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고] 온 국민이 '좋아하는 것' 통해 생활정서 민족동질성 확인
  • 박상기 문화부차장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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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 코리아리서치센터 공동조사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삶은 어떤 빛깔과 무늬를 띄고 있는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어디를 가고 싶어하며, 어떤 작품에서 감동을 받는가. 《시사저널》은 문화  명소  과학  생활 등의 분야에서 '한국의 최고'를 찾는 물음을 통하여 90년대 초입에서 한 동아리로 묶여 살아가고 있는 4천3백만의 생활 정서와 의식을 들여다보았다. 비록 정치  경제적인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적 응집력이 약화되고 그로 인한 부정적 징후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사회의 밑바닥에는 모든 이질 요소를 녹여낼 수 있는 정서적 공감의 강물이 깊게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특징을 보면, 먼저 국민의 의식 속에 '닫힌 민족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빨치산 투쟁사를 소재로 민족분단의 비극을 그린 소설《태백산맥》과 영화 <남부군>이 올해 가장 돋보인 문학작품과 영화로 나란히 선정된 것은 좋은 예이다. 두 작품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판매부수화 흥행에서도 대중적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밖에도 평양에서 개최된 범민족통일음악제와 뉴욕의 남북영화제 등에 쏠렸던 국민의 관심도 분단의 벽을 넘어 남북교류를 실현코자하는 국민적 열망의 표현일 것이다. 다만 두 행사가 모두 이번 조사시점 이후에 치러져 그 의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분단현실로 말미암아 가볼 수 없는 북한땅에 대한 그리움은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인 <눈물 젖은 두만강>에 담기기도 하고, 통일이 되면 맨 먼저 금강산과 백두산을 여행하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분단 이전의 삶, 민족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통일열기가 우리들의 의식 속에 한껏 고조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둘째로 부각되는 특징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있는 점이다. 당장에 보수가 높은 직종보다 공무원  교직  의사 등과 같이 50~60대에 이르기까지 직업활동이 보장되는 업종을 바람직하게 여기며, 미래의 유망직종으로는 전산관련직을 첫손에 꼽고 공무원  의사  기술직  교직 순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령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전산직종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공무원을 더 선호한다.

인생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는 어머니가 으뜸이며,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는 아기를 낳았을 때, 결혼, 자녀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를 차례로 꼽았다. 이에 비해 자신의 출세나 직업적 성공 등 사회적 성취감을 행복의 요소로 드는 비율이 현저히 낮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만한 가정생활에서 행복의 근원을 찾는 가족주의적 성향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로 나타난 특징은 문화의 이원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성이 높은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것'과 '유익한 것'으로 드는 작품이 현격히 달랐다. 텔레비전의 경우 <배반의 장미> <울밑에 선 봉선화> 등의 멜로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만, 이들 프로그램이 '유익했다'는 반응은 극히 미미하다. 오히려 서민의 실생활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인간시대>와 농촌의 풋풋한 인정을 그리는 <전원일기> 등에 크게 공감한다. 영화  문학 등에서도 나타난 이러한 현상은 우리 국민들이 상업문화의 폐해를 경계하고 더욱 질 높은 문화를 희구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한국의 최고' 조사는 지금 이 땅의 문화환경을 돌아보고 삶의 질을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데 그 의의를 두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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