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세상 제물로 제 딸을 바칩니다”
  • 편집국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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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매장 서연양 어머니 ‘호소문’/“딸의 죽음은 마비된 양심 일깨우는 경고 메시지”

지난 11월14일 서울위생병원에서 열린 양평 일가족생매장사건 희생자 장례식에서 다섯 살 짜리 희생자 崔敍娟양의 어머니 柳恩珠씨는 ‘우리들의 서연이의 넋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글을 낭독했다. 그것은 딸의 죽음을 계기로 죄악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서연아‥·! 다시 불러봅니다. 서연아‥·서연아‥·!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우리 서연이. 이제 땅속에 한 줌의 흙으로 변해버릴 우리 아기. 초롱초롱한 눈망울. 순진무구한 웃음소리. 이 모든 행복한 모습들이 흙으로 스러집니다.

 이제 우리 부모는 서연이의 죽음을 애닯아 하고 울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서연이는 우리들의 사랑스런 딸로만 무덤에 묻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생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어머니 아버지의 딸이 되어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서연이를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딸로 바치려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로서는 우리의 딸을 하나님 앞에 바친 것입니다. 그러니 서연이는 온 세상 부모들의 자식입니다. 우리들의 아픔을 우리들만의 애통함만으로, 우리들의 소유만으로 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내놓습니다. 살아 있는 우리 모든 부모들은 서연이의 죽음을 그냥 불쌍한 생명이 허공으로 사라졌다고 탄식만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서연이가 못다한 말을 대신해서 세상에 내놓으렵니다.

 서연이는 죽는 순간 온 세상 부모들의 딸이 되었습니다. 서연이가 위대한 영웅적인 인물이래서가 아닙니다. 서연이는 온 세상의 몹쓸죄를 그 가녀린 어깨에 지고 깊은 골짜기의 땅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세상의 때가 타지 않은 채, 고귀하고 순결한 생명인 채, 죄악의 구렁텅이에 묻힌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서연이의 죽음은 우리 부모만의 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부모의 딸로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연이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고 아무리 단정을 내린다 해도, 그 여리디 여린 몸뚱아리를 암흑의 땅속에 흙으로 다져가며 꼭꼭 묻었어도 우리 서연이는 하늘의 딸로 태어날 것입니다.

 서연이는 갔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에서 벗어나 허위허위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서연이는 가지 않았습니다. 이 엄마의 가슴속에 영원히 영원히 부활의 아침까지 이 엄마와 서연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 가슴속에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재롱을 부리며 남아 있습니다.

 살아남은 우리 부모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서연이의 죽음을 그냥 한 개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남게 해서는 안됩니다.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이 세상, 죄악의 어둠만 깔려 있는 이 세상에 서연이는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들의 죄악의 암울함을 밝히는 불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 살아 있는 부모들이 서연이의 희생을 기리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세상 죄악의 희생 제물이 된 서연이. 서연이를 부활시키는 길은 서연이가 밝히는 빛을 우리가 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 부모들의 딸이 암흑 속에서 비추는 빛을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입니다. 서연이의 죽음이 남긴 빛은 우리 양심을 깨우는 거룩한 기별이고 메시지입니다. 갈바리 십자가의 빛처럼 우리의 타락한 심성을 밝히는 빛이어야 합니다.

 우리 서연이의 엄마 아빠는 서연이를 죄악의 세상의 제단에 희생제물로 바칩니다. 온세상의 부모들의 희생제물로 말입니다. 오! 하나님, 서연이가 암흑세상을 밝히는 영원한 빛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마비된 양심을 일깨우는 경고의 기별이 되게 하소서. 서연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서연이는 온 세상 부모들의 가슴에 한 줄기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서연이의 죽음을 신문 방송으로 접하셨을 노태우 대통령, 서연이는 이 땅의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랑스런 딸입니다. 당시이 애지중지 키워야 할 자랑스런 딸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선포도 좋습니다. 정의사회구현을 위한 구국적인 정치적 결단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서연이 엄마 아빠의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죽음이 주는 기별을 그냥 신문의 기사 한 토막으로 흘려보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딸의 죽음이고 세상 죄악을 한 몸으로 짊어진 연약한 생명의 죽음인 것입니다.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말끔히 씻어줄 순진무구한 무죄한 넋입니다. 그래서 당부를 드립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어른으로서 이 나라에 제2, 제3의 서연이가 세상 죄악의 제물이 되지 않도록 노심초사 헤아려주십시오.

 

부모들 죄악에 대한 분노 대신 받아들인 것

 피지도 못하고 꺾어버린 불쌍한 하나의 생명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서연이의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서연이의 가녀린 생명의 줄기를 꺾으신 뜻을 헤아리소서. 대한민국 부모들의 죄악이 극에 달해서 하늘의 분노를 서연이가 대신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 부모를 대신해서 말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아들 딸을 두신 부모입니다. 서연이의 이런 죽음을 그냥 어두운 땅속에다 묻고 소에 믇은 흙 먼지를 툴툴 털고 망각 속으로 가지말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있는 것입니다.

 서연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여의도 고아장 한 복판에 기념비를 세우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서연이의 귀여운 모습을 세종로 어느 길목에 동상으로 세워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만인의 가슴속에 우리의 딸로 남아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가슴 한 구석에서 서연이가 남겨놓은 메시지를 지워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연이가 묻힌 무덤 위에 꽃을 한 송이 직접 오셔서 꽂아주고 사랑하는 당시의 딸의 넋을 위로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서연이의 죽음이 노태우 대통령의 책임이래서가 아니라 이 땅위에 사는 부모들의 딸로 부활한 서연이를 부모들을 대신해서 대통령께서 명복을 빌어달라는 당부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연이를 부활한 딸로 맞이할 때 이 세상의 죄악이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서연이 엄마 아빠는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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