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英勳 국무총리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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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은 벽돌 쌓듯이"

‘强총리’냐 '空총리'냐  총리에 대한 세간의 엇갈린 의문이다. 앞으로 20여일이 지나면 취임 두돌을 맞는 姜英勳 국무총리(68). 평균 임시 1년반의 '단명 총리'만을 양산해온 우리 정치실정에 비추어 장수총리축에 끼는 건 분명하지만 정작 강총리 자신은 세간의 의문에 아직껏 확답을 얻지 못한 상태에 있다. "저를 놓고 고집불통이다, 현실을 잘 모르는 총리다 하고 말이 많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런 비판 모두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의 처신과 입지에 불쑥 동정이 간다. '空총리'가 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현행 정치제도하에서 '인간 강영훈'이 낼 수 있는 音城이 너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육사교장 시절 사관생도의 5  16 지지행진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예편됐고, 그이유로 4개월간 구속까지 당한 소신파 군인이었다. 또 50을 훨씬 넘긴 나이에 미국남가주대학에서 정치학박사를 따낸 집념의 만학도였다.

“다만 한가지, 준법정신 하나만은 어느 누구한테도 양보할 수 없는 저의 고집입니다. 사람 위주로 하는 정치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법 위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런 원칙은 꼭 지켜져야 합니다."

이런 소신과 원칙마저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낼모래 70객이 되는 한 노신사의 晩節이 지켜지기에는 우리나라 정치운영방식이 너무 가혹한 성 싶다.

총리가 그토록 신봉한다는 '법' 그 자체가 총리를 배신하고 있다. 법 중의 법  헌법은 총리의 권한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86조 1항)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87조 1항). 이 '동의'와 '제청'은 3공 이후 지켜진 적이 없다. 단 한번도.

 

● 내달 5일로 취임 만2년이 됩니다. 장수총리이신데.

지금까지 총리의 평균 수명은 1년6개월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보다 많이 한 분도 있습니다. 4~5년 정도 한 분도 계시고요.

● 지난번 평양에서 열린 2차총리회담에서 북측의 불가침선언 제안을 왜 거부하셨습니까? 이 불가침선언은 당초 우리측 주장이지 않았습니까? 주장할 때는 언제고, 막상 북한이 하자니깐 반대하고, 그 반대의 이유도 좀 궁색했던 것 같던데, '국회의 동의' 때문이라고 하셨던가요?

국회의 동의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고, 이왕이면 민의를 많이 수렴하고 이를 위해서는 입법부와의 협의를 거치는 일련의 절차가 민주헌정체제하에서의 도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 동의때문이라고 꼭 못박지는 않았습니다. 또 아시는 바와 같이 불가침선언은 일국의 안전보장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나라든지 불가침선언이나 불가침조약은 상당한 기간을 두고 의논과 협의를 거치는 것이 역사상의 경험입니다. 더구나 저 사람들이 오늘 그 안을 내놓고 내일 서명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옳지 않은 태도지요.

● 불가침선언이 당초 우리측 안이었다는 설명은 빠뜨리셨습니다.

우리도 했고 저쪽에서도 했던 주장입니다. 특히 6공화국 들어서 노대통령이 유엔총회연설에서도 남북한 정상회담과 불가침선언을 제안한바 있습니다. 그것은 당장 불가침조약안을 내놓고 바로 서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다루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선언에 대해 이야기해왔다고 해서 바로 채택에 들어가자는 말은 아닙니다.

● 우리가 그 선언을 수락할 경우 북한에는 어떤 이익이 돌아갑니까?

불가침선언이 채택될 경우 저 사람들은 이제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가 없어졌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남한에 더 이상 둘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미국 내의 여론을 환기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측 제안을 남북한 기본합의서 속에 넣을 수 있다고까지 양보했지만 저 사람들은 꼭 '불가침선언'의 형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잖습니까? 이것만 봐도 선언의 내용보다는 선언 그 자체를 활용하려는 저 사람들의 의도를 빤히 읽을 수 있는 거지요.

