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원인제거 우선돼야
  • 한상범 (동국대교수·법학)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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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예방 위한 사회정책, 경찰 정상화 필요

 노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가 있은 후 관권에 의해 주관되는 일과성의 각종 행사가 진행되는 중에 양평에서 일가 4명에 대한 생매장 몰살사건이 일어났다. 범죄와의 전쟁을 우습게 보는 듯한 사건이다.

 온갖 못된 범행이 주로 돈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벌든 돈만 있으면 안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분위기에서 돈 때문에 도둑이 극성을 떨게 된다. 돈을 정직하게 벌지 않으면 사회에서 발 붙일 수 없다는 사회윤리의 결여와 남앞에 군림하는 권세가 떳떳하게 세워지지 못하고 있어서 명이 서지 않고 기강이 흔들리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라 재산을 크게 들어먹을 정도의 큰 도둑이 있으면 다른 도둑은 모두 작은 도둑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윤리부재로 말미암은 무질서와 정글세계화를 막기 위해서 어느 사회에서나 대개 기득권 수혜계층은 사회의 기본 규칙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인가. 미국에서도 1만불 이상의 돈을 예금하려면 소득출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규제한다. 이른바‘실명제’를 시행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실명제를 안하겠다고 버텨서 흐지부지됐다. 무슨 돈이기에 그 돈의 출저를 밝히기를 그렇게 꺼리고 있는가. 이 한가지만 들어도 자기 구실을 할 사람이나 계층이 그것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범죄와의 전쟁’은 범죄원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순서여야 하기 때문에 법률의 강제적 힘만으론 안되고 사회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상식을 지켜가며 추진되어야 한다. 법률적 강제만으로는 범죄를 없앨 수도 없으려니와 자칫 잘못하면 소리만 요란한 관제행사로 끝나게 될 위험이 있고 나아가서 관권의 오용을 유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처벌법규를 강화하고 특별법부터 만드는 것이 범죄와의 전쟁에 대응한 관료들의 발상이란 것을 보고 있다.

 범죄를 예방하고 이미 자행된 범죄를 단속하는 것은 경찰을 비롯한 각 기관의 책무인데 이 책무가 우선 정상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흔히 ‘민생치안’이란 말을 ‘시국치안’과 대비시켜 말하는데 경찰력을 비롯한 수사 공권력이 참으로 올바르게 쓰여야 하겠다. 멀쩡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데 막대한 국비를 쏟아넣고 있다는 지울 수 없는 인상을 준 것이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의 폭로를 통해서 느끼는 서민의 솔직한 심정이다. 법률에 반해서 공권력이 잘못 행사되는 근본원인은 하라는 일은 안하고 정권유지를 위한 당파적 도구로 사용되는 데 있다.

 다음으로 어느 나라 사회의 치안을 보아도 주민으로부터 협조를 받지 못하는 경찰이 치안을 유지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진 못했다.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여 자기 알바를 바로 알지 못하고 칼을 휘둘러서 멀쩡한 시민만 상하게 하는 일은 주민의 협조를 받기는커녕 미움을 산다. 수사관이 한 건을 올리기 위해 직권을 마구잡이로 남용하여 학생을 윤락녀로 모는 것을 보는 시민은 그러한 공권력의 발동을 결코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보지 않는다. 제자리를 바로 찾고 자기가 할 바를 바로 하며 떳떳한 처신을 하는 공인의 솔선수범과 봉사를 통해서 우리 사회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 무엇보다 권세가 있고 부유한 자부터 법을 다르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작은 도둑이나 큰 도둑의 도토리 키재기가 되어서는 윤리감각이 마비되어서 ‘정글세계’를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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