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이미지로 승부건다.
  • 송준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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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로는 못 버텨” 인식 확산…개성있는 기업문화 만들기 부산

“현대는 이미지전쟁의 시대이다.” 최근 《기업이미지전쟁》(서울 포럼 펴냄)이란 책을 번역한 이조안씨의 말이다.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PR 회사 ‘한국 버슨 마스텔라’의 대표이사인 이씨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선거전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선거 양상도 이미지전쟁에 다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 활동과 광고, 나아가 개인 간의 교제에까지 이미지전쟁의 파장이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이씨는 말한다.

 8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 기업 사이에서도 ‘기업문화’ ‘기업이미지’ 따위를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대적 감각에 맞는 로고와 디자인, 마스코트를 활용하여 기업의 개성을 알리고 공익광고나 사회사업 등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한편, 사내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넓히려는 작업들이 그것이다. 이는 유럽 경제 통합이나 우루과이 라운드 등 세계경제 질서 재편에 대비하려는 기업인들의 위기의식 발현이다. 세계적 이미지전쟁에 대비하려는 구체적 행위인 것이다.

 

기업정체성, CI 개발 경쟁

 최근 전문가들이 펴낸 책과 잡지는 기업문화의 이론적 준거를 제공한다. 《기업이미지 전쟁》말고도《기업인의 이미지》와 《CI혁명-비즈니스를디자인한다》를 김영사에서, 《정보사회의 기업문화》와《기업의 성패, 그 문화가 좌우한다》를 한국통신에서 각각 펴냈다. 올해 1월1일에는 기업문화와 기업이미지를 다룬 전문 월간지 《C&I저널》(발행인ㆍ편집인 염기석)이 창간됐고, 한국광고 주협회(회장 조규하)가 펴내는 월간지 《KAA저널》에서는 지난 89년 11월호부터 90년 6월호까지 여덟차례에 걸쳐 기업문화 특집을 실었다.

 또 지난 10월15일~16일 문화부에서는 ‘조직혁신과 문화경영’이란 주제로 기업문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립중앙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림 이 심포지엄에는 송 자 연세대 총장, 최종태 서울대 교수, 임동승 상성경제연구소장,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 등 전문가 24명이 참석했다. 문화부는 오는 11월 말 심포지엄 결과를 책으로 묶을 작정이다.

 이처럼 기업 당사자는 물론 경제계 전문가들이 관심을 쏟는 기업문화ㆍ기업이미지란 무엇인가. 또 CI(기업정체성 : Corporate Identity)란 무엇인가.

 기업문화란 말 그대로 한 기업이 지닌 고유의 문화양식을 지칭한다. 한 기업이 성장해오는 동안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의식 그리고 경영이념과 관리체계, 기업의 개성 등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기업문화는 사람 돈 물자 정보에 이어 ‘제5의 경영자원’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경영 요소로 꼽힌다.

 CI는 기업문화와 그 대외적 인상인 기업이미지를 수립하고 홍보하는 전략의 하나이다. 일본의 한 지방업체에 불과하던 INAX회사가 CI를 도입해 국제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사례(보조 기사 참조)는 그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년간 국내 CI를 개발해온 조영제 교수(서울대ㆍ산업디자인)는 이를 다시 VIㆍMIㆍBI로 세분해 설명한다.

 조교수에 따르면 VI(Visual I.)는 흔히 볼 수 있는 각 기업의 시각적 이미지 특화를 말하는데, MI(Mind I.)와 BI(Behavior I).가 밑받침되지 않고서는 완전한 CI라고 할 수 없다. 경영이념과 기업철학이 MI에 해당하며, 이것들이 경영자 및 사원의 업무활동 속에 용해되어 나타날 때(BI), 기업문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선진국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난 60년대부터 “기업의 이미지와 철학이 곧 상품”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나름의 기업문화를 형성해왔다. 흔히 컴퓨터 전문업체인 다국적기업 IBM의 경우를 CI의 효시로 꼽는다. 1956년 CI를 도입한 IBM은 ‘IBM=고객서비스’라는 문화적 특질을 형성하여, 3M사의 ‘창의성’과 마쓰시다전기회사의 ‘사업보국정신’ 등과 함께 기업문화 정립에 성공한 본보기로 꼽히게 되었다.

 반면 수출드라이브정책을 내세운 정부의 비호 아래 순탄하게 성장해온 우리나라 기업은 그동안 CI 및 바람직한 기업문화 정립의 필요성을 그다지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쌍용그룹 사보(84년 8월호 이후)에서 기업문화 특집을 다루면서 이 문제가 재계에서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했고, 지난 90년 12월10일 한국통신에서 기업문화헌장을 선포하고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9월15일에는 삼성 쌍용 롯데 등 30개 기업과 상업은행 신한은행 한일은행 등 10개 금융기관, 한국통신 도로공사 등 9개 정부투자기관이 모여 기업문화협의회를 결성했으며 20여개 업체가 새로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기업이 각종 의식개혁 운동과 이미지 제고 작업, 메세나 활동(예술ㆍ학술 등 문화 지원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사옥 내에 벼룩시장 노래방 맥주집 등을 회사가 직접 경영해 사원들의 교제 기회를 넓히고 동아리활동을 지원하는 등 바람직한 기업내 하위문화를 형성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기업문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또 정립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업이 원하는 이미지와 소비자가 느끼는 이미지는 서로 다를 때가 많다. 기업홍보는 거짓 이미지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진 장점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좋은 기업 이미지를 인정받고 싶으면 먼저 좋은 기업이 되어야 한다”라고 이조안씨는 기업문화의 본질을 지적한다. 이기적인 이윤추구와 재테크로 얼룩진 기업의 도덕성으로는 이미지전쟁에서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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