● 총리회담은 결국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가는 가교역할을 하는 셈이 되겠죠.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의 시기는 대충 언제쯤 되리라고 보십니까? 내년 5~6월께?

회담에는 상대방이 있는 것 아닙니까.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만 보는 태도입니다. 상대방과 의논을 해서 결정해야 하지요. 지금 여러가지 조건을 살펴보면 서로의 입장이 대단히 다릅니다. 항간에는 정부가 정상회담을 몹시 서두르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신중을 기하는 척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가 정상회담을 강조해왔다고 해서 언제 어느 시점까지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또 총리회담 한두번 해보니까 정상회담만은 신중을 기해야 되겠다 해서 과거와 다른 입장을 갖게 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 하나 벽돌을 쌓듯이 나아가려합니다. 지금 국제정치의 추세는 정상회담을 통해 모든 걸 결정해나가지 않습니까?

● 강총리는 경력으로 미뤄 외교와 국방이 주특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보면 북방외교도 그 주역이 청와대에서 외무부로 옮겨졌고, 보안사령부도 일단 국방장관의 직속 관장하에 놓이게 됐습니다.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사실인데. 어떻습니까, 노대통령으로부터 외교  국방에 대한 모종의 양보를 따내신 것 아닙니까?

대통령중심제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총리나 내각이나 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구입니다. 대통령은 일국의 통치권을 가진 분으로서 행정에 관한 모든 권한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행정부는 비록 법에 의해 조직되어 있고 그 조직 자체가 고유의 권한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근본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강총리는 내각제를 지지하십니까?

총리라는 제 입장에선 대통령제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정가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행정부에서, 그것도 저처럼 대통령을 보좌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개인적인 소견은 가지고 있습니다.

● 총리께서는 지금 민자당의 당직자가 아니십니까?

총리에 임명받고나서 국회의원(전국구)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젊은 분이 승계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 이번 민자당 내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굳이 내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요 정당이 합당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자의 정강정책이 비슷해서 합당했지만 그것이 하나의 당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기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됩니다. 우리는 합당한 지 아직 1년도 채 안됐습니다. 이만큼이라도 한 것은 잘 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계파간에 이견이 왜 없겠습니까. 또 이견이 있는 것이 민주사회의 성격아닙니까. 정당생활을 하는 정치인들 모두가 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의견차이는 다 조정이 돼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총리의 약력을 보면 크게 두가지의 기복이 드러납니다. 하나는 육사교장 때 육사생도들의 5  16 지지가두행진을 불허한 조치였고 또하나는 50세가 훨씬 넘어 미국에 가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육사교장 시절의 소신에 변함이 없습니까?

한평생 나의 좌우명은 어떤 상황에서든 양심껏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후회하지말자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따라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 상당히 만학이신데, 총리직을 그만두고나면 학문세계로 돌아갈 의향을 갖고 계십니까?

나이가 들어 대학에서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젊은 세대와 함께 겨레의 장래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5  16 당시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인데 군인들이 스스로 그 대의를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원칙적으로 반대했던 겁니다. 제 전공은 소위 '정치발전이론'이라는 것인데, 헌법만 가지고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면학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 터키 그리스 등의 정치에서 터득한 새로운 조류와 학파가 유행했습니다.

