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床異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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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1월,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전격적으로 합당, 민주자유당으로 출범한 것은 동기에 있어 순수치 못했고 방법에 있어 비민주적이었으며, ‘여소야대’라는 국민의 뜻을 배반한 점에 있어 부도덕한 일이었다.

 3당합당을 가리켜 “신사고에 입각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강변했으나, 지난 10개월간 국민의 눈에 비친 모습은 密室政治요, 힘으로 밀어붙여 33초 동안에 26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요, 한지붕 세가족이 물고 뜯고 싸우는 자중지란의 연속극이었다.  아직도 민자당의 탄생을 “신사고에 입각한 구국적 결단”이라고 우겨댈 수 있을까.

 나는 3당합당 바로 다음날 “정국주도권을 빼앗긴 제3당 제4당의 패배주의적 자격지심과 여소야대를 뒤집으려는 여당의 당략이 맞아떨어진 혁명적 政略結婚”이라고 지적하고 “그런 비정상적인 정략결혼이 백년해로”로 이어질는지 두고볼 일이라는 회의론을 편 일이 있다.  군사통치의 후예세력과 30년 야당의 김영삼씨계가 한덩어리로 뭉쳐 화학적 용해로 발전한다는 것은 아예 ‘緣木求魚’와 같은 것이었으니까.  불행히도 그런 분석은 빗나가지 않았고, 정략결혼이 국민과 국가의 운명에 끼친 해악은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동상이몽으로 정국을 어지럽혀 국민을 불안에 빠지게 하지 말고, 차라리 갈라서 뜻맞는 사람끼리 딴살림을 차리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 필요하다면 내각제식으로 두서너파가 연립해 정부를 만드는 지혜를 기대하고 싶다.

 

대통령직의 존엄성과 명예 지켜져야

 민자당은 이미 도덕적으로 재기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  당초 당원 전체의 의사는커녕, 당 공식기구에서조차 일언반구 토론한바 없이 당 수뇌기리 밀실에서 합당을 결정지은 것은 실로 반민주적 결정이었으며, ‘여소야대’라는 국민의 선택을 배반하여 하룻밤 사이에 ‘여대야소’로 둔갑시킨 것 역시 도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는데, 이제 내각책임제 개헌에 대한 비밀각서가 폭로됨으로써 다시 한번 천하 公黨으로서의 존재가치와 도덕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민자당을 포함한 어느 당이건 필요하다면 내각제개헌을 당의 정책으로 삼아 추진할 수 있으며, 이를 시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 세 지도자가 ‘비밀각서’를 써야 했느냐 하는 것이고, 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지금까지 그런 각서의 존재를 부인, 사실상 내각제개헌에 반대하는 발언으로 일관했느냐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더구나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요 행정부의 수반인 지존의 지위인데, 이런 류의 비밀각서의 서명 당사자가 되었으니, 대통령직의 존엄성과 명예를 스스로 훼손한 것이 아닌가.  내각제개헌에 따르면 대권도구와 관련된 다른 각서는 없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제가 좋으냐 내각제가 나으냐의 시비는 건국 후 42년간 간헐적으로 있어왔고 체험도 해보았다.  대통령직선제가 가져오는 지역감정의 폭발 등 우려할 만한 경험도 있어 우리 현실에 내각제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민자당 창당과 더불어 정정당당하게 당론으로 정할 것인지, “야당과 국민이 반대하면 않겠다”는 식의 눈가림 속에 비밀리에 각서까지 교환하였다는 것,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이 무슨 짓들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이제 정부여당은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 비생산적 계파싸움에 종지부를 찍고 정치를 안정시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현실적으로 민자당의 심각한 계파간 싸움, 민주계의 반대에 비추어 내각제개헌쪽으로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다.  긍정적인 결론이 나더라도 2백18명 전원이 국회의결에서 찬성표를 던진다는 보장이 없다.  2백99명 가운데 2백명이 찬성해야 되므로 18명만 반대해도 내각제개헌은 좌절된다.  그보다도 국회의결 후에 있을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어려운 고비.  지금까지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 대체로 국민은 40% 대 30%로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14대국회의원선거 때 ‘민의’물은 후 개헌 여부 결정해야

 한마디로 내각제개헌은 적어도 현 13대국회에서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13대국회는 6ㆍ29 후 국민적 합의로 채택된 헌법에 의해 성립하였으므로, 내각제개헌은 다음에 있을 14대국회의원선거 때 선거공약으로 내놓아 국민의 지지를 얻은 후에 추진하는 것이 순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 민자당 정부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내각제를 당론으로 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일단 13대국회에서의 추진은 단념하고 14대국회의원선거시에 민의를 물어 민의의 향배에 따라 추진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내각제가 우리 정치현실에 적합한 제도라고 확신한다면, 현행 헌법 가지고도 얼마든지 내각제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대통령이 행정의 수반이지만, 총리는 국회의 사전 동의로 임명되고, 각료는 총리의 제청으로 임명되며, 또한 국회는 총리와 국무위원의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  이렇듯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현행 헌법은 내각제 요소가 농후하다.  사실상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와 그가 제청하는 각료 중심으로 국회에 책임지는 정부를 구성하여 성공할 때, 그것이야말로 내각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찬성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내각제식 운영의 길이 헌법상 열려 있음에도 이를 마다 하면서 굳이 이 시기에 내각제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결국 노태우 대통령 다음에 일본 자민당식으로 3계파가 돌아가며 권력을 농단하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음이 뻔하다.

매사를 순리대로 풀어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대의명분과 시기가 중요하다.  한번 무리하면 무리가 무리를 일으켜 끝내는 파국을 초래한다.  국민의 심판을 거역한 3당합당부터 큰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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