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찾은 ‘임두령’ 얼굴
  • 박태순 (작가)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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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 역사소설 《임꺽정》 전10권 완간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중학2년생 때였으니 1955년 6 · 25 전후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 하나를 잘 건사해두면 우리 역사가 제대로 보일 것”이라고 이 책을 빌려준 분은 말했다. 대하문학의 압권이면서 한국역사 민속 고유언어 인문지리를 꾹꾹 눌러 담아낸 책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소설 《임꺽정》은 13여년에 걸친 碧初 洪命熹 선생의 집필 과정이 험난했던 것 못지 않게, 미완결 상태로나마 책으로 묶여져 일반 독자들의 손에 전달되어온 과정이 기구했다 아니할 수 없다.

 초간본 4권은 1940년 조선일보사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일실되다시피 했고,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6권으로 펴낸 중간본이 6 · 25 이후 흡사 불순서적인 양 뒷전으로만 흘러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이 중간본은 〈외형제편〉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어서 그 앞 부분인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은 누락되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신경림 이근배 이문구씨 등과 함께 어렵사리 원래의 신문연재 영인본을 구해 읽어볼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임꺽정》이 소설책으로서 행운을 갖지 못한 것은 이북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전해지고 있고, 벽초는 끝내 이 작품에 大尾를 찍지 못하였다 하니, 식민시대에 이은 분단시대의 역사가 난감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출판문화운동의 노력을 통해 1985년 ‘금서’라는 장벽을 깨고 9권의 《林巨正》이 햇빛을 보게 된 점이라 하겠다. 더구나 임형택 정해렴 민충환씨 등의 꼼꼼한 교열 및 용례 연구과정을 거치고, “벽초 홍명희”라는 저자를 떳떳이 밝혀, ‘正本’임을 자부하는 10권짜리 《林巨正》이 같은 출판사에 의해 최근 새로운 조판으로 상재되었음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이 처음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하던 때로부터 74년만에야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된 ‘텍스트’를 일단 완성시켜 놓은 셈이 된다.

 소설 《林巨正》은 민족자주문학에 대한 자부와 긍지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식민시대에 쓰여진 반봉건 탈식민의 역사소설이었던 것이다 오늘에 정본 《林巨正》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분단시대를 극복코자 하는 의지를 어찌 일깨워야 할까 하는 문제를 우리 자신의 몫으로 확인해보게 된다. 즉 《林巨正》의 새로운 독해가 요청되는 것이다. 첫째로는 민족자주문화 의식(곧 역사의식)의 재정립 문제이다. 둘째로는 한국적 인간성의 전형성에 대한 것으로 곧 “한국인(조선인)은 무엇인가”하는 문제이다. 임꺽정 갖바치 박유복 서림과 같은 인간형이 오늘의 분단시대의 역사적 모순에 대해 제시해 주는 바는 무엇일까.

 역사소설이라는 것이 범람하기는 하지만, 역사도 없고 소설도 안보이는 이 시대와 그 문학에 대해 정본 《林巨正》은 여전히 많은 것을 일깨우게 한다. 참역사를 어찌 일으키며 누가 세우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당대적 답변이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 임꺽정’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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