● 이번 평양에서 여동생을 만난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말이 많았습니다. 북한의 의도에 말려든 것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차라리 떳떳하게 거기서 공개적으로 만났던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가족상봉에 얽힌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비록 사실과 다르지만 모든 것이 저 자신의 부덕의 소치였습니다. 이점, 지금도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 우리측 일행이 90여명이었고 7명의 대표 중 3명이 월남자였습니다. 이산가족 문제가 중요 사안임은 분명했지만 우리 대표들만 가서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아예 평양에 가기 전부터 이산가족 면회를 알선하지 말라고 북측에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런 후 평양에 갔더니 그쪽 안내원이 "누이동생이 있더만요"라고 말해요. 나는 월남 후에도 한평생 누이동생 이야기를 안해왔습니다. 가족상봉에 관한 한 면회주선을 않기로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에서는 "우리가 주선한 게 아니고 본인이 어떻게 알고 와서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 입장 난처하게 만들지 말라. 우리는 회담의 대표로 왔는데 나를 공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몰지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양을 떠나기 전날, 밤 12시가 넘어 그 사람들이 누이동생을 데리고 숙소로 왔어요. 사적으로는 안만날 수 없고, 공인으로서는 만나지말아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쪽에서 "이산가족 만나자더니 왜 당신은 만나지 않으려고 하느냐"는 식으로 나올 것 같기도 해서 우리끼리 회의를 거쳐 일단 만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만나보니까 어디서 데려온 할머니인지 전혀 못알아보겠더군요. 누이의 아들도 데려왔어요. 누이동생인지 확인해보려고 고향이야기를 해보니 누이동생이라는 확신은 생겼지만 허리도 구부러지고 나보다 훨씬 늙어보여서 그동안의 고생이 짐작이 가더군요. 결국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돌아왔는데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떠들 심정이었겠습니까. 더구나 누이동생 만난 것을 나만 알고 있었겠습니까? 북쪽은 다 알고, 우리쪽 관계관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비밀을 지키려했다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지요. 그게 어디 숨기고 말고 할 문제입니까? 내가 북쪽에 비밀약속이라도 해서 누이동생을 만나게 해주면 협조하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하등 비밀
로 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오자마자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렸습니다. 내가 비밀로 할 생각이었으면 아는 사람들에게 당부를 했을 테지만 그런 짓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공인으로서 누이동생을 만난 것은 잘못이지만, 그것을 비밀로 했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 대통령은 무어라고 하던가요?

인도적 견지에서, 우리가 이산가족 만남을 주선하려고 하는데 안만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시더군요.

● 우리 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되어 있고, 장관은 총리 제청하에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강총리의 경우를 포함해서, 왜 이런 절차가 지켜지지 않습니까?

거꾸로입니다. 총리의 경우 대통령이 임명해서 국회의 동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임명이 무효로 돌아갑니다. 제 경우 시간이 문제가 될 수는 있었겠지만 법적 절차에 하자는 없었습니다.

● 최근 내각제실시를 놓고 시끄러웠습니다만 헌법은 총리의 권한을 상당부분 보장하고 있고, 잘만 하면 현행 헌법하에서도 내각제와 비슷한 운영이 가능합니다. 심한 표현이 되겠습니다만, 총리께서 헌법상에 보장된 '밥그릇'을 차지하지 못하시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이 각료를 임명할 때 총리가 충분히 의견을 말씀드리고 즉 제청을 해서 대통령이 결정을 하게 됩니다. 미리 총리가 인선을 다해서 조각명단을 만들어 대통령의 일괄적인 재가를 받는 형식만이 제청권행사는 아닙니다. 사전에 충분히 총리의 견해를 대통령에게 상신해왔습니다. 이에 대해 외부에서는 총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개각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 입니다

● 강총리는 강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스스로는 어떻게 자신을 평가하십니까?

총리실로 온 뒤 强총리니 空총리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저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은 견지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여러 사람들의 행동을 통괄하거나 협조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원칙의 고수는 대단히 필요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총리가 되어 민주화 과정에서의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주주의 정치문화 속에서 살아온 역사가 지극히 짧습니다. 제도는 민주주의로 만들어가지만 국민들의 민주의식은 하루아침에 성숙되지 않는 것이 현실아닙니까? 이런 것을 전환기 혹은 과도기적 현상이라 볼 수 있겠지만, 기존의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문화가 무너져가면서 새로운 민주적 정치문화로 전환돼가기 때문에 과거의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고 이는 자칫 무정부상태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럴 때 어떤 기준이 확실히 명시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민주국가는 곧 법치국가를 만드는 것이고 준법정신의 강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 신앙을 갖고 계신 걸로 아는데 매일 기도를 하십니까?

성실한 천주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 뜻을 받들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맡고 계신 공직과 관련하여 오늘 아침 천주께 드린 기도 한 대목을 소개해주시지요.

이 부족한 저에게 지혜와 신념과 용기를 허락하여주십시오. 겨레의 앞날을 밝혀주시고 이 겨레를 지켜주십시오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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