수건수는 6건에 불과했다.  언론중재위의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정정보도 청구를 꺼리는 이유를 “그들 스스로가 언론과 등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문제를 확대시킬수록 국민의 뇌리에 오래 남게 되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이런 형편이라면 언론중재위를 통한 정정보도 청구제도가 완전한 반론권 보장을 뜻한다고는 볼 수 없다.  더구나 소송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작년초 金大中 평민당총재의 유럽순방기사와 관련하여 <조선일보>와 평민당 사이에 벌어졌던 맞고소 사태도 소송 일보 직전에서 고소취하로 결말났다.  일국의 제1야당 대 언론사간의 분쟁이 이 정도 선에서 매듭지어진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개별 정치인들의 대 언론 콤플렉스는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인에 대한 언론의 편파보도는 단순히 불완전한 반론권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이나 수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인들은 ‘공인이 잘못하면 크게 혼난다’는 인식을, 언론은 ‘언론이 행패를 부리면 정치인이 설 땅이 없어진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각성 촉구는 수없이 되풀이돼왔지만 정작 언론에 대한 질책은 양식있는 시민들의 의중에만 심겨 있을 뿐, 공론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方廷培교수(46ㆍ성균관대ㆍ신문방송학)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미국의 언론은 젊은 정치가 케네디가 저지른 하찮은 잘못은 눈감아주었다.  결국 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보듯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칼을 휘둘러댔다.  이렇게 언론은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가혹해야 하지만 위대한 정치가가 될 소질을 가진 정치인에게는 관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은 지금까지 그 반대였던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