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으로 UR위기 극복하자
  • 김지하 (시인·본지칼럼니스트)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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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라운드는 분명 농업에는 폐업선고요 농민에게는 사형선고다. 그러나 그것은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폐업선고요 우리 모두의 생명에 대한 사형선고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는 사실, 한국인은 밥을 먹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어버린다. 아무 밥이나 먹으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외국쌀이 문제요 농약묻은 쌀이 문제다. 환경회복을 떠들면서도 농촌이 바로 자기와 연결된 한 생명의 체계임을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산업화 이후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잊어버렸다. 하찮은 일로 사람을 쑤셔죽이고 어린애를 생매장하는 것도 다 이 생명망각으로부터 비롯된다. 생명은 알파요 오메가다. 가격이 문제인가? 가치가 문제 아닌가!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어야 건강해진다. 身土不二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인간생명의 질서에도 먹이사슬의 체계가 있는데 이것은 민족의 독자적 문화와 체질형성에 깊은 관계가 있다. 이 체계를 벗어난 식생활은 반드시 병통을 일으킨다. 외국 음식이 우리 입에 맞지 않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요즘 우리 식생활은 우리의 생태조건을 완전히 깨트리고 있다. 그 결과는 온갖 병이다.

 

되찾아야 할 우리의 ‘먹거리체계’

 이제 우리의 먹거리체계를 되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醫食同源이란 말이 유행이다. 밥상이 곧 약상이란 뜻인데, 허 준이 동의보감을 지은 까닭도 우리 땅에서 나는 약초라야 우리 몸을 고친다는 진리 때문이 아니었던가.

 우리 농산물을 사먹자. 우선은 저농약, 무농약 그리고 차츰 땅이 살아나기를 기다려 우리의 유기농산물을 사먹는 방향으로 나가자. 이미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소비자·생산자 공동체가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고 있다. 바로 이 생명운동을 점차 전 국민적으로 확대해 UR위기를 도리어 농민만 아니라 국민 모두와 흙과 물의 생명을 되살리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바꾸자.

 유기농업은 생산비가 많이 들고 일손도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격이 높고 지력의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다. 돈이 아니라 생명이다. 생명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일은 우리의 다른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열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본은 생명망각·생명경시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구체적 생활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문명의 문제다. 산업문명·기계문명을 넘어 인간의 정신분열과 노동소외와 환경파괴를 함께 해결할 새로운 생명의 문명을 건설하는 세계사적 대업의 첫 출발점이 바로 이 생명의 가치관 확립운동이다. 현대과학은 생명을 지향한다. 정보화와 첨단기술의 문제도 생명의 세계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유기농산물을 짓고 먹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때로 민중운동·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이 이렇게 불평한다. “배부른 놈들 짓이다. 우리 임금으로는 그런 쌀 못 사먹는다.” 그렇다. 그러나 아니다. 노동자도 거룩한 생명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하자. 만약 노동조합이 우리 유기농산물의 구매를 결정한다면 이것을 단계적으로 임금에 반영해야 한다. 우선 농민과의 직거래로 가격을 낮추고 지력회복 기간을 기다리며 저농약,무농약, 유기농산물 단계로 진행하는 거래운동의 조직성을 보여야 한다. 수십 수백만 노동자의 점증하는 집단주문은 점차 농촌을 부활시킬 것이며 자연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유기농법의 첨단 생명과학적 대혁신과 함께 가격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생명의 가치관이다. 산재 의료 문제 등에 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의 추세와 함께 이 운동은 생사공정과 업무과정의 인간화, 생체리듬에 맞게 기계나 단말기 등과 업무구조를 제작·개편하도록, 임금 속에 섬세한 인간생명 활동의 높은 평가가 포함되도록 요구하는 단계까지 내다볼 수 있게 할 것이고, 나아가 민중운동은 새 차원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만약 새로운 생명의 문명 방향에 대한 세계관 차원의 문제의식이 나타나게 된다면 청년 학생들의 대규모 귀향운동, 농촌 출신들의 歸農운동도 가능할 것이며 농촌은 대전기를 맞을 것이다.

 

민주화와 통일의 역량으로 발전할 생명운동

 그러나 현단계의 생명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종 시민운동단체 종교단체 환경운동단체 지역주민 운동단체들이 네트워크로 연대하여 ‘우리 농산물·우리 유기농사물을 협동적으로 사먹는 전 국민 켐페인’을 본격화하는 일이다. 이것은 급기야 애국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며 서비스·정보·금융 부분 등에 까지 연동할 것이다. 앞으로 10년의 UR유예 기간동안 점차적 지력회복과 함께 줄기차게 성장한다면 이 운동은 정책면에서도 구조 및 제도개편에 강한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실질적인 민주화·민족통일 역량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국제화·개방화시대에 있어, 특히 미국의 무차별 통상압력과 일본의 새로운 문화침투·기술압박에 대응하여 이같은 생명운동의 전 방면 확장은 민족의 주체적 대응력을 강화할 것이다.

 정부는 ‘농어촌종합발전대책’ 운운하고 있다. 실속없는 얘기다. UR무효화를 주장하는 농민단체들이 있다. ‘가트’를 이탈할 수 있는가. 시설원예로 돌파하자는 대안도 있다. 처량한 푸념이다. 도대체 대통령이란 사람이 몇 년 안에 농민 숫자를 5% 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언하는 판에 농정에 대해 무슨 기대를 걸 수 있는가. UR위기 극복은 전 국민적 생명운동의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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